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걷는 산티아고 순례길 2편
이제 순례길은 정확히 후반으로 접어듭니다. 중반에 만나는 지역은 스페인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Castilla(까스띠야) y(이) León(레온)입니다. 까스띠야 이 레온은 산티아고로 가는 여러 순례 길들이 만나는 땅입니다. 스페인의 중앙 북부에 위치한 Castilla y León은 면적으로 보면 스페인에서 가장 넓은 자치주입니다. 넓은 고원, 끝없이 이어지는 밀밭, 중세 도시와 로마 유적이 공존하는 이곳은 단순한 행정구역이 아니라 스페인 역사와 산티아고 순례의 중심 무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지역은 이름 그대로 '성채(Castilla)'와 '사자(León)'가 합쳐진 땅입니다. 중세 시대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땅을 되찾으려던 '레콩키스타(국토회복운동)'의 최전선이었기에, 들판 곳곳에는 장엄한 성곽과 요새가 점점이 박혀 있습니다.
스페인어의 요람: 우리가 배우는 현대 스페인어(Castellano)가 태동한 곳이며, 수많은 왕국의 흥망성쇠가 이 황금빛 밀밭 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유네스코의 축복: 부르고스, 세고비아, 아빌라, 살라망카 등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인 곳들이 즐비하여,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모든 순간이 역사적 기록이 됩니다.
이 지방은 스페인의 주요 순례길들이 모두 교차하는 '순례의 성지'입니다.
은의 길 (Vía de la Plata): 에스트레마두라를 지나 북상하면 만나는 살라만까(Salamanca)가 이 지방의 남쪽 관문입니다. 살라만까를 지나면 또 다른 역사도시 사모라를 지나며, 로마 시대의 흔적과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아름다운 올드타운을 볼 수 있습니다.
프랑스 길 (Camino Francés): 가장 특징적이며 저에게는 가장 아름다운 프랑스 길의 한 장면인 광활한 고원 지대인 메세타(Meseta) 구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끝없는 평원과 고독한 순례자의 뒷모습, 그리고 부르고스와 레온 대성당의 압도적인 고딕 양식은 프랑스 길의 하이라이트입니다. 부르고스, 레온, 아스또르가 등의 유서 깊은 도시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발렌시아에서 시작되는 레반떼 길(Camino Levante)과 마드리드에서 시작되는 마드리드 길(Camino Madrid)이 그리고 뽄페라다(Ponferrada)에서 시작되는 겨울 길(Camino Inviero) 노선이 지납니다.
까스티야 이 레온의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이 없는 평원을 걷다 보면, 시선은 자연스럽게 외부가 아닌 내면으로 향할 것 같지만 딱히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중간에 살라만까와 사모라의 도시구간을 제외하면 그야말로 홀로 걷는 외로운 구간들이지만 내면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숙소 때문에 어디까지 걸어야 할까 생각하는 일이 많으며, 비라도 내리면 춥고 힘들어 멘탈이 나가기도 합니다.
은의 길은 Granja de Moreruela(그란하 데 모레루엘라)에서 프랑스 길인 아스또르가 방향으로 걷거나, 오우렌세 방향으로 진입하는 사나브레스 길로 나뉘게 됩니다. 프랑스 길은 경험이 있으므로 사나브레스 길로 이어서 걷게 됩니다. 열이틀 정도 이 고독하지만 찬란한 구간을 지나면 도보 순례 여행은 갈리시아로 접어들며 그 끝을 향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