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의 길, 눈으로 걷는 순례길 2

눈으로 걷는 산티아고 순례길 2편

by 감뚱

04.1-3 기예나, 까스띨블랑꼬 데 로스 아로요스, 알마덴 데 라 쁠라따


은의 길 첫 구간인 안달루씨아 구간은 보통 3번 끊어 갑니다. 4일 차에 엑스트레마두라 지방으로 진입하게 되는데 세비야를 떠나면 마을은 점점 작아지고 인적이 드문 길을 걷게 되지만 길의 난이도가 높지 않아 초반적응하는데 무리가 없습니다. 다만 마을에서 벗어나면 급격히 적막해집니다. 순례자 말고는 가끔 사냥꾼과 사냥개들을 도토리나무 숲에서 만날 수 있는데, 이들은 총을 들고 있어 좀 위협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만 인사는 잘 받아줍니다.


■ 1일 차 - Sevilla 세비야 ~Guillena 기예나 : 25km

세비야 시내를 벗어나 순례길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아 혼란스럽습니다. 지도를 확인하면서 큰 도로를 통과해 강을 건너는 다리로 진입하는 길을 찾는데 잠시 헤맸지만 어찌어찌 본선을 찾아갑니다. 과달키비르 강을 두 번 건너 건너면 Camas 라는 제법 큰 마을을 만나는데 이곳에서 바르나 마트에 들러 요깃거리를 살 수 있습니다. 이 구간만 잘 찾아가면 이후로는 길 찾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cama는 침대라는 뜻입니다. 대도심 근교의 베드타운 역할이라서 동네이름이 침대일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봅니다.

진행 방향의 상업센터 빌딩과 여명
까마스 마을 중심부의 Iglesia Parroquial de Nuestra Señora de Gracia. 세요를 받을 수 있습니다.

까마스를 통과하면 Santiponce 산띠뽄쎄라는 마을로 이어지는데, 이곳은 상당히 큰 규모의 이딸리까 유적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먼저 큰 규모의 극장 유적을 만나고 작은 박물관을 볼 수 있습니다. 찬찬히 한 바퀴 둘러보고 큰길로 나가면 바로 원형 경기장 등의 유적이 대규모로 발굴되어 있는 Itálica를 만날 수 있습니다. 2천 년 전 로마를 떠나 타지에서 생활해야 했던 로마군인을 위해 로마와 똑같은 모습으로 재현한 도시에서 고향을 떠나온 로마 군인들은 향수를 달래며 반란의 마음을 접었을까요?

Monasterio de San Isidoro del Campo 이시도로 성인의 수도원

Teatro Romano de Itálica 이딸리까의 로마 극장 유적
극장 유적 Teatro Romano de Itálica

극장유적을 둘러본 후 진행하는 길에 공립 박물관이 있었는데 마침 휴관이라 세요만 하나 찍고 큰길로 나와 조금 걷다 보면 도로 왼쪽으로 이딸리까 유적으로 입장할 수 있습니다. 입구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것은 Anfiteatro de Itálica(이딸리까의 원형 경기장)입니다. 규모가 상당합니다. 수용인원이 2만 5천 명이나 되어 당시 로마제국의 원형 경기장중에서도 가장 큰 것들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자료를 찾아보면 실제 상주한 인구는 대략 8천 명에서 만 명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당시의 인구수보다 수용인원이 훨씬 많은 원형경기장은 로마제국의 황제 트라야누스와 하드리아누스를 배출한 이곳의 상징성 때문에 실 거주인원에 비해 화려하고 거대하게 지어졌음을 시사한다고 합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 통치 시기에 만들어진 2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로마제국에서 가장 큰 원형극장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원형 경기장


원형극장 계단형 좌석 밑에 통로가 현대의 건물과 다르지 않습니다..
Amphitheatre of Italica
주거지 터
주거지 터에 남아있는 타일 장식
이딸리까의 총면적은 약 52헥타르(약 16만 평)로 국제 규격 축구장 면적의 52개를 합친 면적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집의 장식적 요소가 꽤나 화려함을 아직도 느낄 수 있습니다.
대중목욕탕 유저거

2천 년 전 수백 년에 걸쳐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했던 로마제국은 영광스러웠던 흔적을 뒤로하고 1일 차의 목적지 기예나로 향합니다. 산띠뽄세를 나서면 인적은 사라지고 넓은 농토 사이로 난 끝도 없어 보이는 길이 지평선까지 이어집니다. 약 8km가 넘는 거리는 이렇게 혼자서 걷게 됩니다. 앞으로도 쭉 그렇겠지만...

갑자기 나타난 자전거 타는 학생 무리들
들꽃이 예뻐서
꽃인 줄 알았으나 달팽이 군집... 좀 징그럽
길고 긴 외길 끝으로 기예나가 보입니다.
목화솜을 재배하는 곳이었나 봅니다.
알베르게 Luz del Camino 길의 등(가로등?)
알베르게 옥상에서 본 기예나의 낮과 일몰

뜨거운 해는 빨래를 2시간 만에 뽀송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첫날을 무난하고 무사하게 마무리합니다.


