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프 왈도 에머슨 (1803 - 1882)은 미국을 대표하는 사상가이자 시인으로 초월주의 (혹은 초절주의) 운동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에머슨이 쓴 <자기신뢰>를 읽게 된 동기는 시인 메리 올리버가 자신의 에세이집 <완벽한 날들>에서 에머슨에 대해 쓴 글을 읽고 큰 관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위대한 시인은 에머슨에 대해 “나는 가치있는 일을 시작할 때마다 에머슨을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수준 이하의 상태에 있을 때도 그는 내 곁에서 자애롭고 다정하면서도 단호하게 나를 바로잡아준다. (완벽한 날들 85p)” 라고 말했는데, 대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는 멋진 소개가 아닌가? 올리버에 따르면 “에머슨은 가정적이고 사회적이고 집단적이며 행동을 요구하는 세상을 외면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흔들림 없는 내면의 광휘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직관적이었으며, 이성적인 말을 만들지 않고 열정적이고 번역 불가능한 노래에 심취했다. (같은 책 81p)”
큰 기대를 가지고 에머슨의 <자기 신뢰>를 처음 만났을 때 가장 놀란 점은 책이 너무 얇다는 사실이었다. 내 느낌에는 두꺼운 이론서의 한 두 챕터 정도되는 분량이었다. 금방 읽을 수 있을 거 같아서 좋기도 하면서 뭐랄까, 엄청난 내용이 담긴 두툼한 책을 기대한 탓에 허탈한 기분도 느꼈다. 이 얇은 책에서 에머슨은 단호하지만 목에 힘이 들어가지는 않은 담담한 어조로 ‘사람은 마땅히 자기 자신으로 살아야 한다.’ 고, 그 밖에는 달리 삶의 목적도, 이유도, 가치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눈에 띄는 점은 에머슨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개인이 사회적 요구에 맞추느라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고 살아가는 점을 크게 안타까워 한다는 것이다. 에머슨의 주장이 ‘나답게 살자’는 요즘 우리 사회의 트랜드와 너무나 잘 어울려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에머슨은 본인이 주장한대로 자기 내면의 소리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 그러한 에피소드가 이 짧은 에세이에 종종 나온다. 독실한 크리스찬이기도 한 그는 ‘자신이 악마의 자식이라면 악마의 자식으로서 살겠다고’ 대꾸할만큼 자기 본연을 거스르는 주변이나 사회의 요구를 내쳤다. 그리고 밖에서는 거창하게 ‘정의’에 대해서 떠들고 다니면서 정작 자기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은 잘 챙기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집에 가서 네 가족에게 먼저 똑바로 행동하라고 충고한다. ‘멀리 있는 흑인들에 대한 믿을 수 없는 온정으로 당신의 냉담하고 무자비한 야심을 치장하지 말라’고 일침을 놓는다. 당시에는 노예제도 폐지가 핫 이슈였고, 에머슨은 당연히 노예해방 운동에 적극적이었고 기여한 바도 크다. 그는 위선적인 사회활동가들에게 정신 차리라고 돌직구를 날린 것이다. 그러면서 돌직구가 무례하긴 하지만 가식적인 사랑보다 훌륭하다고 말한다. 아, 정말 속이 시원하다. 현재에도 자기 야망을 위해 주변 사람들을 이용하는 가짜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에게 에머슨처럼 말해주고 싶다.
그는 요즘 말하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잘 나서가 아니라 그냥 자기 자신이라서 당당했고, 그 자체로 충분하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들이 모두 이런 태도로 살아야 한다고 격려하는 것이다.
장미는 존재하는 매순간 완벽하다.
잎 눈이 트기 전에도 장미의 온 생명은 활동한다.
꽃이 활짝 피었다고 생명활동이
증가하는 것도 아니고,
잎이 떨어져 뿌리만 남았다고 생명활동이
감소하는 것도 아니다.
장미의 본성은 어떤 순간에도 똑같이 만족하고,
자연도 장미의 본성에 매순간 만족한다.
랄프 왈도 에머슨 <자기신뢰>
장미처럼 살고 싶다. 에머슨의 글을 읽으면서 이 책이 왜 2 세기가 넘는 긴 시간동안 전세계적으로 꾸준히 읽히고 사랑받는지 알 거 같았다. 그는 우리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일깨우며, 거기엔 조건같은 건 없다고 말한다. 우리가 흔히 ‘자녀들은 부모가 믿는만큼 자란다’고 하는데 우리 자신도 우리가 믿는만큼 성장하고 발전하지 않겠나? 내 안에 아직 내가 모르는 힘과 가능성이 있다고 믿고 매사에 당당하게 지내야겠다. 자기 신뢰! 내가 나를 확실히 믿어주면 초조함은 사라지지 않을까?
최근 들어 미국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읽고 있는데 그러면서 지난 세월 내 학업과 독서가 얼마나 유럽 중심이었는지 새삼 깨닫는다. 어릴 때는 지적 허영심이 심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미국 문학이나 사상을 무시했던 거 같다. 그런 한편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미국 사람들도 인문학적인 부분에선 유럽을 선망하고 의지하는 면이 크다는 생각이다. 뉴욕 유학 시절에 교재로 읽었던 책은 대부분이 유럽 작가들 것이었다. 이런 이야길 왜 하냐면 젊은 시절에 미국의 철학이나 문학을 낮게 보는 편견이 없었더라면 그 때 벌써 에머슨을 읽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이다. 좀 더 일찍 알았으면 참 좋았겠다. 이 책은 나같은 중년은 물론이고, 젊은이들에게 더더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오래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을 사진으로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