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걷는 산티아고 순례길 2편
Castilblanco de los Arroyos
안달루씨아 지방은 이베리아반도의 남쪽 끝, 왼쪽으로는 포르투갈과 맞닿아 있고 아래쪽으로는 아프리카 대륙의 북쪽에 자리한 모로코와 인접하고 있습니다. 헤라클레스의 기둥이라 불렸던 지브롤터가 있으며 스페인 남부지방의 주도였던 세비야, 그리고 로마를 재현했던 이딸리까(Itálica), 최남단 땅끝에 따리파(Tarifa), 은의 길의 또 다른 시작지인 해변 도시 까디스 Cádiz가 있고(까디스에서 세비아까지의 길을 아구스따 길 Camino Agusta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또 다른 순례길인 모사라베 길 Camino Mozárabe의 세 군데 출발지인 하엔Jaén, 말라가 Málaga, 알메이라 Almería를 품고 있기도 합니다. 민항기를 띄우는 공항이 세비아, 지브롤터, 말라가, 알메이라, 그라나다의 5곳이나 있고 이 도시들이 모두 순례길과 관련이 있어 어떻게 보면 순례길의 핵심 지역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 입다.
Vía de la Plata 비아 데 라 쁠라따는 스페인으로는 은의 길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실상 은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합니다. 세비야 근방은 고대부터 은의 생산이 많았기 때문에 은과 관련되어 있을 것 같지만,
'Plata'는 은을 뜻하는 스페인어가 아니라, 아랍어 '발라트(Bal’lat)'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발라트는 '넓게 포장된 길'을 의미합니다. 이슬람 지배 시절, 그들이 보기에 로마인들이 닦아놓은 돌길이 매우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발라트가 음이 변해서 쁠라따가 됐다는 것이 정설인 듯합니다. 2천 년 전 로마가 놓은 잘 닦인 돌길인 발라트가 은의 길이 되어 많은 순례자가 걷는 길이 되었습니다.
스페인에는 '로만 로드, Roman Road'라고 불리는 많은 길이 아직도 그 흔적을 남겨놓고 있어 그 길을 볼 때마다 경이로움을 느끼곤 합니다. 안달루시아의 초반부는 로마 제국의 흔적을 따라가는 여정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세비야를 출발해 만나는 첫 번째 압도적인 풍경은 과달키비르 강변보다는 역시 고대 로마를 그대로 본떠서 세운 이딸리까(Itálica) 입니다. 카르타고와의 2차 포에니 전쟁 승리 후 로마군 내부에서는 귀국해도 살기 어려워진 군인들의 반란이 자주 발생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로마의 모습과 기능을 옮겨 놓은 이딸리까를 만들어 정착시키고자 했다고 합니다. 이딸리까는 세비야에서 약 10km쯤 떨어진 북쪽 산띠뽄쎄(Santiponce)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극장, 격투장, 목욕탕, 빵집 등의 시설이 발굴되어 있거나 복원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순례길이 이 유적의 옆을 지나게 됩니다. 도로의 흔적은 직접 눈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흙길의 아래에 도로의 기초가 아직 잘 남아 있다고 합니다.
세비야를 벗어나 마을과 마을을 지나다 보면 주로 보이는 것은 올리브 농장과 도토리나무 농장입니다. 스페인의 올리브 오일은 그 생산량과 품질에 있어 이탈리아나 그리스 못지않습니다. 그리고 이베리코 돼지로 유명해진 그 돼지는 농장의 도토리나무 열매를 먹으며 자라고, 와인의 뚜껑으로 사용되는 코르크는 바로 이 도토리나무의 두꺼운 껍질로 만들어집니다. 코르크를 만들기 위해 껍질이 벗겨진 나무의 밑동은 붉은색을 띠는데 , 껍질이 벗겨진 수많은 붉은색 밑동을 보며 표현하기 어려움 묘한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코르크 마개로 만들어지는 나무는 도토리나무 중 굴참나무 종류인데, 초반부 길에서 자세히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이 지역의 땅은 철분 함량이 높아 붉은빛을 띠거나 황토색인 경우가 많습니다. 철분 함량이 높아서 그렇다고 합니다. 엑스트레마두라 지방으로 넘어가기 전 안달루씨아 북부에서는 '데헤사'라고 하는 목초지가 많은데 바로 굴참나무(코르크참나무)와 이베리코 흑돼지들이 어우러진 풍경이 이어집니다.
10월 초중순부터 걷기 시작했지만 태양은 여전히 뜨겁고 순례자는 만나기 힘든 고독한 길이 시작부터 이어집니다. 이 길은 그늘을 접하기 어렵습니다. 한여름에는 순례자를 탈수로 위험한 상황에 빠지게 만들기도 하므로 은의 길 순례는 7, 8월은 권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걷는 분들은 있습니다.
하얀 마을(Pueblos Blancos) : 기예나(Guillena), 카스틸블랑코 데 로스 아로요스(Castilblanco de los Arroyos), 알마덴 데 라 쁠라따(Almadén de la Plata) 같은 마을들은 뜨거운 태양을 반사하기 위해 집을 하얗게 칠했다고 합니다. 고독하고 황량한 들판을 걷다 만나는 하얀 마을은 순례자에게 오아시스와 같으므로 이들 마을은 하루 머무는 장소가 됩니다. 순례자나 지역 주민을 길에서 만나기 어렵기 때문에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됩니다.
1천여 킬로미터에 달하는 은의 길에서 안달루씨아 지방은 그 시작에 갖게 되는 흥분을 고양하며 또한 조용하고 고독한 길은 순례자의 마음을 차분하게 다독여 순례의 완성을 위해 준비하는 구간으로써의 역할을 함에 부족함이 없는 첫 구간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