■ 2일 차 - Guillena 기예나 ~ Castilblanco de los Arroyos 까스띨블랑꼬 데 로스 아로요스 : 30km

2일 차는 까스띨블랑꼬 데 로스 아로요스라고 하는 마을까지 걷습니다. 길이가 길고 중간에 딱히 요기할만한 곳이 없어 길에서 먹어야 할 간단한 음식을 미리 챙겨 놨습니다. 새벽이라고 할 수는 없는 7시가 좀 안되어 길을 나서는데, 역시나 마을은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긴 마을 끝에 오픈한 바르가 있어 까페 꼰 레체 한잔을 마시며 약간의 에너지를 충전합니다. 스페인도 노인들이 잠이 없나 봅니다. 이른 아침부터 바르에는 동네 할배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마을 끝에서 일출을 맞이합니다.
강이라고 해야 할지 또랑이라고 해야 할지... 이름은 우엘바 강입니다.
길의 정면에서 일출을 보는 일을 매우 드뭅니다.
마을 공장 농기계 사이에서 이방인을 바라보는 샴 고양이.

마을을 지나오면 오늘의 목적지까지는 중간 마을이 없습니다. 10월 15일이지만 한낮의 태양은 참 뜨겁습니다. 수확을 마치고 난 들판, 끝도 없을 것 같은 올리브 숲, 포도 과수원을 계속 이어 나가며 걷습니다.

아침 역광의 풍경
무엇인지 궁금해 찾아 봤는데 Finca cañuelo alto라는 명칭으로 지도에 표기되어 있습니다. 높은 곳에 위치한 까뉴엘로 농장(별장)이라는 뜻인듯 합니다.
올리브나무 농장의 꼭대기쯤에서 뒤를 돌아보니 기예나가 멀리 보입니다.
농장 길바닥의 호박돌에 노란색 화살표가 갈 길을 안내합니다.
아직 6.9km를 더 가야 합니다.
도로 옆 길을 따라 걷습니다. 차가 별로 없어 조용히 걸을 수 있습니다.
까스띨블랑꼬 데 로스 아로요스 입구
오늘 하루 몸을 맡길 공립 알베르게입니다.
알베르게 2층 베란다에서 바라본 마을 풍경. 흰색 벽과 주황색 지붕이 인상적입니다.
마을 중심 성당
알베르게 2층 베란다라고 해야 하나 테라스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부엌에 남아는 식재료로 만든 파스타와 마트에서 사온 샐러드,맥주로 저녁을 해결합니다.
저녁 풍경

2일 차도 무사히 마쳤습니다. 오늘 이곳 알베르게에는 열명쯤 되는 순례자가 쉬어 갑니다. 어제 기예나의 알베르게에서 같은 방에서 잤던 에밀리오 형님은 오늘도 코를 많이 골텐데...


■ 3일 차 - Castilblanco de los Arroyos 까스띨블랑꼬 데 로스 아로요스 ~ Almadén de la Plata 알마덴 데 라 쁠라따 : 30km

3일 차도 도착마을까지 중간에 마을이 없기 때문에 먹을 것을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곤란해집니다. 7시쯤 길을 나서지만 아직 깜깜합니다. 마을을 벗어나면 랜턴 없이 걷는 게 어렵습니다.

오늘도 정면에서 일출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마을을 나와서 거의 두 시간 넘게 도로를 걷습니다. 급하지 않은 오르막과 내리막 길이지만 왠지 더 힘든 것 같습니다. 북쪽길 800여 km를 32일 정도 걷고, 세비야로 넘어와 매일 2만 보 이상을 걷다 다시 이 길을 이어 걷지만 힘듦은 매일 새롭습니다.

도로를 따라 계속 이어지는 길
도토리나무의 종류가 여러 가지라서 도토리 모양도 다릅니다.
도로 양옆으로는 이렇게 누군가의 농장입니다.

도로를 따라 걷는 길은 이제 Parque Natural Sierra Norte de Sevilla(세비야 북부 산맥 자연공원)으로 접어듭니다. 넓이를 짐작할 수 없는 상수리가 심어진 공원을 몇 시간에 걸쳐 걷습니다. 이곳은 경치가 제법 좋은 공원이라 그런지 가끔씩 트래킹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으며 나중에 찾아보니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지질공원이라고 합니다.

자연공원 안내판과 은의 길 표시석
도토리나무 숲
굴참나무(도토리나무의 종류) 껍질을 벗기면 사진처럼 빨간 색의 도토리나무 알몸뚱이가 나옵니다. 부끄러워서 빨개졌나 봅니다.
벗겨낸 수피는 이렇게 건조를 거친 후 코르크 마개가 됩니다.
공원 관리시설과 공원내 남아있는 집터
솔방울로 화살표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말똥구리?
이제 저 언덕을 넘어가면 오늘의 목적지인 알마덴 데 라 쁠라따입니다
Mirador del Cerro del Calvario 깔바리오 언덕의 전망대 풍경
마을이 한눈에 들어 옵니다.
마을 입간판과 염소 가족
마을에는 두개의 높은 건물이 있는데 하나는 성당이고 또 하나는 관공서 입니다.
공립 알베르게

마지막에 길고 높아 보이는 고개는 꽤 힘들게 넘어야 했습니다. 언덕 정상에서는 은의 길 진행방향인 북쪽과 반대쪽인 남쪽을 한 번에 볼 수 있 시원한 경치는 길고 힘들었던 3일 차를 회복시켜 줄 만합니다. 이곳의 공립알베르게는 순례자 수에 비하면 많은 수의 침대를 가지고 있고, 8명 정도 되는 순례자들이 방 두 개를 각각 나눠 씁니다. 코골이 에밀리오 형은 또 같은 방입니다. 내일은 안달루씨아를 벗어나 엑스트레마두라주로 접어들게 됩니다.

첫번째 구간인 안달루씨아는 세비야의 구도심과 이딸리까, 그리고 도토리 숲의 자연 공원을 경험할 수 있는 짧지만 가장 인상적인 구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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