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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또개 Dec 19. 2023

우리 집 열쇠 좀 맡아줄 수 있니?

우리 아파트 홍반장

코로나 직전에 다녀온 여행을 마지막으로 4년 만에 한국을 방문하게 됐다. 

가족과 친구들 만날 생각에 들뜬 기분도 잠시, 설레는 여행을 앞두고 한 가지 걱정과 고민이 생겼다.


6주 동안 열쇠를 어디에 맡기지?


최근에 우리 아파트에 좀도둑이 두 번이나 들었다. 한 집은 집주인이 병원에 입원한 틈에 또 한 집은 잠시 외출한 사이 일이 벌어졌다. 두 집 모두 연세가 많은 노인이 거주했고 범인은 현금, 보석과 같은 금품을 집에 보관하는 노인을 겨냥한 듯 보였다. 침입자는 현관의 CCTV를 교란해 교묘하게 피해 가는 바람에 단서 하나 잡지 못했다. 


이 와중에 우리는 6주 동안 집을 비워야 한다니...

우리는 여행 가기 전에 만반의 준비를 하기로 했다.

집 내부에 설치할 CCTV를 마련하고 가재도구 보험(Hausratversicherung)을 들어놨다. 그리고 특정 시간에 조명을 켜서 사람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스마트 조명이 원격으로 잘 작동되는지 확인도 마쳤다.

그럼에도 여전히 불안했다.


그때 메시지가 도착했다.


“혹시 너희 드릴 가지고 있니?”






윗집엔 우리 또래의 독일 여자 P가 산다.

우리는 서로의 택배를 맡아주며 안면을 트게 되었고 그때만 해도 나는 그녀가 나와 같은 내향형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 그녀가 조심스러운 듯 수줍게 인사해 내 멋대로 그녀는 나와 같은 부류라 생각했다.

그런 그녀에게 나 혼자 내적 친밀감이 생겼고 그녀의 택배가 우리 집으로 배달되는 날이면 나는 더 성심성의껏 그녀의 택배를 맡아주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나와는 정반대 성향의 사람, 즉 인싸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땐 살짝 배신감(?)도 들었다.


P는 마치 한국 아파트 있는 반장 혹은 동대표처럼 보였다. 한국과 다른 점이라면 그녀는 무보수라는 것.

나쁘게 말하면 오지랖이 넓다고도 할 수 있는데 그녀 덕분에 지금 살고 있는 이곳에 애정이 생기기도 했다.

코로나가 잠잠해질 때 아파트 주민들끼리 파티를 열기도 했는데 그 파티의 주최자 역시 P였다. 그녀 덕분에 주민들과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었고 그 파티는 연례행사가 되었다.

우리는 그녀에 의해 아파트 주민이 모여있는 단톡방에 초대되기도 했는데 그곳에서 쏠쏠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 가령 나의 택배 행방이라던지... 

(그전엔 내 택배가 이웃에게 배달됐지만 이웃의 이름은 비밀이었던 쪽지를 들고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택배를 찾으러 다닌 적도 있었다.) 

그리고 아파트에 도둑이 든 이후로는 낯선 사람이라도 나타나면 단톡방에는 누구의 방문객인지 확인하는 메시지가 올라오기도 했다. 제 역할을 못하는 CCTV를 대신해 모두가 창문 밖을 쳐다보며 CCTV가 되기로 자처했다. 도둑이 들었을 때 P는 옆집에서 일어난 일이라 가장 먼저 상황을 알아차리기도 했고 병원에 입원해 계신 할아버지를 대신해 경찰에 직접 신고까지하기도 했다.

가끔 P는 이 집 저 집에서 목격되기도 했는데 여러 집에서 휴가를 갈 때면 P를 찾곤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녀는 이 집의 고양이 집사도 됐다가 저 집의 식물 집사가 되기도 했다.


