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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Sep 26. 2019

이슬아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요즘 출판계에서 가장 핫한 작가인 이슬아의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를 드디어 완독했다.  이슬아 작가의 컬럼을 즐겨 읽고, 일간 이슬아에 대한 소문도 익히 들었지만 사놓고 읽지 않은 다른 책들에 밀려서 이제서야 책으로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기대했던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좋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랜만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앞에서 설레임을 느꼈다. 요즘 웬만한 멜로 드라마나 로맨틱 코미디에도 꿈쩍하지 않던 나의 무뎌진 가슴이 딸과 엄마의 사랑을 다룬 이야기 앞에서 두근두근 설레인 것이다. 예술가들을 유명하게 만든 수많은 뮤즈들의 스토리를 알고 있지만 아무리 기억을 뒤져도 자신의 모친을 뮤즈로 삼은 경우는 내가 아는 한 이슬아가 유일하다. 이 점이 벌써 너무나 신선하다. 이슬아 작가는 사랑하는 엄마에게서 영감을 얻어 이 작품을  창작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그 사람을 제대로 알고 이해하는데서 시작한다. 그 점에서 이슬아는 충실하다. 그녀는 자기가 존재하기 이전의 엄마의 삶에 이미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이야기로 꾸릴만큼 자신의 내면에 품고서 다듬었다.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젊은 작가가 엄마를 자기 삶의 배경이나 조연으로 삼지 않고, 나름의 역사를 가진 개인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이 작품이 갖는 또 하나의 미덕은 쉽게 신파로 빠져버리는 모녀 서사의 클리쉐를 가볍게 빗겨나간다는 점이다.  작가 본인이자 주인공인 이슬아와 엄마 복희의 캐릭터는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보통의 소시민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또래의 어떤 엄마나 딸과도 다른 파격적인 모습도 지니고 있다. 보편성과 개성의 적절한 배합에서 캐릭터의 독특한 매력이 발생한다.  복희씨는 자식을 지극히 사랑한다는 점에서 여느 엄마와 다르지 않으나 딸의 흡연이나 연애 그리고 성관계에 대해서 열린 태도를 지니고 있고, 그것에 대해 딸과 편하게 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남다르다.  그녀는 간섭 없이 아이들을 키웠는데 애들은 모두 잘 자라서 이렇게 훌륭하게 되었다.  나는 행간에서 복희 씨의 육아법을 읽어내려고 나도 모르게 집중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딸을 키우는 엄마로써 우리 딸이 이슬아 작가처럼 자기 주도적인 사람으로 자랐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 것이다.   주인공 이슬아 또한 여느 딸처럼 엄마에게 괜히 신경질도 부리고 짜증도 내고 엄마가 없는 동안 동생이랑 죽도록 싸우는 등 보통의 딸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무살이 되자마자 독립하여 스스로의 삶을 꾸려나간다는 점에서 남다르다.  그녀는 용돈이 아니라 생활비를 직접 벌어 봄으로써 생계를 유지한다는 일의 ‘현실’을 간파한다.  그리고 자신이 몸으로 체득한 그 현실의 감각을 바탕으로 부모가,  특히 엄마가 자신들을 키우기 위해 얼마나 고되게 노동해왔는지를 절절히 깨달은 것이다.  이 책에는 모녀가 먹고사니즘의 바탕 위에서 고군분투하는 일상이 펼쳐진다. 그런데 삶의 고단함을 말하는 그 이야기가 참 반짝반짝하고 그 어느 명품 귀금속보다 빛난다. 거기에는 순도 높은 사랑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슬아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몇 번이나 울컥했지만 눈물은 흘리지 않았는데, 이 모녀의 사랑이 샘이 나서 그들의 이야기에 내 마음을 다 주고 싶지 않다는 야뱍함이 올라온 것이다.  그렇다. 이 모녀의 사랑은 값지다. 엄마처럼 살기 싫다고 외치는 딸들의 이야기만 보다가 엄마가 좋다고 너무너무 좋다고 말하는 반전의 이야기가 너무 신선한데다  진솔하고 게다가 재미있고 감동적이어서 좋다. 너무 좋은데,  그런데   신경질이 난다.  나의 내면의 아이가 깨어나 질투한다.  이런 모녀 관계가 있을 거라곤 차마 상상해보지도 않았다. 나는 물론이고 내 주변에 친구들도 모두 엄마랑 사이가 나빴으니까. 그러니까 이슬아의 이야기는 일종의 모녀 로맨스의 판타지 버전인데, 허구여야 마땅한 그 이야기가 사실을 바탕으로한 다큐라니까 내 맘이 그저 대리만족에서 끝나지 않고 샘을 부리는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다.  그러나 내게도 희망은 있다. 울 엄마와 내가 복희와 이슬아처럼 지내지는 못했지만 내 딸과 나는 이제 시작이니까, 나는 복희 같은 엄마가 될  기회가 있다.  이런 생각을 하자 이번에는 기대감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이고, 이슬아 작가의 이야기가 사람을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게다가 이 영리한 작가는 자기가 가진 재산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넉넉치 못한 형편 탓에 엄마도 딸도 온갖 직업을 전전하고 정말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지만 글에 나타나는 이들의 삶은 결코 비루하거나 안타깝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들은 굉장히 있어보인다. 작가 본인이 책 속에서 언급한대로 그 모든 경험이 글을 쓰는데 밑천이 되기 때문이다. 세상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재미난 이야기의 밑천. 글쓰기 장사를 해서 먹고 사는데 그것은 엄청나게 값진, 대체 불가능한 자본인 것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경험이 많다고 무조건 글을 잘 쓰는 건 아니다. 재능을 타고 났고, 거기다 노력파이기까지 하다. 단 돈 500원이라도  돈을 받고 팔  수 있을만한 수필을 날마다 한 편씩 써내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글을 써본 사람은 누구나 알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 이슬아는 오늘날의 이슬아 작가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그녀의 글이 자기연민에 빠져 감정과잉 상태인 글이 아니라서 좋았다. 우리 가족 이렇게 고생하면서 살았다며  힘들다고 징징대지 않고, 자신과 가족을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형태의 삶 중에서 하나로  거리를 두고 볼 수 있는 그 담담한 자세가 좋았다. 진짜 멋지다고 생각한다. 젊은 작가의 이런 스웩이  부럽다.  



                 


이슬아의 엄마 복희씨 캐릭터 

                        



                                         

덧) 복희씨는 좋겠다.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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