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의 길, 눈으로 걷는 순례길 2

눈으로 걷는 산티아고 순례길 2

by 감뚱

16. 3-5 몬따마르따, 그란하 데 모레루엘라, 따바라

Via del la Plata 은의 길 21일 차

Zamora ~ Montamarta

사모라 ~ 몬따마르따

운행거리 : 20km


사모라 알베르베 오스삐딸레로가 마련한 아침을 골고루 먹어줍니다. 제법 차린게 있습니다. 이곳에서 에밀리오 형과 이별합니다. 그는 아스또르가 방향으로 걷는 은의 길을 걷고, 나는 사나브레스 길로 이어 걷습니다. 통상 은의 길 1천 km는 은의 길과 사나브레스 길을 이어 걷습니다. 아스또르가부터는 프랑스 길이기 때문에 굳이 그 길을 걷고 싶지는 않습니다. 에밀리오 형은 그간 같은 알베르게에 묵으며 친해진 유일환 스페인 아저씨였습니다. 그는 조리된 음식보다 보까디요 등으로 식사를 하며 경비를 절약하는 것 같은데 맥주는 아낌없이 사 마시는 맥주 고래입니다. 마드리드에 살고 있는 그는 스페인의 전체 순례길을 걸을 계획이라고 합니다. 이런 점은 좀 부럽습니다.

어제도 지나온 Santa María Magdalena de Zamora 뒤쪽으로 빠져 나갑니다.

성벽 안에서 바깥으로 나가는 길은 좁지만 차량 통행도 합니다. 옛날 사람들도 운송을 위해 길 넓이를 고려해 건물을 지었나 봅니다. 스페인의 주요 도시들은 이처럼 성곽도시 형태의 요새형의 도시들이 많습니다.

올드 타운 경계가 되고 있는 성곽
북쪽문
건물을 허물어 버린 벽면에 멋진 벽화를 그려 놓았습니다.

바람이 많이 불면서 빗방울이 날리는데, 이제 반팔 반바지로 오전과 저녁을 버티기가 쉽지 않습니다. 도시를 빠져나가 외곽에 데카트론이 있길래 오픈할 때까지 추위에 떨면 기다렸다가 긴바지 하나, 플리스 장갑하나, 바람막이 점퍼를 59유로에 샀습니다. 바람막이를 입으니 한결 좋습니다. 방수도 된다고 하니 더 좋네요.

이후 길은 거의 직선에 가까운 길입니다. 시야가 먼 직선의 길은 좀 지루합니다만 불어오는 바람에 옷깃을 여미고 가끔 흩날리는 비 때문에 좀 불편하기도 하지만 아직 남아있는 초록색을 보며 걷는 기분은 그래도 좋습니다.

직선의
"사랑한다는 것은 타인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라고 쓰인 돌 십자가
중간 마을에서 간단히 요기합니다. 또르띠야 데 빠따따스, 크로켓, 바게트 한 조각과 콜라

중간마을에서 덴마크 청년 빅터와 그의 연인을 또 만납니다. 요즘 자주 만나고 같은 숙소에서 머무는 날이 많아진 친구들입니다. 빅터는 말하기를 좋아하고 또 잘 웃고 말도 안 통하는 나와 대화를 많이 하려고 애씁니다. 특히, 간장공장공장장은장공장장이고...류를 좋아해서 덴마크식 간장공장을 들려주기도 합니다. 그의 연인도 밝긴 한데 말을 많이 하진 않습니다만 빅터에 비해서 영어를 상당히 잘합니다. 내가 영어를 평가한다는 게 말도 안 되긴 하지만... 젊음을 무기로 참 즐겁고 행복하게 산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마을 공터서 쉬고 있다 지나가는 나를 보곤 사진을 요청해서 한컷.

덴마크 청년 빅터와 그의 연인.

길고 긴 직선의 길 풍경이 계속 이어집니다. 덕분에 사진도 대강 대강 찍습니다.

길 멀리 오른쪽에 키 낮은 나무들이 보이다가
그 구간을 넘어서니 길 멀리 왼쪽으로 줄지어선 나무들이 보입니다. 재밌네.
기찻길을 넘어가야 하는 곳에 육교가 있어 시선이 좀 더 멀리까지 닿습니다.
육교에서 진행방향을 바라보니 길의 끝에 오늘의 목적지 마을이 보입니다.

