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길 역주행 2일 차 : Briallos 브리아요스까지 23km
역주행의 가장 큰 단점을 꼽으라면 잠시만 딴생각하며 걸으면 어느 순간 엉뚱한 길에 들어섰다는 것이고, 두 번째의 단점은 하루에도 수백 명은 됨직한 정방향 순례자에게 인사를 하는 일이다. 뭐 그냥 모른 척하고 걸어도 되겠지만 인사를 안 하는 건 또 너무 재미없지 싶다.
가끔, 나이 먹은 순례자들은 꼭 그런 농을 던진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반대쪽이다. 넌 잘못 가고 있으니 돌아서 가라!" 그것도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짓고 말이다.
역주행 두 번째 날을 시작하면서 여태 입고 있던 긴 바지, 아들이 2016년도에 입고 걸었던 그 바지를 이제 놓아주었다. 부엌에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비 내리는 길을 나섰다.
빠드론을 빠져나가는 길은 우야 강 rio ulla을 건너야 하는데 흙탕물이 거세게 흐르고 있었다. 다행히 비는 마구 쏟아지는 형태가 아닌 흩날리는 정도라 어제처럼 괴롭진 않다.
빠드론을 지나 다음 마을에서 빠드론 방향을 바라보니 커다란 공장과 그 공장의 굴뚝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증기가 보이는데 가동 중인 공장이라고 강력하게 어필하는 듯했다.
빠드론 다리를 건너면 San Xulian 산 술리안이라는 이름의 마을로 이어지는데 마을 중심에 공동묘지 역할을 하고 있는 오래되어 보이는 성당이 아름답게 자리 잡고 있다.
길은 띄엄띄엄 시골마을을 잇고 있는데, 근처마을에 알베르게가 없는지 아직 정방향 순례자를 만나지 못하고 있어 길을 한두 번 헤맨다.
5km쯤 걷자 꽤 규모가 있는 바르가 나왔는데, 가게 안에는 다양한 샐러드, 샌드위치, 닭튀김 등등 맛있어 보이는 음식과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비에 젖어 무거워진 우의를 잠시 벗어 놓고 바르 안으로 들어와 콜라와 닭튀김을 배가 고픈 것도 아닌데 밀어 넣었다. 날씨가 좋았다면 야외 테이블에 앉아 몇 가지 음식을 시켜놓고 여유롭게 먹었을 텐데 참 아쉬웠다.
지역의 주민들을 보긴 어렵지만 남쪽에서 올라오고 있는 정방향 순례자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한다. 항상 순례자의 뒷모습을 찍었었는데 이렇게 앞모습을 찍을 수 있으니 색다른 사진 찍는 재미가 있다.
고속도로와 잠시 나란히 이어지는 길을 걷다 다시 한적한 마을로 들어오니 야생화가 잔뜩 핀 풀밭에 양 한 마리가 동상인 듯 얌전히 서 있는데 약간 현실감이 떨어져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이겠지.
이어진 마을들의 길에서 순례길 표식을 찾기란 쉽지 않았는데, 덜 내리는 비 덕에 스마트폰 지도를 좀 더 오래 볼 수 있었거,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정방향 순례자 덕에 번거롭지만 틀리지 않은 길을 찾아 걸을 수 있었다.
O Gurgullon 오 구르구욘,Carracedo 까라쎄도, O Campo 오 깜뽀 마을이 연달아 이어지는데 까라쎄도의 산타 마리냐 성당이 멀리서부터 눈에 띄더니 가까이 다가 서니 주변이 잘 정리되고 관리되고 있는 듯했다. 쉴만한 벤치도 있고, 성당에 들어가 볼 순 없었지만 원형대로 관리된 듯싶었다. 날이 좋았다면 소풍 온 양 한동안 앉아 있다 가기에 참 좋은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비 때문에 앉아서 쉬기에 좀 곤란해서 잠시 성당 주변만 둘러보았다.
이어진 마을 골목을 빠져나오는 길에 까라쎄도의 십자가가 배웅을 해준다. 조각상이 참 많이 달린 돌 십자가상이다.
다음 마을까지 약 4km는 내리막길이 이어지는데, 인적 드문 숲으로 둘러싸인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걷는 하이킹코스인지 순례자처럼 보이지 않는 우산을 쓴 부부가 트래킹하고 있다.
A Lavanderia라는 마을에서 트래킹 코스 같은 순례길은 끝나고 멀리 꽤 큰 도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마을에 들어서면서 점심을 해결할 적당한 식당을 물색하며 걷는데 마땅히 마음에 드는 바르가 보이지 않는다. 이 큰 마을 아니 도시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이 동네의 이름은 Caldasde Reis인데 보통 순례자들이 많이 머무는 마을인 듯 알베르게며 오뗄이 여러 개 보였다.
맛있어 보이는 빵을 빠는 빤데리아도 있었지만 빵은 좀 그렇기도 하고 아직 좀 이르기도 해서 깔다스 데 레이스는 통과하기로 한다. 도시 중심 근처에 흐르는 우미야 강을 가로지르는 Ponte da Ferreria를 건너 도로를 따라 좀 이어지다가 다시 한적한 시골길로 접어든다.
다리를 지나 큰 도로 곁을 걷다가 공동묘지 지나 왼쪽으로 소로로 이어진다. 한동안 정방향 순례자들에게 부엔까미노를 외치다 보니 어느새 띠보 Tivo에 도착한다. 띠보 마을 초입에 식당과 알베르게를 겸하고 있는 알베르게 빈떼까뜨로가 있는데, 앞 마을에서 식사를 놓쳤다고 이곳에서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나는 사람이 많아서 또 패스.
마을 지나 포도밭이 잘 가꾸어져 있다. 9월쯤 왔으면 포도맛 좀 보았을 건데.
소로로 이어지던 길은 Valsordo 마을에 이르러 다시 큰길과 만났다가 오 크루쎄이로 O Cruceiro로 이어진다. 오늘 걸음은 애매하지만 23km만 걷고 공립 알베르게가 있는 브리아요스라는 작은 동네에서 멈춘다.
오 크루쎄이로에서 오른쪽으로 난 길로 접어들어 500m쯤 걷고 알베르게에 도착. 알베르게는 식당건물과 나뉘어 있는데,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사장님이 알베르게 관리까지 하고 있다. 1번으로 입실하고 가장 안락한 자리의 1층을 떡하니 차지하고 짐 풀고, 씻고, 빨래를 했다.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메누 델 디아를 주문했는데 이 집 맛집이네. 특히 감자가 듬뿍 들어간 쇠고기 스튜 비슷한 음식을 받았는데 이게 꽤 맛이 좋다. 약간 늦은 점심으로는 매우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내리던 비가 그치고 해가 났다. 젖은 등산화를 들고 알베르게 정원 볕이 잘 드는 곳에 널어놓고, 난 간단한 저녁으로 햄버거와 맥주를 가져다 놓고 여유로운 저녁과 함께 하루를 마감한다.
잠이 들 때쯤 알베르에겐 순례가들이 약 2/3쯤 들었는데, 매우 늦은 시간에 도착한 팀이 늦게 까지 부스럭 대는 바람에 잠을 잘 잔 것 같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