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다 미리를 좋아한다. 그녀의 만화는 재밌고, 가볍게 스윽스윽 읽히면서도 마음에 큰 여운을 남기고, 내 주변의 여러가질 생각하게 만든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저렇게 살아야 한다고 힘주어 설교하지 않는데도 그 어떤 책보다 삶의 태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번에 읽은 <주말엔 숲으로> 는 특히 더 그랬다. 말 그대로 주말에는 숲에 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든 것이다.
서른 다섯, 미혼의 세 친구가 시골의 숲에서 보내는 주말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은 주말 동안 숲에서 깨달은 삶의 지혜가 주중의 일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시골로 내려가 살며 친구들을 맞이하는 호스트의 역할을 하는 주인공 하야카와는 숲속의 현자같은 면모를 지닌 인물로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지나가는 말처럼 부담스럽지 않게 전달하는 놀라운 내공을 지녔다. 전문 번역가인 하야카와는 ‘나답게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몸소 보여준다. 직업적 특성상 꼭 도쿄에서 살지 않아도 되는 그녀는 시골로 간다. 그렇다고 그럴듯해보이는 슬로우 라이프를 표방하지도 않는다. 귀농도 아니다. 나는 바로 이런 점을 아주 높이 산다. 시골에서의 삶마저 어떤 규격화된 틀에 넣으려는 압박을 가볍게 손사레치며 털어낸다. “슬로우 라이프라니? 거북이 같아!” 라고 웃으면서 벗어난다. 또 시골에 살면 꼭 직접 재배한 식재료를 사용해야 하는 거냐며 원하는 먹거리를 온라인 쇼핑몰에 주문해서 배달받아 먹는다. 시골살이에 대한 일반적인 편견이 민망해지는 순간이자 통쾌한 지점이다. 그녀는 그냥 숲이 좋을 뿐, 좋아하는 것 가까이에 살고 싶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야카와답게 살 뿐이다.
그녀는 자기를 찾아오는 친구들을 데리고 숲으로 간다. 숲에 사는 식물과 동물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친구들에게 숲 해설가의 역할을 하는 그녀는 멋지다. 재밌는 점은 그녀가 숲의 생태계와 우리 현실의 닮은 구석을 재치있게 포착하여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분명히 숲과 숲에서 할 수 있는 활동들에 관한 이야기인데 현실의 문제를 푸는데 도움이 되는 혜안이 담겨있다. 하야카와의 친구인 마유미와 세스코는 경력있는 직장인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과 속에서 직장 동료들과 부딪치거나 진상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 일은 짜증스럽고 고되다. 그런 두 사람이 주말에 하야카와와 함께 숲에 다니면서 주중의 일상을 좀 더 가볍게 살아낼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이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들, 이건 할 수 없다고 믿었던 것들, 그렇게 삶의 바운더리를 한정짓던 경계들이 흐려지면서 가능성이 확대된다. 그러자 일상도 인생도 좀 더 살아볼만한 것으로 변한다.
이 밖에도 이 책에는 소소한 재미와 즐거움이 깨알같이 숨어있다. 마유미와 세스코는 하야카와의 시골집에 올 때마다 도쿄에서 인기있는 맛집의 음식이나 디저트를 선물로 가져오는데 그걸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언젠가 도쿄에 가게 되면 꼭 가서 먹어봐야지 하면서 눈여겨 봐두었다. 주인공들이 숲속 호수에서 카약을 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 물 위에서 하는 엑티비티에 대해 막연한 공포를 갖고 있던 나에게 카약은 쉬우면서도 신나는 여가활동으로 보였다. 이 정도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내가 직접 숲에 가지 않아도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대리만족 효과가 난다는 점이다. (하하) 그래도 역시 가능하면 직접, 자주, 숲으로, 공원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 이 책을 피로에 찌든 모두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 피톤치드같은 작품이다.
"새에게도 모두가 그런 것처럼 이름이 있으니까
우리도 마찬가지겠지.
그냥 '인간'이라는 사람은 한 명도 없는 거야
그저 인간이라고만 여기니까
생명이 가벼워진다, 라는 말이지. " - <주말엔 숲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