오늘의 목적지 몬따마르따 알베르게에 도착했습니다. 마을과는 좀 떨어진 곳에 독채가옥으로 만들어졌는데, 마당도 널찍하니 나쁘진 않습니다만 난방이 안 돼서 좀 춥다고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따뜻한 물은 나와 샤워를 하고. 조금 떨어진 주유소 마트에서 간단히 과자와 음료수를 사서 저녁대신 먹습니다. 알베르게 관리자가 오지 않습니다.

예전엔 누군가의 집이었을 주택을 알베르게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담배 한 대 피우러 나오니 노을이 예쁩니다. 하루의 마무리를 예쁜 석양과 함께 할 수 있어 기분이 좋습니다.

저녁노을 색이 예쁩니다. 나이가 먹어도 아름다운 건 참 좋습니다.



Via del la Plata 은의 길 22일 차

Montamarta ~ Granja de Moreruela

몬따마르따 ~ 그란하 데 모레루엘라

운행거리 : 24km


참으로 오랜만에 추운 밤을 보냈다. 2016년 겨울 까미노에서 이런 추위를 느꼈었나 싶습니다.

아침에 찾아온 관리인에게 5유로 내고 세요 받고 출발. 8시에 출발하니 랜턴을 켜지 않아서 좋습니다.

마을 끝을 나서는 즈음 마을 주택의 담쟁이가 꽤 빨간것이 예쁘다는 생각과 한국이라면 한참 단풍 사진 찍으러 다녔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합니다. 아마도 귀찮음을 극복하지 못하고 말 것입니다만.

빨간색 담쟁이가 가을임을 느끼게 해 줍니다.
동네 끝에 전형적인 시골 성당인 Iglesia de la Inmaculada Concepción

긴 마을을 빠져나오자마자 지도상으로는 저수지의 물로 가득 차있을 곳(리코바요 저수지)으로 길이 나있고 그 길 저쪽에 성당 유적이 나타납니다. 가뭄이 심한 것인지 아니면 여름이라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물은 저~ 멀리 보일 뿐입니다. 성당 이름은 Ermita de la Virgen del Castillo는 관람이 불가능한 듯합니다.

구글 지도를 보니 이 근처에는 여러 곳의 성, 성당 등의 유적이 흩어져 있고 고인돌도 있는 듯합니다.

Ermita de la Virgen del Castillo
저수지로 표기된 이곳은 현재는 물이 없고 너른 초원에 소들이 방목되고 있습니다.
독일의 그 문제적 꼬맹이와 인솔자
고속도로 옆으로 이어지는 순례길
짚더미 인가 싶었는데 건물의 잔해
은의 길 표시

밀리아리오 형태의 은의 길 표시석 근처에 무너져 내리고 있는 는 성 유적이 있는데 이름은 'Castillo de Castrotorafe 까스뜨로또라페의 성'이고 12세기 경에 지어졌다고 하는데 그 오래된 역사성이 있음에도 복원을 하지는 않는 듯합니다. 무려 1천 년이나 된 성입니다.

Castillo de Castrotorafe
독일에서 온 순례자가 고독을 즐기며 걷고 있습니다.
첫 번째 중간 마을 Fontenillas de Castro
Iglesia de la Inmaculada Concepción

첫 번째 중간 마을 'Fontenillas de Castro 폰떼니야스 데 까스뜨로'에는 바르가 있긴 기대했지만 잠시 쉬어가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마을 중앙 공터에 독일 순례자가 쉬고 있는데 이번 순례로 10kg쯤 빠지기를 기대한다고.

순례길에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국적은 스페인 다음으로는 독일인 듯합니다.
직선과
곡선과
야트막한 초원 언덕과
경작의 종류와 시기를 달리하는 농경지를 오랫동안 걷습니다.
이번 은의 길 중 가장 많은 순례자가 앞에 보입니다. 무려 4명.

오늘의 목적지인 그란하 데 모레루엘라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곳에서 은의 길은 사나브레스 길과 아스또르가 방향의 은의 길로 나뉘게 됩니다.

완벽한 순례길의 도착마을 풍경. 길과 순례자 그리고 마을이 함께 보이는 풍경
마을 입구의 최신 표시석. 이 형태의 표시석은 은의 길에서만 보였습니다.
성당, 바르, 공립 알베르게, 마트 등이 갖춰진 마을입니다.

Albergue de Granja de Moreruela는 마을 입구 큰길 오른쪽 바르(Bar Tele-Club)에서 접수받습니다.

알베르게 옆에 마을 성당이 있는데 원래 있던 성당을 개축한 듯합니다.

