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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Jan 30. 2018

박건웅 <제시 이야기>

                                                                                                                                                                                                                                                                                                                                                                                                                                                                                                                                                          

오랜만에, 말 그대로 
가슴이 뜨거워지고 목이 콱 막히는 
작품을 보았습니다.


브런치 작가님들 모두 이 작품을 꼭 보시고
저와 같이 깊은 감동을 나눌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소개합니다.









옛스러운 차림새의 군중들을 그린 그림 위로
궁서체에 세로 쓰기로 소개된 제목은
<제시 이야기>
영어 이름 ‘제시’와 그것이 전시되는 방식 간의
묘한 부조화가 책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킵니다.
제시는 누굴까...? 어떤 이야기일까....?


때는 1937년, 7월. 
중국의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던
젊은 독립운동가 부부가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 옛날에 MIT 공대를 나온 아버지와
이화여전을 졸업한 어머니는
사랑하는 딸이 앞으로 세계를 무대로 당당히
활동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영어와 한글, 한자 모두를 만족시키는 
이름으로‘제시’라는 이름을 아이에게 지어주었습니다.


더 놀라운 점은 이 선구적인 부부가 
한 노트에 서로 돌아가며 육아일기를 썼다는 
사실이지요.
이 작품은 그 육아일기를 바탕으로 만든
만화책입니다.


아이가 태어난지 보름도 지나지 않아
일본군은 중국본토를 폭격합니다.
부부는 신생아인 딸을 데리고
임시정부의 일원들과 함께 그 폭격을 피해
험산준령을 넘고, 위험한 물길을 건너
피난을 다닙니다. 
그냥 아이를 키우는 것도 힘든데
피난길에서 아이를 키우니 오죽하겠습니까?!
그 와중에도 틈틈히 육아일기를 쓰면서
사랑하는 딸의 성장을 기록해나가는
부부의 모습이 눈물겹습니다.


읽다가 정말 몇번이나 눈물이 터지려는 걸
꾹 참으며 읽었네요.
박건웅 작가님의 그림은 부부가 놓여있던
상황을 폭넓게 이해하고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해줍니다.
상황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어요.


일기에는 당시 임시정부의 상황도 
언급되어 있어서 당시의 정치적 상황도
교과서에서 보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이
생생하게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평소에 반일감정이 그다지 심한 사람은
아니에요.
그런데 작품을 보면서 당시 일본 정부가
주변국의 국민들에게 얼마나 해선 안될 일을
저지른 건지, 전쟁이 개개인의 삶에 미치는
악영향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일본이 많이 밉더라고요.


제시는 김구 선생님을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아기가 귀한 임시정부 구성원 가족들 사이에서
사랑과 관심 속에 자랍니다.
부모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지요.
하지만 하루에도 몇번씩 일본군 전투기가
폭격을 해대서 도망다녀야 하고
자신이 머무를 뻔 했던 바로 옆 건물이
옆 방공호가 무너지는 걸 목도하며
일상이 생사의 갈림길인 상황을 
살고 있었던 겁니다.
너무나 절절하게 다가와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살았을까... 

어떻게 이걸 다 견뎠을까... ‘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하게 되더라고요.
아기를 길러본 경험이 있기에 그 일기가
더욱 와닿은 것 같아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새카맣게 폭탄이 떨어지는 모습이 보인다.




저는 이 장면이 너무 뭉클했네요
밤 하늘의 별 같은 소중한 사람들의 얼굴
그런데 그들을 죽이는 폭탄이...
저 얼굴들이 폭격당할 얼굴들인가 싶어서
진짜 ... 


당연한 말이지만
전쟁은 정말 일어나선 안됩니다.


요즘 20세기 초중반을 다룬
영화와 책을 자주 접하는데
전과 달리 아주 절절하게 다가와요
엄마가 된 탓일까요?
20세기 인간들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








이 장면에서는 정말 눈물이...
저도 제 딸아이 키우면서
똑같은 생각을 했기에
시대와 환경을 초월해 부모의 마음은
다 똑같구나 싶고,
나도 어릴 때는 내 부모에게
이토록 간절한 존재였겠지 싶고....








근데 아버님이 옛날 분 같지 않게
가사일도 같이 잘 하시고
육아일기도 쓰시고
이런 분들 보면 가부장적인 건
세대 차이도 아니고 뭣도 아니고 
그저 인간성과 연결되는 것인가 싶기도 해요
ㅡㅡ;;



국가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이
내 아이가 살아야 할 미래에 대한 희망과
맞물려서 간절함이 배가 됩니다.


독립운동하는 일상을 세밀히 보면서
이분들이 무엇을 희생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독립운동을 한 선조들이 없었으면
정말 어찌 되었을지...
너무나 깊이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지요.


윤봉길 의사가 도시락 폭탄 투척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미 다 아는 이야기지만 
일기에서는 한 마디로 같이 근무하던 동료가
목숨 걸고 나가는 거잖아요...


그야말로
실화냐...? 소리가 나오지요


아, 물론 모든 이야기는 실화입니다.
독립운동가 양우조, 최선화 부부와
그들의 딸 제시의 이야기구요,
이 일기는 제시의 딸을 통해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되었답니다.


무엇보다 책이 무척 재밌어요.
누군가의 삶이
누군가에게는 드라마틱한 서사가 되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PS

상해로 여행을 가서
임시정부의 자취을 밟아보고 싶고
이 부부의 피난길도 따라가 보고 싶어요.
험한 길이 분명했으나
넓고 넓은 중국땅의 다채로운 면모를
볼 수 있고, 그 와중에 비경을 감상하며
감탄하는 장면도 나와서 웃펐네요
^^

좋은 책이 정말 널리 읽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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