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ill Alice...
기억이 없다면 '나'는 누구일까,
삶의 '연속성'을 잃어버린다면
그러한 삶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불가항력적인 병에 걸린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영화 <스틸 앨리스>는 이러한 질문에 답하는
한 여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나이 오십의 앨리스는
콜롬비아 대학의 언어학과 교수이자
해당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이고
여전히 뜻이 잘 맞는 사랑하는 남편이 있으며
장성한 세 아이의 엄마다.
큰 딸은 벌써 출가해서 사위까지 있으며
일과 가정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
그런 그녀에게 갑자기 날아든 날벼락같은 소식,
조발성 알츠하이머.
누가 보아도 그 병에 걸리기엔
너무 이른 나이인데....
아직 할 수 있는 일도,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많이 남았는데....
영화는 알츠하이머에 대처하는
앨리스의 일상을 따라간다.
특히 그녀가 기억을 잃어가는 전 과정이
당사자의 입장에서 섬세하게 그려지는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내가 나 자신이라는 실감을 상실해가며
자기 자신에게 점점 더 낯섦을 느껴야 하는
소외감과 외로움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앨리스를 통해 알츠하이머 환자가 느끼는
세상의 모습이 정말 어떠할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는데
그 고통의 깊이를 가늠하는 것만으로도
아득해지더라...
앨리스는 차분하고 침착하게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슬픔에 무너지지 않으려고,
일상을 유지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심지어 위트를 보이기도 하는데
요즘 어떠냐고 묻는 딸에게
“좋은 날에는 일반인 연기가 되는데
나쁜 날엔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라고 답한다.
그러나 병은 조금도 사정을 봐주지 않고
사정없이 그녀를 공격한다.
나는 생각했다.
차라리 뇌가 알츠하이머에 완전히 점령당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 된다면
내가 내 행동에 대해 아무 인식도 못 하고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는지
알 수 없다면 차라리 편할지도 모르겠다고.
병이 그녀의 존재를 잠식해가는 동안
자신이 점점 이상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고통스러운 것이다.
방금 일어난 일도 잊어버리고,
외출했다가 길을 잃고 집을 찾지 못하고,
자기가 좋아하던 색깔, 아이스크림의 맛,
심지어 자식들의 이름도 기억나질 않고,
그렇게 스스로가 바보 같아졌다는 걸 안다는 것.
알지만 막을 수 없다는 것....
자기 집안에서 길을 잃어버려
화장실을 찾지 못하고
마침내 바지에 실수를 하고 나서 앨리스가 보인
그 당혹스러운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찰나지만 거기엔 두려움과 수치심이
깊게 배어있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앨리스가 언어학자라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녀의 ‘지성’은 그녀의 병이 급속도로
악화되는 것을 막아주며
자신을 상실해가는 악조건 속에서도
두려움을 이겨내고 '품위'를 지킬 수 있게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고통의 크기를
배가 시키는데
평생 언어를 연구하고, 언어를 사랑하는 사람이
언어를 잃어가야 한다는 것...
누구보다 조리 있게 말하고,
정확한 표현을 해오던 사람이
간단한 단어 하나 생각나지 않을 때
느낄 깊은 좌절감......
전 인생에 걸친 모든 노력이 파도에 밀려
허물어지는 모래성같이 느껴지지 않겠는가.
그녀는 ‘뇌가 죽어가는 걸 느낀다’고 말한다.
앨리스의 병이 심화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내내
과연 나라면 앨리스처럼 할 수 있을까...
눈시울을 적시며 여러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병마'와 싸우는 주인공을
다루는 일반적인 영화나 드라마와는 다르게
이야기를 신파조로 풀어내지 않는
미덕을 지니고 있다.
눈물과 동정심을 이끌어내려 애쓰기보다는
주인공 앨리스와 함께 병에 대해 사유하게 만든다.
인간성의 높은 차원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지력이 남아있는 시간 동안
사력을 다해 신변을 정리하고,
기억 없이 살아야 하는 다가오는 삶을
준비하는 동안, 그녀는 남은 이성을 쥐어짜며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하려고 하고,
극도의 공포에 온 힘을 다해 맞선다.
