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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뚱 Apr 13. 2024

3번째 까미노 데 산티아고 day9

미칠 것 같이 좋은 날씨에 좋은 길, 하지만 아픈 무릎

2024년 4월 11일 목요일 날씨 너무 좋음

6시 전후로 부스럭부스럭 짐 싸는 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요즘 새벽에 깨지 않고 잘 자고 있는 편이라 가능하면 일찍 일어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랜턴을 켜고 한 시간쯤 걷는 시간에 대해 생각이 좀 달라졌다. 동트기 전쯤 여명이 있는 시간부터 걷는 것이 길을 온전히 보며 걸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굳이 일찍 걷지 않아도 좋겠다고 판단했다.

방의 순례자가 거의 다 나갈 즈음 일어나 배낭을 정리하고 창밖을 보았다. 해가 뜨고 있었다.

아~ 탄성이 나온다. 아름답다.

50 중반의 늙어가는 아저씨가 왜 이런 것에 경탄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어제 지나온 길 방향으로 밝아오는 아침을 하룻밤 잤던 방에서 그대로 볼 수 있는 기회는 까미노에서 흔치 않은 일이다.

짐을 싸서 키친으로 내려가니 선배님이 아침을 준비해 놓았다. 씨리얼, 과일, 요쿠르트와 작은 케이크까지 알차게 챙겨 먹는다. 이렇게 잘 챙겨 먹는 까미노는 또 처음이다. 길을 나서자 내리막이 시작된다. 무릎에 부담이 된다. 첫 번째 마을인 ventosa 벤또사까지는 6.6km 서서히 올라가는 코스다. 벤또사 초입에서 갈림길이 나오는데 오른쪽이 짧긴 하지만 나헤라까지 중간 마을이 없다. 당연히 왼쪽길 벤또사로 향한다.

갈림길

벤또사 성당 밑의 바르에서 까페 꼰 레체 한잔 마셔준다. 커피 맛집일세...

마을 정상에 있는 성당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헤라로 향한다.

나헤라까지는 10km 정도. 중간 5km 지점에서 쉬어가기로 하고 걸음을 옮긴다.

5km 조금 지났을 때 임시 대피처로 쓰였던 작은 건축물 유적을 만사 간식으로 에너지를 충전한다.

아들과 왔을 땐 비바람이 불었다 개었다 하는 이상한 겨울이었는데 오늘 날씨는 미쳤다.

Guardaviñas de Alesón 한낮에 이곳에 들어가 낮잠을 자고 가는 순례자도 제법 있나보다. 구글지도에 후기들이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나헤라로 진입하며 운동장이 너른 유치원 옆을 지나는데 아이들이 꽤 많다. 지켜보는 선생님 서넛과 삼삼오오 그룹 지어 재미있게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니 우리나라의 인구절벽이 새삼스럽게 걱정이 된다.

그렇게 크지 않은 스페인 지방 소도시에 꽤 많은 아이들을 보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스페인 아가들... 예뻐...


2016년 한 끼 해결하려 찾아들었던 소피아란 중식당을 찾아 걸었다.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메누 델 디아를 주문하는데 메인 요리 3가지를 고를 수 있었다. 중국식 샐러드, 볶음밥, 북경식 오리구이를 주문했고 추가로 교자를 시켰다. 배가 불렀다.

후식으로 커피를 시켰는데 꼬르따도를 가져다주었다. 이 집 커피 맛집이네... 꼬르따도는 우유가 조금 들어가는 커피 음료다.

후식까지 알뜰히 챙겨 먹고 야외 테이블에서 롤링타바고 한대 말아서 피고 길을 나선다.

나헤라의 까미노 표시

저녁을 해 먹을 요량으로 에로스키에 들러 장을 본다. 다 좋은데 배낭이 무거워진다. 가뜩이나 무릎도 아픈데...

나헤라 성 십자가 성당
나헤라 레알 산따 마리아 수도원

나헤라 레알 산따 마리아 수도원을 지나면 나헤라 고개가 나온다. 길지 않은 언덕을 오르면 나헤라 시내가 살짝 보인다.

알또 데 나헤라 alto de najera 언덕에서 본 나헤라 시내
사암 절벽에 만들어진 혈거 주거지 유적
알또 데 나헤라

길지 않은 나헤라 언덕을 넘으면 아조프라까지 포도밭과 밀밭이 이어지는 비교적 단조로운 길이 이어진다.

하지만 길은 오른쪽과 왼쪽으로 큰 산맥이 까미노를 따라오고 있어 지루하지 않은 7km 길이다.

밀에 이삭이 달린 모습은 태어나 처음 본다.

구름이 안 보일 정도로 날씨가 좋은 가운데 파란 하늘로 비행운이 한 줄 생겨 한컷 담아본다.

아소프라까지 멀지 않은 길에는 일행을 빼곤 길 순례자들을 볼 수 없다.

아소프라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알베르게가 너무 좋다 15유로로 싸진 않지만 2인실에 마당은 넓고 볕이 너무 좋고 조용하다.

프랑스길에서 가장 좋은 알베르게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내가 경험한 알베르게 중에서는 원탑이라고 감히 자신할 수 있다.

2인용 객실
2층에서 본 마당
빨래 너는 곳도 널찍
알베르게 마당에서 한가로움을 즐기는 순례자들

잠시 쉬다가 장 봐온 식재료로 비빔 스파게티와 이베리코 돼지고기구이, 오렌지, 요구르트, 돈시몬 팩와인 1리터, 하몬으로 훌륭한 저녁 만찬을 즐겼다.



오늘의 지출 - 총 38유로

오전 커피 : 두 잔 3유로

점심 : 37유로 선배

저녁 장보기 : 20유로

알베르게 : 15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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