도어록 사용보다는 아직도 열쇠를 가지고 다니는 독일에서 이웃에게 열쇠를 맡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물론 생판 모르는 이웃에게 열쇠를 맡기는 건 아니고 친분이 있는 이웃, 가족 혹은 친구에게 맡기는데 장기 여행이 많은 이곳에서는 흔한 일인 것 같다.

우리가 독일에 온 초창기엔 이 문화를 몰라 열쇠를 맡기지 않고 여행을 다녔는데 어느 날 하우스마이스터(Hausmeister)는 여행지에서 막 돌아온 우리를 붙잡고 앞으로는 자기에게 열쇠를 맡기라고 당부했다. 우리가 여행 간 사이 심한 폭풍우가 있었는데 당시 땅층이었던 우리 집에 물이라도 들어왔을까 봐 걱정했던 모양이다.

예전 집은 하우스마이스터가 상주했던 곳이라 모두가 그에게 열쇠를 맡겼지만,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상주하는 하우스마이스터가 없어 이웃들이 맡아주곤 한다.

사실 열쇠를 이웃에게 맡기고 싶어도 6주라는 시간이 부담스러울 것 같아 고민만 하고 선뜻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여행을 2주 앞두고 있을 때 P에게 문자가 왔다.

그녀는 드릴이 필요한데 빌려줄 수 있냐고 물었고 오고 가는 대화 끝에 자기는 사용해 본 적 없다는 내용을 덧붙였다.

남편은 기꺼이 장비를 챙겨 윗집으로 올라갔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드릴은 가정용 작은 드릴이었는데 단단한 콘크리트 벽을 뚫기엔 무리였다.

하지만 어째선가 남편은 최선을 다해 구멍 여덟 개를 뚫어 주고 왔다.

물론 한 번에 안 뚫려 있는 대로 용을 썼고 흠뻑 젖은 티셔츠를 갈아입기 위해 집을 오르락내리락거렸다.

그는 주어진 임무를 끝내고 마침내 숨겨뒀던 저의를 드러냈다.


"우리 곧 한국가! 4년 만이야"


"정말? 좋겠다! 얼마나 가?"


"6주.. 그래서 말인데 혹시 우리 집 열쇠 좀 맡아 줄 수 있니?"


"당연하지!! 뭐 더 필요한 건 없어? 중요한 우편물이 올 게 있으면 우편함도 매일 봐줄게"


이렇게 쉽다고?

며칠 동안 고민한 게 무색할 정도로 그녀의 대답은 놀랍도록 빨랐고 다른 게 더 필요한지 묻는 그녀의 질문엔 그저 집이 안전한 지만 봐달라고 부탁했다. 우리는 그녀가 열쇠를 맡아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기 때문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며 별별 걱정을 하던 나는 혹여나 우리 집에 도둑이 들었는데 가져갈 게 아무것도 없어 잔뜩 성이 난 침입자가 우리 집 보일러를 최대치로 올려놓고 가는 건 아닐까 잠시 떠올려 보았지만(전기, 가스 값도 폭등 할 때라), 그런 일이 발생해도 이제는 보일러를 바로 꺼줄 P가 있다는 생각에 이내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우리가 한국에 있는 6주 동안 그녀는 3일에 한 번 꼴로 우리 집에 방문해 집에 이상이 없다며 사진과 함께 메시지를 보내왔다. 본인이 바쁜 와중에도 세심하게 신경 써준 게 고마워 우리는 돌아오는 길 그녀를 위한 작은 선물을 챙겨 왔다.


"선물은 정말 기대도 못했어! 이건 내가 해야 할 당연한 일인걸"


어째서 이게 당연한 일일까? 나는 그녀의 말에 혼란스러웠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 채 유령처럼 지내며 이기적으로 살아왔던 과거의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한마디였다. 사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게 어려운 건 실망하기 싫어서 혹은 거절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거다. 그래서 애초에 기대하지 않은 척, 괜찮은 척하며 용기 내지 못할 때가 많았는데 이제는 내가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적어도 이곳은 과거의 내가 관성에 젖어 무사안일하게 살았던 고국은 아니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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