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걷는 산티아고 순례길 2편
이번 구간도 짧지 않아 새벽을 열고 출발합니다. 에밀리오도 같이 걷습니다. 마을 날 머리에서 돌 십자 삼형제를 만난 후 이후로 2시간 넘게 주변을 확인하기 어려운 어두운 길을 걸었습니다.
18km 정도 걸은 이후 까빠라의 로마 도시 유적을 만났습니다. 이런 게 있는 줄 몰랐어서 그 감동이 더 컸습니다. 은의 길에서 만난 2번째 로마 도시 유적입니다. 성문의 뼈대만 간신히 남아 있었지만 멀리서도 볼 수 있었을 만큼 수천 년 전의 위용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4면 아치 구조로 네 개의 기중이 네 방향으로 연결되어 아치형 통로를 형성하는 보기 힘든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카파라(Cáparra)'라는 명칭은 라틴어가 아닌 로마 이전의 베톤(Veton) 문화권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며, '교환, 물물교환 또는 시장의 장소'라는 의미를 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서기 1세기경 '피두스 마케르'라는 인물의 명령으로 건설되었다고 합니다. 아치는 도시의 중앙에 있으며 주변으로 광장, 공중목욕탕, 원형 극장, 주거지 유적 등이 발굴되어 당시 로마의 전형적인 도시 설계를 보여준다고 합니다.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도시락 혹은 간식을 반드시 준비해야 하는 구간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여유롭게 점심이나 간식을 하면 좋습니다.
로마 도시 유적을 뒤로하고 다시 걷습니다. 어제 머물렀던 까르까보소의 오른쪽(동쪽)에는 플라센시아라고 하는 도시가 있는데 이곳엔 대성당이 있을 정도로 규모가 있는 도시입니다. 은의 길을 걷는 사람 중에는 이곳에서 머물러 가기도 합니다. 대성당 구경을 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굳이 길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동네 중심부로 가는 마을 길에서 로마 거리 표시석을 두 개나 만났습니다. 2천 년 전에 돌에 새겨진 당시의 폰트를 보면 2 천년의 시간이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밀리아리오는 복원해 새겨 넣은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나라에서 2천 년 된 기록이 남아있는 경우는 접하기 어렵고 기껏해야 신라시대 비석 정도 남아 있는데, 아마도 우리나라도 나무가 아닌 돌로 만들어진 유적이 많았더라면 지금보다는 도 많이 남아 있지 않을까 싶기는 한데, 워낙에 전란을 많이 겪어서... 어땠을지. 돌의 역사성이란 참으로 대단한 듯합니다.
오늘 하루 쉬어 갈 알베르게는 '할머니의 집'이라는 이름을 가졌습니다. 접수하고 세요 찍고 하니 에밀리오가 먼저 도착해 맥주를 마시고 있다가 나에게도 맥주 한 병을 선물합니다. 오늘 저녁은 가게에서 라면과 간단한 먹을거리를 샀습니다. 순서대로 각자 먹을 걸 준비해서 먹고 오랜만에 세탁기로 빨래를 돌립니다.
운행기록을 보듯 12km 지점까지 934m 높이까지 오르막이 이어지는 코스라 거리는 짧지만 힘든 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 아침에 길을 나서며 어제 보지 못한 성당 앞을 지나며 마을을 빠져나갑니다.
초반 큰 도로를 따라 한동안 걷습니다. 스페인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렙솔(repsol) 주유소와 아침 일찍 문을 열고 화물차 운전자를 맞이하는 식당을 지나 오르막을 오릅니다. 렙솔에서는 유심 구입이나 연장도 가능합니다. 10월 말의 아침인데도 아직은 춥지 않고 아직 중부지역인 엑스트레마두라 지역이라 그런지 날씨가 쾌청해서 걷기 좋습니다.
진행 방향 왼쪽에 큰 저수지가 있는 오르막을 따라 걷는데 차량 통행이 많지는 않아 경치 구경하며 걷기에 좋습니다. 호수를 지나면 Baños de Montemayor(몬떼마요르의 목욕탕, 온천)라는 명칭의 조용하고 아름다운 마을을 만날 수 있습니다. 로마시대 은의 길 건설 당시 세운 온천 유적이 있다고 하는데, 확인은 못했습니다.
마을 들 머리의 작고 예쁜 경당 유적을 지나, 도로변에서 만난 길 고양이 새끼가 너무 이쁩니다. 이곳의 고양이들은 길 고양인지 집에서 키우는 고양인지 구분이 가지 않습니다.
마을 중심브로 이어지는 길은 계속 오르막 언덕이고 집들은 언덕을 따라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마을의 조그만 중앙 광장에 있는 바르 'Bar Carlos'에 들러 다른 순례객이 시켜 먹는 것을 보고 토스타다(토스트)와 까페 꼰 레체를 시켰는데, 빵사이에 끼워 먹는 하몽의 질이 제법 좋아 보입니다. 특히 잼처럼 발라먹는 토마토 퓌레는 신선한 산미와 함께 감칠맛이 제법 좋아 오랜만에 아침식사로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단순합니다. 이 길을 지난다면 꼭 바르 까를로스에 들러보길 권합니다.
