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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Apr 28. 2020

강이슬 <안 느끼한 산문집>






최근 들어 너무 자기 계발서만 읽었더니 머리에 과부하가 걸리는 듯하여 가볍게 읽을만한 책을 찾고 있었는데 마침 마이리틀앤서점 사장님이 이 책 <안 느끼한 산문집>을 강력하게 추천하셔서 고민 않고 데려와 읽기 시작했다.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 수상작이라는 영예를 안은 이 책의 작가 강이슬은 방송작가인데 그가 참여한  여러 프로그램 중에서도  <SNL 코리아>가  눈에 확 띄었다. 이 같은 이력을 확인하는 순간 이 작가가 입담이 좀 있겠구나 싶었는데 역시나 그랬다. 재미있는 이야기꾼의 소질이 충만한 강이슬 작가는 자신의 시시콜콜한 일상을 담은 이 산문집을 통해 사람을 웃겼다 울렸다 감정의 롤러코스터에 태우고 시원하게 질주한다. 신난다. 재미난다. 









책 표지를 펼치면 날개 부분에 작가 소개가 보인다. 스스로를 '욕을 잘하지만 착하다고' 말하고, '가난을 팔아서 돈을 벌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가지고 있다'라고 소개하는 대목에서 한번 빵 터졌다. 가난을 팔아서 돈을 벌겠다니, 봉이 김선달보다 더한 장사꾼이 아닌가?!  엄청난 이야기보따리를 갖고 있지 않고서야 이런 대담한 꿈을 온 천하에 표명할 수 있을까? '포부가 대단한 젊은이로다!' 라고 응수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전북 익산이 고향인 작가가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시작된 서울 살이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십여 년의 서울 살이 동안 그녀는 얼마나 가난했는지  '과장이 아니고 100원 단위를 아껴가며 살아야 했다. (55P)' 방송국의 막내작가로 온갖 설움을 당하며 개같이 번 돈은 월세와 차비로 나가면 몇 푼 남지도 않아서 맘 편하게 점심을 사 먹을 여유도 없을 정도다. 그런데 이런 흑백 화면 같은 비루한 일상이 그녀의 글을 통해서 컬러풀한 낭만의 청춘영화 같은 빛을 띤다. 자신이 쓴 글 속에서 작가 강이슬은 정말로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여주처럼 빛난다. 벽에 금이 가고, 하수구에서 똥내가 올라오는 망원동의 옥탑방에서 룸메이트랑 개 한 마리 키우며 살아가는 젊은 처자가 일도, 연애도 잘 해보겠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평범한 일상이 그렇게 달달하고, 짭짤하고, 새콤할 수가 없다.  모두 초긍정적이고 솔직 발랄한 여주의 캐릭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에 적극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강이슬 작가의 베이스캠프인 망원동이 리즈 시절 나의 주 활동 무대였기 때문이다. 망원동 옆 서교동에 살았던 나는 친구가 있는 망원동을 뻔질나게 드나들었고,  인디밴드를 하는 동생들과 온갖 장르의 젊은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그 일대를 (연남동-동교동-상수동- 연희동)  매일같이 헤집고 다녔다. 나와 친구들 모두 강 작가처럼 가난했고, 술도 어지간히 많이 마셨고, 할 일도, 해야 할 일도 참 많던 청춘이었다. 강 작가의 이야기가 그녀와 나 사이의 나이 차이를 가뿐히 뛰어넘으며 망원동 KIDS라는 카테고리로 나란히 묶어주는 것 같아서 나는 주책맞게도 뛸 듯이 기뻤다. 그녀의 이야기를 현재진행형으로 온전히 이해하는 기성세대인 것이 뿌듯했다. 그녀의 경험담에 내 추억으로 화답하며 아주 인터랙티브한 독서를 했다. 덕분에 나도 그 시절의 나를 멋지게 추억할 수 있었다. 



<안 느끼한 산문집>은 느끼해지지 않으려는 작가의 부단한 노력에도 조금은 느끼하다. 그의 이야기들은 어떻게 보면 뻔한 감상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어김없이 눈물이 글썽 해지거나 가슴이 몰랑해진다. 마음을 흔든다. 그래서 이 정도의 느끼함이 있어야 좋은 글이구나 깨닫게 한다. 한편으로는 같은 또래 작가인 '이슬아' 작가 생각도 많이 났는데 두 사람 모두 젊고, 가난하고, 글을 무지 진솔하게 또   재밌게 잘 쓰고, 게다가 이름도 '이슬'이라는 두 글자가 겹쳐서 그랬던 거 같다. 



아무튼 결론적으로 말해, 내가 보기에 강이슬 작가는 가난을 팔아서 부자가 될 거 같다. 그리고 참 행복한 사람이다. 글로써 스스로의 인생을 재미있고 감동적인 인생으로 만들 수 있으니 말이다. 쓰고 보니 그 자체로 이미 부자라는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책 리뷰를 쓰는데 기분이 참 좋다.  젊은 작가의 재기 발랄하고 뭉클한 글이 코로나로 집에 갇혀 괴롭고 외로웠던 내 마음을 위로해 주고 꽉 채워준 덕분이다.  



덧) 책 속에는 강 작가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버리고 와서도 그걸 중고로 팔았으면 돈이 되었을 거라며 후회하는 모습이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다. 지난 20년간  물가는 계속 올랐는데 임금은 제자리이거나 더 나빠진 상황 속에서, 집이 서울인 것도 스펙이 되어버린 이곳에서 날마다 고군분투하는 청춘들에게  아무것도 모르면서 막  충고하는 어른이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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