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길 역주행 4일 차 : Tui 아닌 Saiáns까지 39km
대형 사고가 있던 날. 하지만 길을 무르진 않았다.
13일까지 포르투에 들어가야 했기에 레돈델라 Redondela를 지나면서 오른쪽 해변길이 아닌 직진 방향의 뚜이 Tui로 가야 했다. 하지만 난 무슨 생각이었는지 비고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나의 길은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뚜이방향의 내륙길로 갔어야 6일 코스로 무리하지 않고 가는 여정이었다. 뭔가 좀 이상해서 지도를 다시 찬찬히 보고서야 비고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땐 이미 4km 정도 지나서였다. 돌이키기 싫었다. 왔던 길 다시 돌아가는 것은 멘탈 털리는 일이기에 갈 수 있는데 까지 가보고 일정이 부족하면 교통수단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포르투까지는 주변 도시에서 전철을 이용해서 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르까데를 출발해 첫 번째 마을인 레돈델라로 가는 길은 차량 통행이 많은 도로를 따라 걷다 꽤 높은 언덕으로 빠져나가 넘어가는 길이다.
언덕을 넘으면 다시 레돈델라까지는 내리막이 이어진다. 북쪽길에 비하면야 한결 수월하지만 처음 이 길을 온 순례자는 꽤 힘들지도. 레돈델라는 작지 않은 도시고 이곳에서 내륙길인 뚜이 방향과 해변길인 비고 방향으로 분기하는 곳이다. 중심부에 들어와 빌라베야 수도원(Convento de Vilavella) 성당이 열려있어 내부를 잠시 둘러보았다. 꽤 오래된 수도원처럼 보였지만 지금은 연회장으로 운영되는 듯하다. 왼쪽의 중정이 있는 원래 수도원 건물 오른쪽으로 이어 붙인 건물이 있다.
시내를 빠져나오자 갑자기 오르막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지도를 읽었다. 툴툴 거리며 앞서 넘어온 고개보다 더 높아 보이는 언덕 위로 이어진 동네 길을 따라 걷는다. 와우!!!
마을이름은 쎄데이라 cedeira인데 마을 중턱 위에 성당이 자리 잡았고 이 근처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꽤 좋다. 힘들인 만큼의 보상이라고 해야 할까?
마을 끝을 지나면서 산이라고 해야 할지 높은 언덕이라고 해야 할지... 어쨌든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바다 경치를 두고 숲 길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길게 휘어지며 이어진다.
경치에 감탄하며 걷고 있는데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레돈델라를 지나면 내륙방향으로 걷는 것일 텐데 왜 바다가 계속 보일까? 스마트 폰의 지도앱을 켜고 나서냐 내가 가는 길이 비고를 거치는 해변길 방향이었다. 아까 레돈델라에서 두 눈 똑바로 뜨고 걸었어야 했는데 아뿔싸! 길은 이미 분기점에서 5km 정도나 더 진행되었기에 한 5초 고민하다 그냥 걷기로 한다. 10km를 소모할 순 없다. 그냥 진행한다. 갈 수 있는 시간까지만 걸으면 되지.
비고의 도심으로 내려설 때까지 길은 계속 평탄하게 유지되었다. 배가 고파 앱을 켜고 중식당을 찾아본다. 순례길 코스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은 위치에 Hermanos 형제라는 이름의 중식당을 찾았다. 식당까지 열심히 걸어가 점심으로 메누 델디아로 포만감과 함께 적당한 간을 느낄 수 있는 볶음밥, 쇠고기 매운 볶음, 계란탕과 콜라로 매우 만족스러운 점심을 해결했다. 중식당 치고 깔끔한 편인데 음식도 괜찮았다. 가격은 더 좋고.
바닷가 쪽으로 이어지는 순례길을 따라가다 보면 중심 상권 같은 곳을 지나고 광장도 하나 나오는데 이곳이 비고의 중심 번화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찾아보니 비고는 갈리시아에서 가장 큰 도시라고 하며 뽄떼베드라 주에 속한다고 한다. 인구는 30만이 좀 못되는데 도시의 사이즈는 작지 않다.