성당(Parroquia de San Juan Evangelista) 왼쪽이 알베르게

뜨신 물이 안 나와 찬물로 발만 닦았는데 한 참 뒤에 기름차가 오더니 시끄럽게 주유하곤 뜨거운 물이 나옵니다. 세수만 했다가 더운물 나오는 것을 확인하고 샤워와 빨래를 합니다. 알베르게에 순례자가 10여 명이 넘게 모였습니다. 은의 길 시작한 이래로 가장 많은 순례자들과 함께 하고 있는데 순례자가 많으니 알베르게는 시끌벅적하지만 그게 다 좋은 건 아닌 듯합니다.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만날 수 있어 오늘도 순례자는 작은 행복을 느낍니다.

아름다운 석양.
정망 그림 같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풍경입니다.



■ Via del la Plata 은의 길 23일 차

Granja de Moreruela ~ Tabara

그란하 데 모레루엘라 ~ 따바라

운행거리 : 27km


길이 점점 힘들다고 느끼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 일까요? 길 자체의 난이도가 높은 건 결코 아닌데 말입니다. 아마도 피로가 누적된 것이 제일 큰 영향일까 생각해 보지만, 북쪽길의 시작과 끝도 계속 힘들었던걸 생각하면 그건 아닌듯하고, 그냥 몸뚱이 관리를 그동안 잘 못해서이지 싶습니다. 발가락 끝단이 저릿저릿하면서 감각이 무뎌지는 것 외에 장거리 걷기로 인해 발생한 문제가 특별히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매일 힘듭니다. 시간은 많으니 무리할 필요는 없겠지 하는 생각으로 걷습니다.

요 며칠 7명 정도의 외국인 순례자와 같은 알베르게에서 머물고 있는데 다들 추워서 괴로운 모양입니다. 이 정도 추위에도 힘들어하다니. 난 걷기를 끝내면 반바지에 초경량 패딩조끼에 플리스 자켓만 입고 지냅니다. 당연히 세탁은 그날 입은 속옷과 긴팔 하나만 빨고 양말은 이틀에 한 번만. 순모 함량이 매우 높은 두꺼운 양말은 물집을 만들지 않는데 많은 공을 세우는 듯합니다. 통기성과 쿠션 효과가 좋은 점 외에도 냄새가 잘 나지 않는 장점이 있습니다. 스페인 순례길 같은 장거리 도보에 꼭 추천합니다. 쿨맥스니 하는 기능성 양말들보다 확실히 좋은 것 같다는 게 순례길을 걸으며 확립된 생각입니다.


은의 길도 이제 70% 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지난주 이태원에서 일어난 참사를 이곳 스페인에서 접했는데, 분노가 미친 듯이 솟구쳐 오릅니다. 걸으면서 유튜브를 듣는데 참담한 마음을 거둘 수 없습니다. 국가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듯한 현 정권의 태도는 사이코패스를 보는 듯합니다. 뻔뻔한 색히들, 악마 같은 색히들... 공감이라는 감정을 갖지 못하는 사이코패스 정권입니다.


사나브레스 길과 프랑스 길 방향으로 나뉘는 지역이라 처음부터 길을 잘못 찾아 아스토르가 방향으로 접어들었습니다. 10여분 되돌아오는데, 동이 틉니다. 아름답습니다.

동트는 풍경
해가 올라오며 다시 시작된 하루를 격려합니다.
이제 사나브레스 길로 접어듭니다.
풍경이 크게 바뀌지 않은 채로 이어집니다.
방향을 틀어 서북쪽으로 향해 걷다 보니 그림자는 정면을 바라봅니다.
나무가 별로 없는 환경이었는데 키작은 올리브 나무 숲으로 바뀝니다.
갑자기 낮은 나무 숲 사이로 계곡이 나타납니다.

7km쯤 걸었는데 갑자기 멋진 협곡 사이로 흐르는 강이 나타납니다. 이 강의 이름은 esla 에슬라, 다리의 이름은 Puente Quintos 라고 적혀있다. 1/5과 무슨 관계의 다리인지 알 수 없습니다. 혹시 다섯 번째의 다리라는 뜻일지도... 검색해 보니 스페인에서 'Quinto'는 군대에 징집된 청년들을 부르는 명칭이었다고 합니다. 과거에는 제비 뽑기로 5명 중 1명을 군대에 보냈던 관습에서 유래했다는데 제비 뽑기로 군대를 가다니 참 재밌습니다. 또한, 라틴어 Quintus에서 유래하여 로마 도로의 '다섯 번째 이정표(Milestone)'가 있던 지점을 뜻하기도 한답니다.

