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낀 아름다운 북쪽길
라레도 Laredo의 알베르게는 2인실이라서 그랬는지, 밤새 깨지 않고 잘 잔 듯하다. 방 창문을 열어보니 새벽 풍경이 낮과는 또 다르다.
언덕을 내려가 시내를 통과하면 긴 해변이 나오는데 개발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는 듯한 건물, 상가, 아파트들이 해변을 따라 길게 이어진다. 여름 시즌이 끝나고 9월 말로 접어들고 있어서 관광객이 많지는 않다.
아... 진짜 이런 색의 여명을 볼 수 있는 행운은 일찍 걷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혜택 같은 것. 하지만 새벽의 어둠 때문에 다른 것들을 볼 수 없기도 하지.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건 변하지 않는 법칙 같은 것.
해변 모래사장을 따라 5km쯤 걸으면 끝에 산토냐 이정표가 있고 방향대로 가면 모래사장이 나오는데, 딱히 어디가 선착장이라는 표시가 없어 당황하기 좋다. 뱃시간을 미리 알지 못했으니 기다리는 수밖에.
먼저 기다리고 있는 자전거족이 있었고, 9시 30분이 라레도에서 산토냐로 가는 첫 배라는 것을 현장에 도착해서야 알게 됐다. 괜히 일찍 나올 필요는 없지만, 배의 승선인원이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으니 좀 일찍 나와서 해변을 돌아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산토냐는 라레도만큼 크진 않지만 나름 집들도 많고 상점도 있지만, 딱히 인상적인 마을은 아닌 듯싶었다. 마을을 빠져나오면 다시 한적만 도로 옆길을 따라 걷는다.
좀 지루하게 Playa de Berria(베ㄹ리아 비치) 배후의 도로를 따라 걷다가 해변 쪽의 그렇게 높지 않은 산으로 길이 연결된다. 매우 좁은 소로는 도보여행자나 하이킹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갈까 싶게 좁고 불편하다. 다만 바로 다음 해변인 뜨렌간딘 비치로 이어지는 지름길이고 꼭대기에서 양쪽 해변을 바라보는 맛이 참 좋은 곳이다.
상당히 긴 모래사장의 해변 너머 보이는 노하 Noja라는 동네까지 길이 이어지는데, 마을 중심을 통과하지는 않고 왼쪽으로 돌아 나가며 해변에서 벗어나게 된다.
노하를 완전히 빠져나오면 Castillo 까스띠요(성) 마을이 나오는데 성 판탈레온의 경당 유적을 만난다. 딱히 감동적인 유적은 아닌 듯하다. 마을 이름은 까스띠요인데 어디에도 성처럼 보이는 곳은 없다. 마을 끝에서 성 뻬드로와 성 빠블로의 성당을 만나고 시야가 트인 평화로운 시골길을 지나 San Miguel de Meruelo 산 미겔 데 메루엘로 마을을 지난다. 마을 사람도 관광객도 순례자도 보기 어렵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도시나 마을이 아니면 순례길은 거의 모든 곳이 참 적막하다. 마을은 있지만 사람 구경하기는 쉽지 않다.
Bareyo 바ㄹ레요 마을에 들어서면 성 미겔 성당을 만난다. 따로 사용되는 것 같지는 않다. 독특한 것은 창문이 없다. 다만 빛이 들어옴 직해 보이는 모양만 창문인 매우 작은 구멍이 있을 뿐이다. 유리가 귀해서인지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작고 오래된 성당엔 이렇게 창의 역할을 하는 장치를 볼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 이유를 유추해 보자면 원래 그렇게 계획(뭔가 경건하고 근엄한 느낌을 주기 위해 일부러 어두침침하게)되었거나 건축 기술이나 재료의 한계(비용문제?), 방어의 목적 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긴 언덕을 넘어 내리막 후 다시 이어지는 오르막 중간에 구에메스Güemes 마을을 만나고 마을의 외곽에 있는 오늘의 숙소인 Albergue de Peregrinos de Guemes에 도착했다. 이 알베르게는 빼우또 할아버지가 운영하고 있다고 하는데 순례자에게는 공동 침실과 식사를 도나띠보(기부)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북쪽길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는 알베르게로 알려져 있다. 이곳의 역사 등에 대한 설명을 저녁식사 후 모두 한 공간에 모아 얘기를 하는 시간이 있는데, 영어나 프랑스어, 스페인어가 익숙하다면 꽤 재미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어떤 측면에선 좀 길기도 하고 해서 불편할 수도 있다.