광장을 지나 오래된 집들이 있는 골목을 지나면 Concatedral - Basílica de Santa María de Vigo라는 이름의 성당을 만나는데 꼰까떼드랄 Concatedral이라는 표기는 처음 본다. 찾아보니 '공동 대성당'의 의미하고 두 명 이상의 주교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대성당을 말한다고 한다. 하지만 프랑스 길에서 만났던 그 어떤 까떼드랄 보다 작고 소박했다. 성당은 고딕과 바로크 양식이 혼재되어 있는 형태라고 한다. 성당 안 구경은 하지 않고 겉모습만 한컷 담고 계속 걸었다. 보통은 이곳 비고에서 하루 머무는 게 일반적인데, 나는 왜 조급증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걷는 것일까? 끝까지 버스등의 교통수단을 이용해 이 길을 걷지 않겠다는 암묵적인 다짐 때문인 것일까? 알베르게가 있는 마을인 사이안스까지는 약 15km 정도 더 가야 했다.
정신없는 도로를 지나 비고를 빠져나오면 길은 해변으로 이어진다. 아름다운 해변을 따라 걷다가 길은 Oia 오이아라는 곳에서 해변을 벗어나 약간 안쪽으로 걷는데 대략 해변으로부터 500m쯤 떨어졌을 뿐이라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곳이 대부분이다.
오른쪽으로 계속 해변을 끼고 걷는지라 해수욕, 일광욕을 즐기는 현지인들의 토플리스 차림에 눈이 돌아간다.
사람 구경도 하고 파란 바다 구경도 하면서 긴 거리를 줄여나간다.
바다 위 다리로 이어진 작은 섬에 높은 아파트 같은 높은 건물이 지어진 Isla de Toralla 라는 곳이 보인다. 섬의 규모에 비해서 엄청 높고 커 보이는 현대적인 건물은 분명 말이 많을 것이다. 나쁜 쪽과 좋은 쪽 모두.
얼마나 자유롭게 이 섬을 이용할 수 있느냐에 따라 나쁜 점은 상쇄될 수 있겠지만, 이곳이 특정한 사람들만 이용할 수 있다면 욕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끔찍한 건물이라고 생각할 듯하다.
해변을 주욱 따라 걷다 해변에서 좀 쉬면서 음료수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며 좋은 날씨를 만끽하며 여유롭게 걷다가 오이아 Oia라는 마을에서 안쪽의 도로를 따라 걷는다. 지도앱을 켜서 알베르게를 찾아보니 Saiáns 마을의 높은 위치 성당 옆에 알베르게가 있다. 35km쯤 걸었기 때문에 좀 지치는 상황인데 알베르게는 언덕 높은 곳으로 이어진다. 비고에서 해변으로 오지 않고 안쪽길로 이어진 길과 매우 가까웠다.
어쨌든 꼭대기 성당에 도착하자 성당 옆으로 넓은 마당과 알베르게 건물이 나타났다.
알베르게 사무실로 들어가 등록하는데 딱 침대 하나 남았다. 우와! 완전 재수 좋았다. 이 알베르게 아니었다면 다음 마을까지 가야 할 뻔했다.
알베르게가 있는 건물 사이즈에 비해 알베르게 침대공간은 그리 크지 않다. 딱 2층침대 5개에 10명 수용하고 있어 영어나 스페인어가 가능하다면 꼭 전화로 예약할 것을 추천한다.
숙소에서 60이 훌쩍 넘어 보이는 한국남자순례자 한분이 계서 같이 알베르게 바로 아래쪽에 위치한 바르 저녁 시간에 맞춰 저녁을 먹으면서 오랜만에 대화를 나누는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Cafe Bar Alegría Del Bollo라는 이름의 바르는 구글지도에는 커피 전문점이라고 되어 있으나 좀 애매한 바르였는데, 부부가 운영하는 듯했다. 간편한 식사, 스낵류만 제공되었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었지만 나름 맛있게 저녁 한 끼 해결할 수 있어 만족했다. 아마도 다른 곳까지 가지 않아도 됐다는 안락함이 그런 기분을 더 강화했을 수도...
오늘 머물게 된 알베르게는 실제 해발고도와 관계없이 체감 고도로 가장 높고 풍경이 좋은 곳이 아니었을까? 의도치 않은 매우 만족스러운 선택이었고 결과였다.
이렇게 인생은 때때로 예상치 않은 행복을 안겨주기도 한다. 내일 일을 알 수 없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