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걷는 산티아고 순례길 2편
엑스뜨레마두라는 스페인 서부, 포르투갈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방입니다. 이곳을 관통하는 순례길은 가톨릭 성인의 추앙을 위한 단순한 종교적 여정을 넘어, 2,000년 전 로마인들이 닦아놓은 길을 그대로 밟고 느낄 수 있는 역사체험 여행의 구간이기도 합니다.
엑스뜨레마두라 구간은 극강의 고독한 구간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사진에 담기는 내용 또한 비교적 단순합니다. 길, 하늘, 그리고 가축이 중심이 됩니다. 스페인 지방의 사람 냄새나는 사진은 메리다 같은 도시가 아니라면 담기 쉽지 않습니다. 그저 흔적과 느낌을 더 많이 접하게 됩니다.
스페인 남서부와 포르투갈에 걸쳐 형성된 '데에사 Dehesa'로 불리는 독특한 농림축 복합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단순한 자연 숲이 아니라, 인간이 수백 년 동안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만들어낸 지속 가능한 토지 관리의 결과물이라고 합니다. 참나무(도토리나무) 숲과 초원, 그리고 가축방목이 결합된 형태로 다양한 생물의 생태계가 매우 보존이 잘 된 상태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제법 유명해진 이베리코 돼지는 데에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으며, 천연 코르크는 지역 경제를 위한 주요한 수입원이라고 합니다.
이 구간에서는 로마의 유산을 특히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길 자체가 유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로마 시대의 이정표인 '밀리아리오(Miliario)'가 길에 놓인 모습은 과거와 현재에 대한 시간의 흐름을 간접체험할 수 있게 해 줍니다. 특히 메리다의 로마 유적과 카파라의 아치를 통해 2천 년 전 로마제국의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
스페인 역사를 통해 이슬람과 가톨릭(기독교) 세력이 끊임없이 충돌하던 중심지이기도 합니다. 엑스뜨레마두라라는 이름 자체가 두로 강 너머의 땅이라는 뜻으로 가톨릭 세력의 국토 회복운동 기간 내내 이슬람 세력과 치열하게 공방 하는 최전선이었고, 이 때문에 이곳의 도시들은 요새처럼 견고하다고 합니다.
엑스뜨레마두라 지역은 고대 로마의 유산이 남아 있는 은의 길의 핵심 구간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여유가 있는 순례자라면 메리다, 까세레스, 쁠라센시아에서 하루씩 머물며 2천 년 전부터 중세,근세에 이르는 역사의 숨결 더 가까이 오래 느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