라레도에서 구에메스까지의 구간은 초반 절반은 바다와 접하거나 바다 풍경을 보면서 걸을 수 있고 나머지 절반은 한적한 시골의 여유로움을 느끼며 걸을 수 있는 구간이다. 참으로 평화롭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구에메스에서의 출발은 다른 때 보다 좀 늦었다. 알베르게에서 제공하는 하찮은 아침 빵쪼가리를 좀 먹고 정비를 좀 하고 길을 나서는데 우와 동쪽 하늘에서 일출이 곧 시작되려는지 하늘이 무척이나 곱다. 출발하고 5백 미터쯤 왔을 때 새로 산 스포츠 타월을 두고 왔음이 생각났다. 아... 가기 싫지만 17유로나 주고 산 수건이 아깝다. 어쩔 수 없이 수건을 가지러 돌아간다. 에고 힘들다.
사람 보기 힘든 시골길을 1시간 넘게 걷고 나서 만난 첫 번째 마을은 갈리사노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은행, 성당, 학교 가기 위해 모인 학생들과 저학년을 배웅하는 학부모들로 아침의 활기를 느낄 수 있다.
갈리사노를 통과해 인적 드문 길로 다시 접어들면 왼쪽으로 멀리 마을이 보이는데 Langre라는 동네이고, 정면으로 좀 더 걸어가니 갈리사노 해변이 갑자기 툭 하니 나타난다. 지도앱을 켜보니 해변을 따라 걷는 길과 밭 사이로 걷는 길 표시가 되어있길래 해변을 선택해 걷는다. 다른 순례자들도 해변길을 선택해 걷기는 하지만 밭사이의 길로 걷는 순례자도 있다. 아마 바다 경치를 예상하지 못했거나 짧게 걷기를 선호하는 듯했다.
입이 떡 벌어지는 경치가 툭 하니 나타난다. 바스크 지역의 바다와는 다르고 더 웅장하고 더 긴장감이 느껴지는 그런 멋짐이 있다. 북쪽길은 확실히 아름답다 힘들지만. 갈리사노의 숨겨진 듯 위치한 해변과 파도소리가 순례자들에게 에너지가 되어주는 느낌이다.
절벽 위로 만들어진 좁은 길의 왼쪽은 풀과 옥수수 등이 무성한 밭이 있고 오른쪽 대서양이 펼쳐진다. 바다와 땅의 경계는 두 가지 다른 성질이 만나 사람이 만들 수 없는 모양을 이뤄내고 이런 곳은 관광지가 된다.
아직은 북쪽길 전체를 다 걸은 것은 아니지만 전체가 유명 관광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날씨 좋을 때 걷는 행운은 커다란 행복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옥수수가 우거진 길을 지나자 오른쪽 해변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수영장 같은 모양의 장소가 눈에 들어온다. 아래로 내려갈 수 있는데 위에서 보는 모습이 더 좋은 듯하여 굳이 내려가보지 않는다. 그냥 힘들어 보여서 가지 않았을 뿐.
Playa De Los Tranquilos 뜨란낄로스 해변은 바로 Somo 해변으로 이어지는데 모래사장의 길이가 약 2km 정도로 길고, 해변에는 서핑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제법 있다.
해수욕장 끝 상가가 시작되는 곳 서프 까페에서 생오렌지 주스와 초리소가 들어간 또르띠야 데 빠따따스로 간식. 오랜만에 꽤 비싼 5유로 지불. 스페인식 순대가 들어간 감자 오믈렛은 짰다.
배 타는 곳으로 이동하는데 배가 곳 출발하려는 듯 스페인 순례자가 빨리 오라 손짓을 해서 뛰어가 표를 사고 승선, 뱃삯은 3.1유로. 어제에 이어 오늘도 배를 타는 구간이 있는데 이 구간이 가장 길고, 운영하는 배도 제일 컸다. 앞으로 또 배 타는 구간이 있을지 잠시 궁금.