아름다운 에슬라 강
Puente Quintos
강의 수면은 물결이 없어 거울 같습니다.
길은 다리 끝에서 왼쪽 바위지대로 이어집니다.
바닥의 노란 화살표가 거친 길로 안내합니다. 개인 사냥터라는 간판이 보입니다.

굳이 이런 곳을 통과하도록 만들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름 걷기에 빠르고 좋은 길이라서 이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려다 그건 좀 아닌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왜 이런 길을 통과하게 했는지... 고생 좀 해보라 이건가?

언덕 위로 올라오니 다시 평평한 길로 이어집니다.
강 절벽 중턱의 험한 길을 오르자 강의 상류 방향으로 낚시꾼이 있는 풍경이 참 멋집니다.

다시 키작은 도토리나무들이 심겨 있는 길을 따라 걷는데 총소리가 연신 들립니다. 약간 불안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혹시 눈먼 총알이 날아오는 건 아닌가 싶어서. 이런 곳은 대부분 '개인 사냥터'라는 간판이 붙어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냥터를 통과하는 순례길이라니.

갑자기 나타나 평원을 가로지르는 야생 사슴 떼
자연이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장면입니다.
멀리 마을이 보이는데 아마 저곳을 거쳐 갈 듯합니다.
와우! 진짜 멀어 보이는 직선 길입니다.
순례자인지 동네 사람인지 모를 사람을 오늘 처음 만나 반갑습니다. 길 끝은 중간 마을로 이어집니다.

손에 잡힐 듯 보인 이 마을의 이름은 'Faramontano de Tábara'라고 합니다. 도착까지는 꽤 오래 걸어야 했습니다. 마을 입구에 모사라베,사나브레스 길을 알리는 표지석이 우뚝하니 삐뚤 하게 서 있습니다. 은의 길 본선은 끝나고 여기서부터는 모사라베 , 사나브레스 길의 시작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은의 길과 모사라베 길, 사나브레스 길을 을 합해 통칭으로 은의 길이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모사라베 길과 사나브레스 길이 이어짐을 알려줍니다. 모사라베 길은 이베리아 남동쪽 끝인 알메리아에서 메리다까지 이어지는 길입니다.
와인 등의 저장고로 쓰였을 토굴들.

마침 문을 연 바르가 있어 자리를 잡고 메누 델 디아를 주문했습니다. 잘 먹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간단하게 먹지 않고 정식을 시켰습니다. 맥주를 먼저 한잔 마시고 식전빵과 첫 번째 접시로 콩요리, 두 번째 접시로 로모와 감자, 피망튀김을 받았고 토마토처럼 생긴 고추(?) 절임을 받았는데 새콤하면서 매운맛이 일품이라 느끼함을 바로 잡아줍니다. 이런 건 처음 먹어 봅니다. 맥주와 후식까지 11유로. 가격이 참 좋습니다.

마을에는 제법 큰 바르가 있어 메누 델 디아를 시켜 먹었습니다. 요리에 피망을 많이 활용하는 듯 합니다.

이제 얼마 안 남은 따바라를 향해 걷는데 날씨가 무척이나 좋습니다. 최근 부슬비를 많이 만났는데 오늘은 하루 종일 좋은 날씨입니다. 걷기에 최적입니다.

오늘의 목적지 따바라 방

따바라에 도착! 마을 중심에 'Iglesia de Nuestra Señora de la Asunción'이라는 이름의 성당 박물관이 있는데 관람은 못했습니다. 건물의 종탑 양식이 독특한데 이곳 따바라에서 유서 깊은 장소라고 합니다. 비슷한 종탑의 형태를 가진 성당을 '사아군 Sahagun'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Parroquial de Santa María

마을이 제법 커서 두 개의 성당을 만날 수 있었는데 'Parroquia Ntra. Sra. de la Asunción'이란 이름의 이 성당은 16세기 이 지역 귀족의 개인적인 궁전의 일부로 개인적인 예배당으로 쓰였는데, 후대에 교구에 기증되어졌다고 합니다.

Parroquia Ntra. Sra. de la Asunción

마을의 끝에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는 'Albergue de Peregrinos de Tábara'에 도착. 이곳의 순례객이 머무는 방은 개축되어 매우 깨끗했습니다. 모든 침대는 1층 침대로 구성되어 있었고 샤워장 또한 매우 쾌적합니다. 다만 저녁 식사는 맛이 별로 없어 조금 먹다 말았는데 오스삐딸레로가 직접 담근 술도 맛보게 해 주었습니다.

알베르게 전경
어딘가 통화 중인 빅터
알베르게 내부

은의 길 23일 차도 아름다운 길을 걸으며 행복하게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