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블루 재스민> : 몰락의 근원

by 이봄




이 매력적인 영화는 캐릭터 영화의

진수를 보여준다.

제목이 암시하듯이 영화는 우울한,

우울할 수밖에 없는

'재스민'이란 캐릭터를 보여주는데 집중한다.

사건과 상황은 주인공이 정말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기 위한 장치가 되어 그 안에서 반응하는

인물의 심리를 해부하듯 드러낸다.




재스민 (케이트 블란쳇)




재스민 역할을 맡은 케이트 블란쳇

말 그대로 인생 연기를 펼쳐 보이는데

영화가 전개되는 내내 그녀가 느끼는 감정이

생생하게 전달되어 콩닥거리는 가슴을

진정할 수가 없었다. 대단하다.

케이트 블란쳇이 아니면 다른 누가 재스민 역을

맡을 수 있을지 상상할 수가 없다.



재스민의 이야기가 내게 강렬한 이유는

"삶의 뿌리를 어디에다 두고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도발하듯이 던지기 때문이다.



재스민은 뉴욕에서 최고 상류층의 삶을

살다가 몰락한 후

샌프란시스코에서 자신과는 대극점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하류층의 삶을 사는 여동생 '진저'의 집에

얹혀 지내게 된다.




재스민과 여동생 진저 (샐리 호킨스)




영화는 화려했던 과거의 재스민과

현재의 재스민을 교차적으로 보여주면서

그녀가 지금의 삶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괴리감과 고통을 실감 나게 묘사한다.



흥미로운 점은,

한눈에 보기에도 고급스럽고, 우아하며,

지적이고, 교양 있고, 세련된 재스민의 삶이

무엇으로 지탱되어 왔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무지(ignorance)다.

그녀는 자기 삶의 표피를 장식하고 있는

그 화려한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그것을 가능하게 한 남편의 사업과 돈,

그리고 부부관계의 진실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알고 싶지 않았기에 외면했다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사업가인 남편은 엄청난 사기꾼이었고,

사기를 쳐서 번 돈으로

그런 상류층의 삶을 살았다.

그녀는 남편이 부도덕한 짓을 해서

돈을 벌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그것을 안다는 사실을 인정한 후에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도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더 솔직하게는

그 화려한 삶을 포기할 수 없어서

스스로를 무지의 상태로 이끈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그렇게 자발적으로 무지해진 재스민은

남편이 자신을 상대로 부도덕한 짓을

하는 것도 보지 못하게 된다.

주변에 의해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된 재스민.

여자로서의 명예가 실추된 사실만으로도 괴로운데

남편은 그 내연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한다.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배신감에 크게 분노한 재스민은

어리석고 놀랍게도 남편의 사업 비리를

FBI에 폭로해버린다.

그게 자폭의 길인 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체.







그렇게 모든 것을 잃고,

땡전 한 푼 없는 신세가 되어

자기 집 거실보다 작아 보이는

동생 집에 얹혀있으니

재스민이 정신줄을 놓을 만도 하지 않은가.

하류층의 삶을 살면서도 현재의 자기 모습을

전혀 인정할 수 없는 재스민.

술과 신경안정제의 의존하여

쉴 새 없이 혼잣말을 하는 모습은

너무 적나라해서 눈을 돌리고 싶게 만들면서

보다 강력하게 시선을 고정시킨다.







어떻게든 노력하여 제대로 된 직업도 갖고

비슷하게나마 예전의 삶의 모습을 되찾고 싶지만

현실은 전혀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녀는 너무 오랫동안 남편의 능력에 의존하여

소비적인 인생을 살아왔고,

자기 힘으로 돈을 벌어먹고사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사람이 된 것이다.

그리하여 본능적으로 자기에게 그런 삶을

되찾아줄 남자를 찾으려 들고,

또 아주 운 좋게 

전 남편만큼은 아니지만 꽤 그럴싸한 인생을

살 게 해줄 남자를 만나지만,

자신의 과거를 속인 게 들통이 나는 바람에

그마저도 파투가 난다.



이렇게 풀고 보니 재스민이

'뇌 없는 된장녀' 같이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사실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그녀의 행동에 대해 어떤 도덕적 판단도

하지 않았고, 그저 연민을 느꼈다.

누군들 화려한 삶을 살고 싶지 않을까.

그 화려함을 눈으로 직접 보니

오히려 그게 얼마나 놓기 어려운 것인지

이해가 가더라.




진저와 남자친구 칠리 (바비 카네베일)




보이는 삶이 자신의 전부인 사람들.

거짓과 속임수를 써서라도 유지하고 싶은

화려한 삶

....

그에 반해 재스민의 여동생 '진저'

자기 삶의 실체는 파악하고 사는 것처럼 보인다.

식료품 가게의 계산대 직원으로 일하며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인 그녀는

가난해서 고달프지만

정비공인 남자 친구와 데이트도 하며

그 나름의 소소한 즐거움이 있는 삶을 산다.

그러나 이 역시도 결코 녹록한 삶은 아니기에

재스민은 자기 주제도 모르고 동생의 삶에

훈수를 둔다.



이 영화는 모래성 같은 상류층의 삶보다

가난해도 가식 없이 사는 하층민의 삶이

더 진정성 있다는 식의 진부한 메시지를

말하지 않는다.

다만 양극에 있는 두 삶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할 뿐.







재스민을 보는 동안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주인공 블랑쉬

떠올랐는데 알고 보니 우디 앨런 감독이

그 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어 이 영화를 만들었단다.

하지만 그 희곡 속의 블랑쉬는 거친 현실에

유린당하는 이상주의자처럼 이해되는 반면

이 영화에서 재스민은

'삶의 진실에 대한 자발적 무지'

인해 고통받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이 너무 오랫동안 생각 없이 살면,

결국 자기가 누구인지,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를 잊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그런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능력조차 뇌에서 사라지는 것 같다.

재스민의 몰락은 생각하며 살지 않고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데 따른

결과가 아닐까.



고통과 시련이 사람을 성숙하게 한다고 하지만,

그게 다 맞는 말 같지도 않은 게

재스민 같이 그냥 완전히 무너지는 경우도

상당히 많지 않겠는가.

그녀는 다른 사람의 힘으로 마련된 꽃밭에서

꿀만 빨며 살았고,

자기 힘으로 삶을 만들어갈

현실적인 능력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남편이든, 부모든, 자식이든, 누군가에게

자기 삶을 통째로 위탁하는 것은

스스로 자신을 버리는 행위나 다름없다고

말하는 것 같다.







엔딩 장면에서 실성한듯한 재스민의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주는데

그 표정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거 같다.

몰락의 얼굴....

피곤하다는 이유로 사는 것에 대해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싶어 질 때마다

나를 각성하게 할 얼굴...


세상에 화려하기만 한 인생은 없다.




by 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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