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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뚱 Sep 14. 2024

3번째 까미노 데 산티아고 day32

포르투갈 길 역주행 1일 차 : Padron까지  28km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 ~ 빠드론(Padron) 28km

램블러 기록 : 1일 차, 헤매지 않았으면 24km 정도로 끝났을 길이다. 
출발 전에 한컷. 대성당 종탑이 살짝 보인다. 비바람이 거세지만 사진에선 느껴지지 않는다.

밤새 몰아치던 비바람은 새벽에도 이어졌고 길을 떠나야 하는 아침에도 발길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일기예보는 계속 비를 알렸고 더 주저하고 있을 수 없어 길을 나선다. 선배님의 배웅을 받으며 대성당앞쪽으로 해서 미리 봐둔 경로로 진행했다. 

성당 앞에는 도착한 건지 이제 출발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순례자가 벌써 와 있다. 

선배님이 빌려준 판초 우의를 뒤집어쓰고 핸드폰의 지도를 확인하며 시내 중심부를 빠져나가 어딘가 대학 근처를 지나고 있는데, 길이 맞는지 확인하려는데 스마트폰의 표면이 비에 젖어 터치도 잘 안되고 지 마음대로라 지나가던 사람에게 빠드론 가는 방향을 물어 계속 진행한다. 이끼 낀 길에 미끄러져 크게 넘어졌다.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 대학 캠퍼스 사이를 통과하는 길이었는데,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고 그늘이 지는 곳 이어서인지 이끼가 얇게 피어 있었다. 아팠다. 보는 사람이 없어 쪽팔리진 않아서 다행이라고나 해야 할까?

길 찾기가 만만치 않아 헤매다 본선인 "쵸우빠나 로(路), Rúa da Choupana"를 간신히 찾고서야 제대로 된 역주행 길에 접어들며 마음이 편안해지는 찰나에 갑자기 배가 살살 아프다. 하! 비도 내리고 상업지역을 벗어나서 오픈한 바르가 나타나길 한참을 걸으며 몇 번인가 주택가를 지났지만 적절한 서비스 장소를 찾을 수 없었다.  낭패다. 어떻게든 참아야 한다. 비는 내리고 우비 속에서는 땀이 내리고 이것 참... 참아야 한다. 

계속 내리는 비 때문에 하천이 매우 성나 있다.

작은 다리도 건너고 오래된 작은 마을을 지나고 역주행 화살표가 드문 길에서 지도를 봐가며 급히 걷는 길은 10km 정도 더 이어졌다. 드디어 뭔가 식당들이 있는 마을에 도착했으나 경로상에 있는 바르엔 이미 정방향 순례자들이 가득하다 본선에서 왼쪽으로 틀어 큰길 쪽으로 100미터쯤 나오니 마침 번듯한 바르가 하나 있다. 

"Cafe Bar Raña 까페 바르 라냐"에 우비를 벗어 턴 후 바깥에 놓인 의자에 걸쳐놓고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어차피 식사를 해야 했어서 햄버거 세트를 주문하고 화장실로.

온따나스를 떠나면서 숲 속으로 들어가 노상방변을 한 후에 처음 걷는 중 배가 아팠다. 40여 일 걸으며 2번이면 많지는 않은 것인가? 재작년 북쪽길을 포함해 80여 일 걸을 때도 한번 없던 일이었는데. 

가게에는 한국 가족 3분이 식사 중이셨다. 오늘 한국사람을 처음 만났다며 반가워하셨다. 비교적 젊은 딸이 엄빠를 모시고 걷는 중인데, 짧게 걷는 중이라고 한다. 나는 가족과 함께 걸을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해 보았지만 집사람과 딸은 걷지 않을 것이다. 

변의를 해결하고자 들른 바르의 음식은 생각보다 훨씬 맛있었고 저렴했으며 또 푸짐했다. 주문한 햄버거 세트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직접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햄버거. 병아리 콩 스프?는 서비스.

처음부터 끝까지 비가 내리는 통에 카메라는 비닐 봉다리 안에서 습한 잠을 잤고, 방수가 되는 3년 차 스마트 폰이 그 자리를 대신해 사진의 질의 따질 수 없다.