산탄데르는 바스크 지방의 수도인 빌바오만큼이나 번화해 보이고 상당히 큰 규모의 도시였다. 선착장 주변을 잠시 돌아보고 그론세에 소개된 괜찮아 보이는 센트럴 오스텔을 예약 없이 찾아갔더니만 풀 부킹이라며 미안하다고 한다. ㅠㅠ 어쩔 수 없이 평이 그다지 좋지 않음에도 15유로나 하는 Albergue de peregrinos Santos Mártires로 찾아 들어간다. 할머니 오스피딸레로가 반갑게 맞아 주신다. 작은 부엌, 세탁기, 몇 개 없는 화장실과 샤워실 하지만 많은 침대를 갖춘 산탄데르 대성당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해 이동은 편리했다.
산탄데르 대성당은 보통 오전은 10시에서 1시, 오후엔 4시 반부터 7시 반까지 관람 가능하고 관람료는 1유로이다. 물론 미사시간에 참석하면 그냥 볼 수 있겠다 싶긴 하다.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은 듯 보였지만 12~14세기간에 건축되었다고 한다. 관리도 잘되어 있고, 깨끗하고 단순한 형태의 고딕 양식으로 보이는 대성당이었다. 스페인에서 본 대성당 중에서 가장 소박했다고나 할까?
구에메스에서 산딴데르 구간은 초반에는 잦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바다가 보이지 않는 조용한 시골마을이었다가 갑자기 나타난 바다와 함께 중반부와 후반부를 걷게 되는데 이때 만난 바다의 풍경이 너~무 좋다.
그리고 배 타고 바다를 건너는 구간의 길이가 약 4km 정도 되어 전체길이는 22km 정도 되지만 18km 정도만 걸으면 되는 힐링 및 리프레쉬 구간이다.
스페인의 은행 중에는 산딴데르 은행이 있다. 깐따브리아 지방의 수도 역할을 하는 곳이 산딴데르이고 그 지명을 가진 은행은 규모도 꽤 큰지 다른 지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순례길을 걷는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큰 도시에 도착하면 관광에 대한 고민도 하게 되는데, 특별히 하루 정도 할애하는 게 아니라면 관광을 나서기가 쉽지는 않다. 도착-짐 풀기-씻기-간단한 빨래 등 정비-정리-일과 정리 등의 루틴을 하다 보면 만사가 귀찮다. 많이 걸은 날에는 발바닥도 아프고. 결론은 진짜 부지런해야 관광도 가능하다는 것!
산딴데르에서 다음 숙박 목적지인 산띠야나 델 마르 Santillana del Mar까지는 약 38km 정도이기 때문에 새벽 5시쯤 길을 나섰는데, 초로의 할머니 오스삐딸레로가 이 새벽에도 배웅을 해주신다. 보통 오스삐딸레로를 아침에 보는 경우는 잘 없는데, 이곳의 방 한켠에서 주무시기에 가능한 듯. 상당히 긴 도심을 빠져나오는 것이 꽤 성가시다. 도심을 완전히 빠져나가는데 약 2시간 가까이 걸린 듯.
꽤 많은 마을을 지나며 길은 주로 포장도로로 이어졌고, 가끔 흙길을 만나는데 중간에 만난 짧은 숲길에서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까지 560km 남았다는 표시도 만난다.
La Mina라는 이름의 꽤 좋은 주택으로 보이는 단지를 지나면서 흔한 동네 성당 옆을 지나는데 근처에는 Rio Pas 리오 빠스(빠스 강)가 흐르고 있다.
좁은 흙길을 지나면 다시 작은 마을이 나오는데 Arce 아르쎄라는 곳이다. 잠시 쉬어갈까 싶어 두리번거리다 빵집 안내판을 발견하고 길에서 왼쪽으로 살짝 벗어난 90년 전통의 빵집인 El Pilar에 들른다. 빵집의 너른 주차장에는 차들이 여러 대 서있고, 주말의 오전시간을 보내는 현지인들이 가득하다. 여러 가지 빵, 토스타, 오믈렛 등등을 파는 듯하는데, 익숙하고 영양학적으로 균형 잡힌? 콜라와 또르띠아 데 빠따따쓰...^^;; 맛있다. 특히 빵이 바삭 촉촉하다.
