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걷는 산티아고 순례길 2편.
북쪽 길 800여 킬로미터를 걷고 1,000km에 달하는 은의 길(Vía de la Plata)을 걷기 위해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에서 부엘링 에어를 저렴한 가격으로 예약해 타고 그 장엄한 서막을 알리는 도시 안달루시아의 뜨거운 심장, 세비야 도착했습니다. 10월 초가 되었지만, 날씨는 매우 따뜻하고 쾌청합니다.
그 유명한 스페인 광장에서 석양과 함께 플라멩코를 추는 무희를 볼 수 있을까 싶었는데, 축제 기간에 걸려 광장 안으로 진입이 불가했습니다. 아쉽지만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만 그래도 붉은 오렌지빛의 벽돌로 지어진 광장의 건물은 아름다웠습니다.
세비야는 스페인이 통일국가가 되기 전까지는 그리스 해양 세력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고, 로마의 지배기에는 안달루시아 지방의 중심이었습니다. 서고트족이 멸망한 이후 이베리아반도의 중부와 남부는 이슬람 세력의 지배권이었습니다. 그러다 페르난도 3세가 1248년 11월 16개월간의 세비야 포위 공격으로 마침내 알모아드 왕조로부터 항복을 받아내며 이후 완전히 이슬람 세력에게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세비야 탈환은 국토회복운동(레콘끼스따,reconquista) 거대한 전환점이 되었고, 이후 세비야는 카스야 왕국의 주요 거점 도시이자 왕실의 거처로 현재까지 사용되며 번영을 누리게 됩니다.
국토회복운동과 가톨릭의 지배라는 측면에서 은의 길은 순례길의 역사에서도 큰 의미가 있지 않냐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세비야는 3천 년이 넘는 역사를 품고 있는 도시입니다. 이베리아인, 켈트족, 고대 국가였던 타르테소스에 이어 페니키아, 그리스, 카르타고 등의 세력이 번영했었고, 오랜 기간 로마의 경제를 담당하는 주요한 지역으로 운영되다 서고트 멸망 이후 이슬람 세력이 1248년까지 지배했으며 이후로 현재의 스페인이 지배했던 역사의 중심지였습니다. 참고로 이슬람 세력을 완전히 축출한 해는 1492년입니다. 711년부터 1492년까지 이베리아반도는 이슬람의 세력이 지배하거나 유지되었습니다. 세비야는 이슬람의 건축과 과학, 예술을 그대로 보여주는 알카사르Alcázar(궁전, 요새)와 히랄다 탑, 성당으로 개조된 세비야 대성당, 과달키비르강과 그 곁을 지키고 있는 황금 탑, 그리고 고대 이베리아반도의 주인이었던 타르테소스족이 남긴 카람볼로 유적에 이르기까지 약 3천년의 역사를 잇고 있기에 산티아고 순례길 중 은의 길 출발지로 가장 합당한 장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은의 길 출발지인 세비야의 유적들을 돌아보지 않고 길을 떠나는 건 너무도 아쉬울 것 같아서 걸어서 1박 2일 돌아봅니다. 대표적인 관광지이자 유적지 몇 군데를 사진으로 소개해 봅니다.
역사의 시간을 그대로 품고 쌓아가고 있는 정원에서 잠시 여유를 즐겨 봅니다. 10세기 이슬람 세력에 의해 요새로 만들어졌다가 왕궁으로 개축되었고 카스띠야 왕국의 페르난도 왕이 세비야를 탈환한 후 기독교(여기서 기독교는 예수를 믿는 종교를 총칭해 한자로 표기한 것이고, 이 글에서는 가톨릭을 말합니다.) 기본 양식에 이슬람의 섬세한 문양이 결합된 '무데하르' 양식의 궁전으로 개축되었다고 합니다. 기하학적인 타일 무늬를 따라가다 보면,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가 결국 하나의 아름다움으로 만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수많은 이야기와 전설이 남아있는 알카사르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돌아보면 반나절은 훌쩍 지나갑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아깝지 않다고 느껴집니다.
*오픈시간 전에 와서 기다리면 현장 구매도 가능했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마리아 데 파디야의 목욕탕(Baños de Doña María de Padilla)'라는 명칭을 가진 곳입니다. 이곳은 원래 빗물을 모아놓는 저수조의 역할을 했었는데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페드로 1세 왕은 정부(情婦)였던 마리아 데 파디야를 매우 사랑하고 그녀의 아름다움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왕은 신하들에게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를 보여주고자 그녀가 목욕할 때 일부러 그 모습을 보게 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페드로 1세는 신하들에게 마리아가 목욕한 물을 마시라고 명령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이때 한 신하가 "자고새의 육수를 마시면 자고새 고기도 먹고 싶어지기에 이 물을 마시면 마리아를 탐할까 두렵습니다"라고 재치 있게 대답하여 왕의 진노를 피했다는 일화가 유명합니다.
알카사르의 담장을 마주하고 선 세비야 대성당과 히랄다 탑은 이제 막 첫발을 떼려는 순례자들에게 나침반과 같습니다. 이슬람 탑으로 세워진 히랄다 탑은 당시 유럽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고 합니다. 이슬람이 세비야를 뺏겼을 때 그 상징성을 고려해 히랄다 탑을 부수고 도망치려고까지 했다고 합니다. 가톨릭에 다시 편입된 후로 증축이 이루어져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나란히 붙어있는 세비야 대성당은 관람 시간을 맞추지 못해 외관만 돌아보는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세비야 대성당은 고딕양식으로는 가장 크다고 하며 이곳에는 스페인에 묻히기를 거부했던 포악한 탐험가 콜럼버스의 묘가 있습니다.
고대에는 세비야를 흐르는 과달키비르는 강이 아니라 바다로 인식할 정도로 큰 강이었다고 합니다. 1220년경 이슬람 무와히드 왕조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강을 통과하는 선박을 검문하고 도시를 방어하는 요새 역할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탑의 외관 상단이 건축 당시 황금빛 타일로 덮여 있어 빛을 반사했기 때문에 '황금의 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가 가장 유력합니다. 현재는 스페인 해군의 역사와 항해 도구 등을 전시하는 해양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전망대에서는 강과 세비야 성당과 히랄다 탑을 포함한 도시 전경을 조망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무료입니다.
세비야 성당 중심의 구도심은 꽤 넓습니다. 그 긴 역사가 있기 때문일 테지만 스페인 전체에서 봐도 구도심의 면적은 가장 클 뿐 아니라 그 길과 건물들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도 가장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세비야 구도심의 규모는 유럽 전체에서도 손꼽힌다고 합니다.
대성당 외에도 아름다운 성당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고, 광장, 도로, 공원도 시간을 품은 채 각각의 자리를 지키고 있기에 어느 곳을 보더라도 작은 감동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며, 길고 고독한 은의 길을 걷기 전 충분한 기운을 고양시키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