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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뚱 Apr 28. 2023

88일 2060km 스페인 도보 순례길
북쪽길 31일차

Camino del Norte 823km Day-31

Parga(A Pobra de Parga) 빠르가(아 뽀브라 데 빠르가) ~ Sobrado 소브라도 : 32km, 획득고도 648m

북쪽길 31일차 램블러 기록

블루투스 키보드의 자판 여러개가 먹지 않는다. 많지도 않은 내용을 정리하는데도 시간이 걸렸는데, 이젠 자판 없이 스마트폰으로 직접 입력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런... 

오늘도 30km 내외로 걸어야 해서 7시 좀 넘어 출발. 

이른 아침에 본 Parga Natura Alojamiento.

어제 힘들게 올라온 언덕을 거꾸로 내려간다. 차도까지 내려가서 길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까미노 화살표를 찾지 못하고 강 오른쪽에서 발견한 트래킹 길표시를 따라 다시 강변을 걷는다. 이것도 잘못된 선택이었다. ㅠㅠ 역시 돌아가는 길이었다. 나보다 늦게 출발한 젊은 순례자들이 내앞에 나타난건 그들은 제대로 까미노 화살표를 찾아 걸었기 때문일건데... 나는 왜 찾지 못한 것일까?

어쨌든 아름다운 아침의 빠르가 강변을 힘들고 상쾌하게 걷는다. 한시간쯤 걸었을까? 제대로 가는 방향의 길을 찾아 강변을 빠져나와 다리를 건너 까미노 화살표를 찾아 걷는데 마음이 편해진다.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언제봐도 좋은 길이다. 

버섯 가족이 줄줄이... 버섯이 자라기에 최적인 습도인가? 중간에 간단히 요기를 하면서 쉬어간다. 

8km 넘게 걷다 오픈한 바르를 하나 만났다. 콜라 한병과 담배 한대로 잠시 쉬어간다. 'Taberna da Modia 따베르나 다 모디아' taberna는 선술집,주점,바의 의미를 가진다.

Taberna da Modia

진짜 가끔 만나는 바르는 순례자의 가장 중요한 휴식처이자 영양 공급소이자 다른 순례자를 만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바르에서 살 순 없으니 다시 길을 걷는다. 

하비에르는 나보다 늦게 출발하지만 항상 날 앞서간다. 

그림같은 마을과 사람대신 마을 입구를 지키는 커다란 개만이 내 눈을 맞춰준다. 

언덕중간에 있는 마을을 지나 풍력발전기 늘어선 능선을 넘어서 아스팔트와 흙길을 번갈아 걷는다. 

'아 꼬루냐'주(도)  표지판을 만난다. 아 꼬루냐는 또하나의 땅끝이라고 알려진 헤라클레스 등대가 있는 곳이고, 글로벌 패션 브랜드 'ZARA사라'의 본사가 있는 곳이고 영국길의 시작점 중의 한군데인 곳이다. 이 곳 북쪽길에서 '아 꼬루냐'까지 직선 거리로는 35km 정도 떨어져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최종 목적지까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음을 체감할 수 있다. 

초원 뒤로 펼쳐진 유칼립투스 나무들

차도 양쪽으로 유칼립투스와 옥수수가 심어진 긴 차도를 한동안 걷는다.  

'Paraños 빠라뇨스' 라는 작고 깨끗한 마을을 지나는데 바닥에 떨어진 밤을 몇알 주워 바지 주머니에 넣고 한개씩 까먹었는데 먹을만 하다. 

아스 크루세스 넘어가는 언덕에서 뒤를 돌아보니 멀리 지나온 길 양옆으로 풍력발전소가 늘어선 능선과 바로 지나온 마을이 아름답다.

크진 않지만 레스토랑이 있는 'As Cruces 아스 크루쎄쓰'에서 잠시 쉬어간다. 중심 로터리에 자리잡은 'Meson Manolo 메쏜 마놀로'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에 들어가 식사를 할까 했는데, 아직 밥먹을 수 있는 시간이 아닌가 보다, 말이 안통하는 외국인이라 그런지 딱히 친절하지도 않고 해서 콜라만 한병 야외 테이블에서 마시는데 통신회사 차량같은 밴에서 젊은 친구들이 내리더니 맥주를 마신다. 맥주 정도는 마시고 운전해도 되는 분위기인가 보다. ㅋ

Capela de San Roque

'Meson Manolo' 왼쪽 골목으로 들어가 조금 가면 표시석이 두개가 나온다. 소브라도 방향의 표시판이 하나 별도로 있고 그쪽 방향을 가르키는 표시석에 남은 거리가 오른쪽 직진 방향의 표시석에 남은 거리보다 길어 무심코 직진 방향으로 걸었다. 아... 집중력,판단력이 어제 오늘 참 엉망이다. 

