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걷는 산티아고 순례길 2편
계속 평원을 걸어온 것 같지만 해발고도가 800m가 넘는 지역이다 보니 해가 나도 그렇게 덥지 않고 서늘합니다. 11월 1일이면 우리나라에서는 초겨울이라 반팔로 지내기 어렵지만 이 곳은 한낮엔 아직 직사광 상황이면 좀 덥다는 생각이 듭니다. 살라만까를 빠져 나오는 이른 아침엔 제법 쌀쌀해졌습니다. 조명을 받아 더 멋져 보이는 대성당을 뒤로하고 구시가지를 빠져 나갑니다.
올드 타운을 조금 빠져나오자 만난 '성 마르꼬스 성당' Iglesia de San Marcos.
구글 자료에 따르면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로 독특한 건축 양식의 원형 교회로 알려져 있습니다. 스페인에 존재하는 원형 양식을 가진 몇 안 되는 로마네스크 양식 사원 중 하나라고 합니다. 입장은 무료이며 자유롭게 관람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오픈시간에 지나간다면 꼭 들러 보시길 추천합니다.
올드 타운을 빠져나오니 바로 한적해집니다. 와... 이렇게 금방 인적 드문 길이라니. 동트기 전 가로 등 빛이 아름다워서 한컷. 저 앞에 에밀리오 형이 걸어가고 있습니다.
출발지에서 7km 정도 떨어진 Aldeaseca de Armuña 마을에 도착. 뭔가 좀 먹을 수 있을까 했는데, 아직 바르는 오픈전이고 찾아다니기도 뭐해서 성당 옆을 지나 바로 통과합니다.
마을을 빠져나오자 마자 바로 한적하지만 매우 넓은 비포장의 시골길이 나옵니다. 도보 여행을 약 55일 정도 진행하고 있지만 그 시간만큼 내 그림자만 성장한건 아닌지... 정신도 신체도 단련되거나 하진 않는 듯 합니다.
17km쯤 걸어 도착한 곳은 'Castellanos de Villiquera'라는 작은 마을과 이어서 3km 정도 걸어 'Calzada de Valdunciel 깔사다 데 발둔씨엘' 이라는 마을 입니다. 뭔가 먹고 가려고 했지만 마땅치 않아 잠시 벤치에서 쉬며, 어제 산 하몬 보까디요로 점심을 대신합니다. 하몬 보까디요가 맛있기 어려운데 맛있습니다. 하몬 전문점에서 산거라 그런듯 합니다. 질좋은 하몬이 맛있는 보까디요가 됩니다.
마을을 빠져나면 다시 외로운 길이 멀리 곧게 이어집니다. 물이 군데군데 고여있는 흙길을 걷다가 물웅덩이 때문에 도저히 지나갈 수가 없을 것 같아, 도로 갓길로 올라서 걷는데 뭔가 느낌이 싸해졌습니다. 도로의 폭과 차량의 속도가 장난 아닙니다. 지도를 보니 고속도로 입니다. 그것도 모르게 1km가 넘게 걷는 동안 가끔 차들이 클락션을 울린 이유가 응원이 아니라 내려가라는 소리였나 봅니다. 고속도로에 이렇게 자연스럽게 올라갈 수 있었는지 이해는 안갔습니다. 래도 갓길이 꽤 넓어 위험하단 생각은 안 했는데, 내려갈 만한 곳을 찾아보니 잘 보이질 않습니다. 도로와 접한 곳 일정 부위를 철조망을 처 놓아서 넘어가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렇게 한 30분 넘게 헤맨 후 철조망이 가장 가까워 보이는 곳으로 내려가 간신히 철조망을 넘어 보행자 길로 복귀합니다. 스페인 고속도로에 민폐 많이 끼친 날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오늘 예약해 둔 'El Cubo de Tierra del Vino'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알베르게 근처에서 맥주 마시러 바르 찾아 나가는 에밀리오 형을 만납니다. 알베르게를 알려주곤 다른 순례자와 맥주 마시러 총총. 알베르게 쥔장은 도미토리를 예약했는데 독방을 떡하니 내줍니다. 저녁이 맛있다고 소문이 나 있는 곳이라 저녁, 아침, 독방 포함해 40유로를 지불했습니다. 카드가 안된다하여 현금으로. 여기서 처음 독일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남자아이와 같이 순례길을 걷고 있는 어른을 만났는데, 아마 직업적으로 아이들의 교화?를 위해 동행하는 선생? 같은 역할을 하는 친구를 만났는데, 이 일행과 이후로 자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어린 녀석이 나에게 담배를 달라고 해서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인솔자에게 물어보니 독일에서도 미성년 흡연은 불법이라고 했습니다.
잔뜩 젖은 등산화를 말리고 빨래를 널고, 씻고 좀 쉬다 저녁 먹으러 갔는데 와우... 소문처럼 음식이 맛있습니다. 특히 닭다리 요리는 맛있어서 몇 개나 더 집어 먹었고 집에서 직접 담근 와인도 매우 좋았습니다.동네 이름이 '포도주의 땅에 있는 (요새탑이 있는) 마을'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발바닥과 발가락이 아픈 하루였지만, 맛있는 저녁과 독방에서의 휴식으로 마무리할 수 있어 좋았고 저녁노을이 이뻐서 더 좋았던 하루를 마무리 합니다.
은의 길도 이제 절반을 훌쩍 넘겼습니다. 40유로의 지출이 있었지만 저녁 식사도, 잠도, 아침도 좋아 출발도 즐거웠습니다. 7시도 안된 시각에 에밀리오와 함께 출발하지만 내 발걸음은 금새 느려져 에밀리오는 놓쳤지만 아름다운 동트는 하늘은 카메라에 영원히 잡아두었습니다.
해발고도는 800m 대에서 900m로 높아졌는데 이런 평원이 펼쳐 집니다. 참 세상은 넓고 못본 곳은 거의 다 입니다. 하지만 지구상의 모든 곳을 다 볼 수는 없겠지요. 현재의 그리고 미래의 현실에 충실하며 깊이 보다는 빈도를 높일 수 있길 바랄 뿐 입니다.
배가 고파서 본선에서 약간 벗어난 마을인 San Marcial의 바르에 들러 타파스 몇 가지와 콜라로 요기합니다. 순례자들이 거의 이곳에 들러 쉬어 갑니다.
외곽에 있는 사모라 시청사를 지나자 멀리 대성당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사모라의 알베르게는 컨디션이 상당히 좋았고 구조도 독특했습니다. 원래 지형이 가지고 있는 암반을 그대로 살려 건축해서 주거 공간의 일부는 거대한 암석이 노출되어 있는 형태였습니다. 꼭 하루 머물러 갈 만한 알베르게입니다.
맛대가리 없는 라면과 즉석밥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성당 구경을 나섰습니다.5유로라는 큰돈을 내고 성당구경을 했는데, 뭐랄까... 여태 보아왔던 대성당들과 비교해 봤을 때 감동이 적다고 할까? 로마네스크 양식의 아름다운 성당이라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여 보긴 했지만. 일요일에는 무료입장이 가능하다고 하니 일요일에 사모라에 도착했다면 꼭 관람하길 바랍니다. 특히 대성당 옆의 사모라 성의 야경이 꽤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 사모라에서 또 하루를 충만하게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