이와 동시에
그녀는 아직 스스로 생각할 능력이 있는
현재를 온몸으로 누리려 한다.
“지금 이 순간을 살라고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전부니까요 “
앨리스의 이런 노력은 인간으로 태어난 그녀가
자신의 삶을 통해 구축해 온 ‘문명’을 지키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저는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애쓰고 있을 뿐입니다.
이 세상의 일부가 되기 위해
예전의 나로 남아있기 위해 “
불가항력적인 고통 앞에서 인간성이 빛을 발하는
순간은 바로 이런 때가 아닌가.
한계에 맞서는 인간의 모습에는
처연한 아름다움이 내재되어있다.
'병'이란 기본적으로
인간의 근간을 흔드는 힘든 경험이다.
기억을 잃는다면 과연 나를 나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를 진정한 나라고 느끼게 해주는 근거는
'기억'이 아닌가.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앨리스의 이야기는
‘그럼에도 나는 나’라고 말하는 것 같다.
병에 따른 고통의 경중을 비교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지만
이런 맥락에서 알츠하이머라는 병은
다른 여러 병들과는 좀 다른 차원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육신과 삶이 나의 주도권 밖에 있게 되는
상황이 주는 공포
내가 누구인지, 뭘 하는지도 모르면서
살아야 하는 삶
이어질 미지의 '삶'에 대한 두려움...
이것은 병의 결과로써 '죽음'이 예견되는,
'죽음'의 공포에 맞서야 하는 암과 같은 병들과는
정말로 대극점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영화는 또한 가족의 사랑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시사하는데 성숙한 가정의 모습이란
이런 것일까 생각하게 되더라.
아내와 엄마를 사랑하지만 자기 삶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딜레마를 무척 솔직하게 드러낸다.
울고 불고 패닉에 빠지기보다는
각자 자신의 자리를 지키면서 어떻게 하면
환자를 지켜줄 수 있을지 현실적인 방법을
모색한다.
특히 앨리스의 병이 유전병임이 밝혀지고
세 자녀들 중 임신 중인 큰 딸이 어머니의 병을
물려받았음이 밝혀질 때, 그래서 뱃속에 있는
아이에게도 유전되었는지를 확인해야 할 때
이 가족이 보인 의연한 모습은 정말 놀랄 정도다.
큰 딸은 어머니인 앨리스를 통해 자신의 미래를
본다. 그러나 어머니를 닮아 강인한 딸은
힘겹고 그래서 흔들리지만
주어진 운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런 가족들의 모습이 보기에 따라 조금 차갑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들이 보인 태도가 이런 상황에서
서로에 대한 가식 없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연출 또한 매우 훌륭하다.
치매환자가 나오는 드라마에서 흔한 설정,
즉 길을 잃은 주인공이 위험에 처하고
극적으로 구조되고
가족들이 모두 울고불고
요란스럽게 환자를 걱정하는
이런 극적 장치나 대단한 클라이맥스
하나 없이도 엄청난 몰입을 이끌어 낸다.
주인공의 심리 변화를 밀도 있게 그렸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알츠하이머 환자(앨리스)가 느낄
심리적 세계를 영상으로 구현해 낸
몇몇 장면들은 잊히지 않을 정도로 탁월하다.
줄리안 무어만큼 이 배역에 꼭 알맞은
다른 배우를 상상할 수 없다.
지성과 미모를 겸비했다는 말이 딱 어울린다.
앨리스의 삶에는 수많은 영광과 기쁨의
순간이 있었다.
아이비리그 중 하나인 콜롬비아의 교수가 되었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태어나던 순간이 있었고
남편을 만나 사랑하고 연애하던 시절이 있었고...
그러나 병에 걸린 그녀의 기억이
반복해서 돌아가는 지난날의 한 지점은
아직 어린 소녀였던 그녀가 자신의 아버지와
언니와 바닷가에서 놀던 순간이더라...
이 장면이 오래도록 내 가슴에 남을 것 같다.
..........
앨리스는 여전히 자신으로 남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지켜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아프지만
그녀와 같이 의연해지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슬퍼서 보기 힘들지 않을까 걱정하지 마시길.
슬픔보다는 아름다움이 훨씬 큰,
힘을 주는 이야기다.
by 이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