소인지 말인지 모른 짐승을 올라 탄 목동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역동적인 조각상이 있는 마을

길이 마을을 따라 꺾이는데 방향을 잘못 잡아 여러 차례 뒤 돌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스마트 폰의 gronze 맵의 길을 맞춰 보며 걸어 크게 잘못된 길을 걷진 않았다. 

A Angueira de Suso 아 앙게이라 데 수소라는 마을을 지나다 만난 공동 빨래터는 지금도 가끔 이용되는 듯 맑은 물이 수조를 가득 채우고 넘치고 있었는데 햇살 따가운 날이었다면, 잠시 쉬며 발이라도 담글 수 있었을 것 같다. 

역방향을 알려주는 파란 화살표.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만 그래도 좀 자주 보이면 좋겠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들을 따라 열심히 표식을 찾거나 정방향의 순례자를 좀 기다려 보기도 하면서 쉬엄쉬엄 걷는데, 나처럼 역주행 중인 대만인 부부를 만나기도 했지만 이후로는 만날 수 없었다. 

25km 넘게 걸어 빠드론 초입에서 만난 성당 모습은 좀 생경했다. 종탑의 상층부는 미륵사지 탑처럼 우리나라의 목조탑의 형태처럼 보여 익숙한 듯 하지만 전체적인 모습은 매우 낯설었다. 날씨도 좀 좋고, 힘도 덜 들었다면 성당 내부로 들어가 봤겠지만 이미 지쳤고 비 때문에 힘들었어서 지나는 길에 한번 핸드폰에 담아 보았다. 자료를 찾아보니 갈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주교좌성당이었다고 하며, 이 성당 기록한 최초의 문서는 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성인 산티아고(야고보,사코베오 등)의 무덤 발견에 필수적인 역할을 했다고도 하는데 자세히 보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다. 

Igrexa de Santa Maria de Iria Flavia
Convento del Carmen

Sar 강을 끼고 길게 양쪽으로 형성된 빠드론은 야고보 사도(산티아고)의 유해를 실은 배를 묵었던 기둥이 있는 성당인 Iglesia de Santiago Apóstol de Padrón 이 있으며. 아래 사진의 뒤쪽 성당이 그곳. 문이 열려있지 않아서 못 들어갔는지 그냥 이 성당에 그 기둥이 있는 곳이 아니라는 잘못된 생각 때문이었는지 실물을 보지 못해 매우 아쉬웠다. 바보!!!

앞쪽의  'Monumento a Rosalía de Castro' 조형물과 뒤쪽의 Iglesia de Santiago Apóstol de Padrón
광장과 지역 공공 운동장(숙소 뷰)
숙소에서 바라 본 Convento del Carmen


식당에서 파는 와인인데, 가격이 애매하다. 싼 것 같은데 싸지 않은 것 같은 그런 느낌
저녁 식사 뭐 좀 뻑뻑하게 먹은 느낌이다. ㅋ


빠드론 초입 바르에서 잠시 쉬며 오늘 머물 숙소를 검색해 보는데 당일 예약이 되는 곳이 Albergue-Pensión Flavia 라서 일단 예약하고 이동. 마을 중심부의 광장을 지나 축구장을 지나 숙소에 찾아들었다. 배정받은 방의 침대 1층은 모두 찾고 비어있는 2층에 자리를 잡고, 씻고, 빨고, 널고...

젊은 스페인 여성들(학생인 듯)만 있는 방은 왠지 좀 불편했지만, 남자들만 있는 것 보다야. ^^;;

빠드론은 고추(피망)로 유명한 미식의 도시라고 하는데, 뭘 하는 게 없으니 그냥 대강 아는 단어를 찾아 저녁을 해결해 본다. 저렴했지만 맛이 있진 않았다. 


비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귀찮아서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였을까? 매우 훌륭한 공립 알베르게에 가지도 못했고, 의미 있는 성당을 둘러보지도 못했다.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는데, 리스보아에서 시작하는 포르투갈길을 언제쯤 걸을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으니. 


여러 이유 때문에 아쉬움이 남는 포르투갈길 역주행 1일 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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