다리를 건너며 왼쪽을 보는데 오래된 다리가 보인다. 공식 루트는 저 다리를 건너야 하는 것이지만 공사 중이기도 하고 돌아가는 길이라 그냥 빠른 길로 왔는데, 다리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어 더 좋았다. 다리를 건너면 오루냐라는 마을이고 이곳에도 예쁜 성당이 우뚝 서 있다.
절반을 지나는 지점, 길은 조용하고 날씨는 너무 좋다. 투덜댈 틈이 없는 길이다.
급하지 않은 긴 언덕을 지나 정상에 섰을 때 시야는 저 멀리 보이지 않는 바다까지 이어진다. '레께하다'까지 6.4km, 목적지인 산띠야나 델 마르까지 16km 남았음을 알리는 표지판을 만난다. 21km 왔고 이제 16km만 더 걸으면 도착이다. 해발고도가 고작 110m 정도이지만 주변에 가리는 것이 없어 시야가 매우 좋다.
북쪽에는 멀지 않은 곳의 바다 방향의 경치가 참 좋다. Mar 마르(바다)와 ㄹ레께하다라는 마을까지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걸을 수 있었고, 오늘의 날씨와 경치는 정말이지 순례자의 마음을 행복하게 한다. 레께하다requejada라는 동네는 시골동네 치고는 꽤 크고 기차역도 있다. 숙소에 도착해 주변 사람들과 안 되는 대화를 살짝 해보니 기차를 이용해 여기까지 와서 걷는 순례자도 많은 듯했다. 하지만 난 걸으러 왔기 때문에 걷는 방법 외에는 다른 생각은 해보질 않았다. 레께하다의 공원벤치에 앉아 신발과 양말을 벗어 발도 말리고, 간식으로 준비한 맛있는 황도와 자두, 콜라와 함께 꿀 같은 휴식을 취한다.
이어지는 마을 이름이 바ㄹ레다, 비베다, 께베다... 마을 이름 끝 글자가 모두 '다'로 끝난다. 웃긴다.
산티야나 델 마르로 들어가는 길을 살짝 놓쳐 도로를 따라 돌아가긴 했지만 아름다운 산티야나 델 마르에 도착한다. 미리 확인한 알베르게 Albergue de peregrinos "El Convento"에 찾아 들어가니 규모가 꽤 크다. 오스삐딸레로는 예약 여부를 물었는데 예약 안 했다고 하자 문제없다고 얘기한다. 알베르게 요금은 13유로고 저녁 먹으러 식당 찾기도 피곤해 저녁을 10유로에 신청했다.
알베르게는 옛 수도원을 리모델링한 것 같은데 2인실에 간이 수전도 하나 있는데 13유로라니 와우!
방을 배정받아 들어가니 길에서 만나 인사한 독일 순례자가 룸메이트다. 반갑게 인사하고 샤워하고 빨래하고 널고 침대 2층에 누워 휴식을 취한다.
산티아고를 향하는 순례길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부터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의 순례자들을 볼 수 있다. 물론 유럽인들 특히 독일과 프랑스인들이 스페인 자국민을 제외하고는 가장 자주 보인다. 따라서, 영어가 좀 된다면 다양한 국적의 연령층도 다양한 외국인 친구들을 사귈 수 있다. 마음이 맞으면 같이 걷기도 하고, 같이 밥도 해서 먹고. 하지만 영어나 스페인어를 꼭 해야 할 필요는 없다. 도보여행의 목적은 다양하고 사람의 취향도 여러 가지니까.^^
나의 스페인어 실력은 실력이랄 것도 없다. 나름 공부를 하려고 노력은 해봤지만 외워지지 않았고, 막상 외운 것도 대화하다 보면 생각이 안나는 것이 거의 다였으니. 그나마 중, 고, 대학 다니며 어쩔 도리없이 글로 배운 영어가 그나마 한두 마디라도 할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나? 어쨌든 언어는 사람을 사귀는 데 있어서는 일종의 장벽이기도 하고 훌륭한 도구이기도 하니 조금이라고 익숙해지면 큰 도움이 된다.
아! 그리고 현지에서 유심을 사면 보통 15유로 정도에 4주 사용, 20기가 이상을 사용할 수 있으니 꼭 현지에 와서 유심을 구입해 스마트폰에 장착하면 매우 편리하다. 데이터를 쓸 수 있으면 구글 번역기로 도보 여행에 필요한 것은 거의 다 해결할 수 있으니 말이다. 고마워 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