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테레즈 라캥> : 일탈을 부르는 삶의 조건

by 이봄




19세기 여성의 복식에 관해 검색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이 영화의 포스터를 보고

엄청난 끌림을 느끼고 시청하게 되었다.

제목을 보고 단박에 에밀 졸라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는 건 알았지만, 사실 난 소설을

읽어보진 않았다.

그토록 유명한 고전 명작을 왜 읽지 않았는지

스스로도 의아했지만 영화를 보면서는 원작을

읽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캐릭터에 대한 선입견이 없었기에

영화에 나오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주인공 테레즈의 성적 욕망을 전면에 내세운

범죄-스릴러 영화 이건만,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삶의 조건'에 대해

거듭 생각하게 되었다.



내 비록 이런저런 불평과 불만을 안고

21세기를 살고 있지만 19세기에 여성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진심으로 감사하다.




테레즈 라캥 (엘리자베스 올슨)




자신의 삶에 자신의 의지가 단 1%도

반영될 수 없다면 그러한 조건 속에 놓인

인간이 삶을 지속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에는 뭐가 있을까.

'일탈'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내 삶을 특정 짓는

모든 것의 눈을 속이고, 그러한 속임이

가능한 범주 안에서 자신에게 허용되지

않은 일을 함으로써 스스로를 만족시키기.



유부녀인 테레즈가 가족과 이웃들의

눈을 속이고 내연남인 로랑과 벌인

애정행각은 '구원으로서의 일탈'이었다.

그녀의 행동에 도덕적 잣대만 들이댈 수 없음은

그것이 희망 없는 삶을 단속적으로나마 지속하기

위한 '연약한 방편'이었음을 알기 때문이다.



까미유 (톰 펠튼)과 고모 (제시카 랭)




가엾은 테레즈...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고모집에 얹혀살게 되었다.

고모는 병약한 자신의 아들 까미유 밖에 모르고

테레즈는 그 집안의 일손이 되어, 사촌오빠의

병시중을 들며 하녀처럼 성장한다.

언젠가 아버지가 자신을 데리러 올 거란 믿음으로

버텨왔건만 아버지의 부음이 전해지고,

테레즈는 고모의 강요로 사촌오빠 까미유와

결혼을 한다.



수중에 돈도 한 푼 없고, 교육도 받지 못한

테레즈의 삶에는 자유의지가 설 자리가 없다.

테레즈는 가출을 시도해보지만

그 경험은 오히려 테레즈에게 자기 삶의 한계를

뼛속까지 깨닫게 한다.

밥이라도 먹고, 목숨을 부지하려면 고모네 집에

사는 수밖에 없다.

고모의 말처럼, 테레즈는 까미유의 천사,

즉 그의 수발을 드는 인생으로 삶의 항로가

딱 정해져 있다.



차라리 자아도, 욕망도 없는 가축이라면...

생각할 능력과 자유의지라는 게 있는

인간이라는 것이 외려 족쇄로 느껴져

질식할 거 같은 답답함을 느꼈다.



말 잘 듣는 순종적인 테레즈로 살면서

고모와 까미유의 전적인 믿음을 얻은

테레즈는 나중에 로랑을 만나 대범하게

부부의 침실에서 애정행각을 벌이고,

망설이는 로랑에게 '자신이 그들을 길들였다고,

그들은 전혀 의심하지 못할 거라고' 하는데

나는 그 말이 너무 가슴 아팠다.


테레즈에게 왜 다른 방법을 찾지 않았냐는

질문을 던질 수는 없다.

테레즈는 자신의 욕망을 (그것이 무엇이건)

건전한 방식으로 실현해 본 경험이 전혀 없고,

자립을 위한 기본적인 여건인 경제력과 교육이

전혀 뒷받침되지 않았다.

그런 걸 요구할 여지조차 없었던 것이다.

테레즈가 남달리 성욕이 강하다고 볼 수도 없다.

오히려 성적 욕망을 남몰래 충족하는 것만이

유일하게 가능했기에 그런 일탈을 감행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테레즈는 로랑과 만나면서 점점 더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다.

단순히 남자 구실 못하는 까미유가 싫은 게

아니다.

로랑과 섹스를 하며 테레즈는 자유롭게

자신을 풀어놓는다. 거기서 난생처음으로

자신의 의지가 반영되고 충족되는 기쁨을

경험하는 것이다.

삶에 대한 희구가 내포된 위태로운 몸짓...



테레즈와 로랑은 결혼하기 위해

까미유를 사고사로 위장해 죽인다.

이혼만 할 수 있었어도 이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그러나 천성이 악하지 못했던 이들은

스스로 죄책감에 시달려 결국

자살을 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범죄 이후 괴로워하는 테레즈와 로랑을

보는 내내 참, 착잡했던 것이

범죄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싶고,

요즘 세상엔 보험금을 노리고

배우자나 가족을 죽이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잘 사는 경우도 많은데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고 자결하다니

그야말로 19세기적인 인간상이로군 싶더라.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에 의한

끔찍한 범죄가 영화와 현실, 양쪽 모두에서

서슴지 않고 벌어지는 걸 일상으로 경험하는 중에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캐릭터라니...

참으로 순진해 보이고, 외려 신선했다.




까미유와 로랑 (오스카 아이삭)




사진 속의 장면을 보면서

무척 맘이 아팠던 기억이 난다.

키스를 하는 그녀의 표정에서

어떤 간절함과 슬픔이 진하게 묻어난다.

이것이 궁극적으론 '진정으로 살고 싶다'

욕망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다.

명장면이다.

엘리자베스 올슨의 섬세한 연기가

테레즈를 단순한 불륜녀로 단죄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클래식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화면을

세련되고 감각적으로 전개시키는 연출력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시대극의 디테일을 꼼꼼히 챙기면서

현대적인 감수성에 맞는 리듬으로 끌고 간다.

모든 출연진들이 오버하지 않으면서

자기 캐릭터를 200% 표현해주었다.

까미유 역을 맡은 톰 펠튼 정말 엄지척.

병약한 졸장부를 아주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미남자가 이렇게 망가지기도 쉽지 않다.



인간으로 태어나 남자와 똑같이 욕망이 있고,

자아의 꿈틀거림을 느끼면서도

그냥 주어진 조건대로만 살아야 했던

이전 시대의 여성들을 생각해본다.

얼마나...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테레즈처럼

살다 죽었을까.

21세기인 지금도 테레즈 같은 조건에 놓여있는

여자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녀의 죄가 엄중함에도 쉽게 단죄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by 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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