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길 역주행 3일 차 : Arcade 아르까까지 30.5km
지난밤 잘 잤는지 잘 모르겠다. 뭔가 깊이 잠든 것 같지는 않다. 밤늦게 한 팀이 입실하면서 부시럭 대는 바람에 담을 설치기도 했고, 어지간히 많이 걸어도 피곤해서 잠이 막 오지도 않는다. 나이를 먹어서 인가?
일기예보를 확인하니 다행히 오늘부터는 당분간 날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오늘은 큰 도시인 Pontevedra 뽄떼베드라를 지나 아르까데 Arcade까지 갈 예정이다. 길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으니 좀 애매하게 답답한 면이 있지만 그래도 스페인이라서 다행이지 싶다.
오랜만에 아침 샤워도 하고 촉촉하게 젖은 파마 머리를 손으로 툭툭 털며 촉촉하게 젖은 알베르게 앞 잔디를 밟으며 빠져나온다.
아직 정방향 순례자 없는 길을 천천히 웜업 하면서 걷는데 20분 정도 지났을 때 작은 마을의 바르가 열려 있어 간단히 까페 꼰 레체 한잔 마시고 모닝 흡연도 하고 잠시 정신을 맑게 만들어 본다.
한동안 한적한 길을 한 시간 넘게 걷다 길을 잘못 들어 한 400미터쯤 알바를 했다. 언덕이 아닌 평지라 다행이었지 싶다. 어쩐지 길이 너무 순탄하다 싶었다. 다시 한 시간 채 못 가서 San Amaro라는 마을에서 또 짧은 알바를 했다. 날이 좋고 스마트폰에 문제가 없어도 이렇게 길을 헤맨다.
산 아마로 마을을 지나면 기찻길을 따라 잠시 걸었다가 작은 개울을 건너기도 하면서 초록초록한 숲 길을 걷는데 기분이 매우 좋다. 피톤치드로 가득 찬 길이 이런 길일까 싶고, 반대 방향에서 올라오는 순례자들의 표정이 좋은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적한 길을 지나 뽄떼베드라 본 도심으로 진입하는데 Ponte do Burgo(부르고의 다리)라는 이름을 가진 보도교를 건너는데 규모가 상당하다. 레레스 강을 건너 도심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여러 개 보이는 것으로 보아 큰 도시인 듯하다.
다리를 건너 중심부로 이어지는 길을 찾아 걷다 보니 이 도시는 꽤 크고 아름답다. 미리 도시에 대해 알아보고 지나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 명소가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스마트폰 지도를 보며 걷다 보니 다리에서 꼭대기만 슬쩍 보았던 대성당(catedral이 아닌 basilica)도 만나지 못한 체 지나쳐 버렸다.
담배 판매점에서 말아 피우는 담배 세트를 사서 다시 걷다 보니, Padres Franciscanos와 Convento e Igrexa de San Francisco가 하나의 건물로 이어진 고색창연한 중세 건물을 만났다.
수도원 내부 중정 쪽으로는 접근할 수 없었지만 부속 성당은 미사가 있었는지 열려 있길래 안으로 들어가 관람을 했다. 입구 왼쪽에 종탑이 있고 정면 아치형 출입구 위로는 장미창이 배치되어 있는 바로크 양식으로 보이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건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성당 안의 제단 쪽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다운 창은 세로로 길게 속도감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으로 봐서 내부는 고딕양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수도원을 나오니 오른쪽으로 도시명인 뽄떼베드라 파란색 구조물이 서있고, 관광객들은 이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열심히 찍는다. 나도 동행이 있었으면 좀 더 편하게 기념사진을 찍었을 텐데, 이런 점은 또 아쉬운 점이다.
프란씨스코 수도원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Igrexa da Virxe Peregrina(순례자의 성모 교회)라는 이름을 가진 쌍둥이 종탑을 가진 성당 건물이 눈에 확 들어온다. 역시나 많은 관광객들이 관람을 하고 있었다. 성당이름에 순례자가 들어간 것으로 보아 순례자들에게 중요한 의지가 있는 성소인 듯하다.
점심을 해결하지 못하고 시내 벤치에 앉아 약간의 간식과 휴식을 가진 후 도시를 빠져나가다가 뽄떼베드라 역 근처의 알베르게를 같이 운영하는 작은 식당에 들러 메누 델 디아로 약간 늦어진 점심을 먹었다. 식사 시간이 참 애매해진다.
도심을 빠져나오니 언덕이 시작되며 길은 다시 조용하고 한적하다. 터벅터벅 오르막을 오르다 바위 위에서 일광욕하는 도마뱀을 만나기도 한다.
제법 성가신 오르막 도로를 따라 걷던 길은 로마 시대 만들어진 로만 로드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길로 연결된다. 포르투갈 길에서도 로만 로드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니. 흥미롭고 경이롭다. 돌로 깔아 놓은 길은 돌 표면에 깊은 마차 바퀴 자국을 남겨 놓아 이 길에 대한 설명을 따로 보지 않아도 이 길이 로만 로드였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었다.
로만 로드를 따라 올라간 만큼 내려오니 수량이 제법 풍부한 맑고 시원한 강이 흐르고 있는데 강에는 철제 다리가 놓여 있고, 다리 옆에는 쉬어갈 수 있는 벤치가 마련되어 있어 이곳에 앉아 물소리를 들으며 또 한참을 멍 때렸다.
작은 강을 건너 다시 오르막을 오르고 넘어서니 앞으로 마을, 다리, 큰 마을이 이어지며 나타난다. 바다로 이어지는 베르두고강을 건너는 중세 다리가 아름다웠고 바다 방향과 강의 상류 방향 어디를 보아도 참 눈이 호강하는 풍경이 이어진다.
다리를 건너 마을 중심도로를 따라 걷다 gronze 앱에서 봐둔 Albergue O Lar de Pepa를 찾아갔다.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관리인이 없다. 접수대에 남겨진 전화번호로 순례자예요 했더니 뭐라 뭐라 한다. 전화번호가 두 개 적혀있는데 남자 이름으로 보이는 전화번호로 했더니 여자 이름의 전화로 걸라고 하는 것 같다. 다시 여자 이름의 전화로 전화를 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온다. 12유로(앱에는 10유로라고 적혀 있었으나) 내고 방을 안내받고 화장실(샤워실), 부엌, 테라스를 또 차례대로 안내해 준다. 부엌에 있는 식자재를 마음대로 이용하라고 한다. 와우!
2인실에 짐을 풀고 우선 해야 할 것들하고 부엌에 뭐가 있나 확인한 후 장을 보러 가서 간식거리만 사 온다. 맥주 등의 음료는 알베르게에서 판매하고 있는 것을 이용했다.
가지고 있던 짧은 면과 부엌의 스파게티 면을 삶아 마지막 남은 비빔면 장으로 비빔 파스타를 만들어 맥주와 함께 먹어본다. 스페인 유명 맥주 중 하나인 마오우와 바나나를 곁들인 저녁으로 간단히 한 끼 해결.
내일은 중요한 갈림길을 잘 찾아가야 하는 날이다. 이제 남은 시간이 7일뿐이라 비고 방향의 해변길이 아닌 뚜이 방향의 내륙길로 가야 한다. 앱의 지도를 다시 확인하고 3일 차를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