오늘은 어째 계속 오르막이 이어집니다. 마을을 빠져나가는 길은 경사가 꽤 있어 힘이 듭니다.
힘들게 언덕 정상에 도착하니 '살라만까 salamanca'가 시작된다는 표지판을 만납니다. 이제 엑스트레마두라에서 벗어나 순례길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까스띠야 이 레온(Castilla y León)에 접어듭니다. 사람 구경하기 힘들지만 사람과 부대끼려고 떠나온 길이 아니니 당연히 외로운 감정을 없습니다. 심심하지도 않습니다. 오로지 나 한 사람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이 벌써 50일가량 되었습니다.
언덕을 넘어 오늘의 목적지인 'La Calzada de Béjar(라 깔사다 데 베하르)'로 가는 길은 인적이 드물어지는 산길 비슷하게 이어집니다. 마을 이름의 의미는 '베하르 근처의 로마 가도가 지나는 마을' 정도의 의미라고 합니다. 주변에 'Puerto de Béjar(뿌에르또 데 베하르)'라는 명칭의 마을이 있습니다. puerto는 항구라는 의미로 많이 쓰이는 지라 "이런 산속 마을 이름에 왜 Puerto라는 명칭이 들어갔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겨 검색을 해봅니다. 'Puerto'는 '산맥을 넘는 고개'라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이 지역을 지나다 보면 서너 개의 로마시대 밀리아리오를 볼 수 있습니다. 제대로 서 있는 것도 있고 반쯤 부러진 것도 있고, 밀리아리오를 둘러싸 건물을 만들어 놓은 곳도 있습니다.
오늘 숙박지인 La Calzada de Béjar에 조금은 일찍 도착했습니다. 알베르게는 마을 입구에 있어 접수하고 정리하고 작은 마을 구경을 나섭니다. 다행히 바르가 하나 있어 에밀리오와 맥주도 한잔 합니다. 저녁에 다시 나와 12유로짜리 메누 델 디아로 저녁을 해결합니다. 맛은 그다지이었지만 말입니다.
할거 없는 동네라 일찍 잠든 듯한데 잘 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새벽에 눈떠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그래도 오늘은 거리가 짧아 늑장을 부리다 8시쯤 출발합니다. 알베르게 위로 별들이 제법 보여 한번 찍어 봅니다. 삼각대가 없어 메인 카메라로는 찍을 수 없었고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어보았는데 제법 찍힙니다. 갤럭시 21 울트라 좋습니다. ^^
중간 마을 '발베르데 데 발델라까사'에 도착해 바르에서 간단히 요기를 합니다. 맛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하몬 & 께소(치즈) 보까디요와 콜라를 먹고 담배 한 대 말아 피워 봅니다. 뭐 이거보다 좋은 게 없습니다.
마을 중심부에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성당이 있습니다. 마을이 크진 않지만 현재 사용하는 성당과 복원한 오래된 성당이 있습니다.
마을 중앙 골목을 따라 걸으면 끝 부분에 오늘의 숙소인 Albergue parroquial Santa María에 도착합니다. 기부제 알베르게로 저녁과 아침, 침대를 제공합니다. 순례자들이 기부금을 많이 내지 않는지 저녁 식사는 빠예야 한 그릇과 야채샐러드가 다입니다.
정리하고 수많은 파리 중 일부를 사냥해서 숫자를 좀 줄인 후 동네 바르를 찾아 나갑니다. 바르에는 동네사람이 한가득입니다. 한자리를 차지하고 맥주에 돼지 간 튀김을 곁들여 봅니다. 제법 맛이 있습니다.
저녁 식사 전 알베르게의 관리자가 성당 투어를 시켜줍니다. 하지만 불어로 설명하는지라... 뭐 영어나 스페인으로 했다고 해도 크게 다르진 않았을 겁니다만... 구글의 도움을 받아 봅니다.
Iglesia Parroquial de Santa María 산따 마리아의 교구 성당은 베하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12세기말에서 13세기 초 사이에 건설되었고 초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지만 수세기에 걸쳐 증축과 개보수를 거치면서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이 층층이 쌓인 독특한 구조라고 합니다. 실제로 이전에 경험했던 성당의 모습과는 다른 면면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지역에서 상당히 의미 있는 성당이라고 합니다. 성당 옆에는 로마 밀리아리오와 로만 로드를 건설한 방법을 보여주는 복원된 길이 있어 또 하나 배우게 됩니다.
기부제 알베르게는 침대만 제공하는 곳과 식사까지 제공하는 곳이 있는데, 잠만 자는 곳은 10유로 내외를 내고 식사까지 제공하는 곳은 15유로 정도 내긴 하지만, 순례자의 입장에선 차라리 금액을 정해주는 것이 더 편안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여유가 없는 순례자들에게는 도움이 되고 여유로운 순례자는 좀 더 좋은 숙소를 찾아가긴 할 테지만 말입니다.
이번(2022년 가을)에 걷는 길에서의 알베르게 비용은 시립이나 공립의 경우 7~10유로가 많았고 사립 알베르게는 15~20유로 정도였습니다. 2016년에 비하면 30% 이상 비싸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