길을 걷다보니 뭔가 이상하다. 까미노 화살표가 나오기는 하는데 지나는 순례자가 하나도 없다. 뭐 늘 순례자 보기가 어렵긴 하지만. 어쨌든 mapy.cz를 열어 지도를 확인하니 이 길은 소브라도로 진행하는 길이 아니라 소브라도 지나 Boimil 이라는 마을고 가는 일종의 지름길 같은 길이다. 젠장. 하지만 보이밀 방향의 알베르게는 이지점에서 20km 정도 가야하기에 'A Torre' 마을까지 가서 다시 소브라도 방향으로 좌회전해가는 길을 택했다. '아스 크루세스'에서 4.7km 거리의 길을 10km 넘게 돌아서 간다. 젠장... ㅠㅠ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멘탈이 좀 흔들렸지만 어제 오늘 걷기 컨디션이 이상하게 좋았다. 때문에 오르막에서도 속도를 늦추지 않고 걸을 수 있어 왠지 강해진 느낌이 들었는데 ... 그래도 잘 걸었다. 

갑자기 집들 사이로 멋진 소브라도 수도원의 성당 종탑이 눈에 들어왔다. 와!

스마트폰의 10배 줌을 사용해서 찍은 'Mosteiro de Santa María de Sobrado dos Monxes'의 성당 정면부

마을 골목 교차로에선 돌 십자상에 피에타(돌아가신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가 조각되어 있었는데 작은 성모의 얼굴에서 슬픔이 보인건 그냥 착각이겠지.

차도를 따라 이루어진 마을의 중심부를 지나 수도원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아래 사진처럼 건물 밑으로 만든 터널길을 통과해야 한다. 수도원이나 성당의 접근 방식이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다. 

수도원 들어가는 입구
입구를 통과한 후 반대쪽 방향에서 본 모습

입구를 통과하면 상당한 규모를 가진 성당의 모습이 멋지다. 

알베르게 입구에서 신부님 한분과 도우미 한분이 친절하게 접수를 받는다. 침대를 배정 받고 수도원의 중정을 지나 방에 도착하니 개보수(리모델링)한지 얼마 안된듯 깨끗하고 깔끔하고 쾌적했다. 마음이 좋아진다.

아름다운 수도원 성당안에 만들어진 알베르게인데 편리하기까지 하다니.

수도원의 중정을 따라 순례자들이 하루 잠을 청할 수 있는 알베르게가 있다.

깨끗한 샤워실에서 씻고 빨래하고 마트가서 먹을 거리와 발바닥 통증완화를 위한 볼따렌 뽀르떼를 사서 돌아왔다. 그냥 레스토랑 들어가서 사먹을까 하다가, 이곳의 부엌 시설이 너무 좋아 간단히 먹기로 한다. 문어 통조림(문어인지 오징어인지?), 컵라면,바게트,살치촌,요쿠르트,콜라,맥주 ... 진수 성찬이다. 이태리 할배4인 조 +1인 + 스페인 처자 2명의 무리들은 다른 무리들과 합세해 주방을 점령하고 요리 삼매경에 빠졌다. ㅋ

이태리 할배 팀이 다른 팀과 함께 저녁 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 뭐 다양하게 이것 저것 만든다. 

식당에서 앞뜰이라고 해야 하나, 뒷뜰이라고 해야하나 암튼 빨래를 말리는 곳으로 나왔는데 오래된 수도원 건물과 담쟁이, 빨래들, 그리고 쉬고 있는 순례자를 보니 사진을 안찍을 수 없었다. 큰 카메라를 가져왔어야 했는데... 아쉽다. 

간단히 성당 관람을 하고 나오니 어둠이 내린다. 중정의 따뜻한 색의 불빛과 성당의 종탑 주변의 차가운 푸른색 하늘이 아름다웠다. 

매우 아름답고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장소에서 하루 묵어가는 행운은 순례자이기에 가능하다. 



[오늘의 지출]

콜라 2번 3.8유로

장보기 11유로, 저녁 사먹는게 쌀뻔...

알베르게 8유로

진통연고 10유로

32유로 사용. 선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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