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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뚱 Aug 17. 2023

88일 2060km 스페인
도보 순례길 은의길 29일차

사진으로 적는 순례기 : 오 뻬레이로 ~ 라싸

*Via del la Plata 은의 길 29일 차 

  O Pereiro ~ Laza

 오 뻬레이로 ~ 라싸

 운행거리 : 44km, 운행시간 : 12시간 30분, 획득고도 756m, 최고점 1,199m

29일 차.

어제 계획했던 마을에서 한 스텝 더 진행한 바람에 오늘은 44km 정도 이동할 계획으로 새벽 일찍 출발해 열심히 걸었다. 피곤하면 중간 마을에 머물 생각을 하면서...

동트기 전 이곳의 하늘은 매우 어둡고 따라서 길도 깜깜해서 랜턴이 없이 걷기 어렵다. 게다가 차도를 따라 걷는 길이라서 차량통행이 별로 없긴 하지만 갑자기 나타나는 차가 더 위험하기도 하고


오 뻬레이로의 동트는 풍경. 파란 하늘이 시렵게 느껴진다.

어제 묵었던 호텔을 나와 도로를 따라 완전히 어두운 길을 따라 걷는다. 동이 트기 시작할 무렵 길에서 좀 떨어진 마을이 보이고 사무 사이로 아름다운 성당 종탑이 보인다.  


Igrexa de Santa Maria de O Canizo
오 까니소 마을

약 8km를 이동해 구디냐에 도착했다. 9시가 좀 못되었는데 식료품 점이 아직 문열지 않아 바르에서 간단히 케이크 1조각과 까페 콘 레체를 마시고 콜라 1캔과 케이크 한 조각을 포장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구디냐 도심 입구의 모습. 오스카 바르에서 커피 한잔과 까페 꼰 레체를 마셨다.  

요기가 필요해 도시 입구의 오스카라는 이름의 바르에 들러 또르띠야 데 빠따따스와 까페 꼰 레체를 한잔 마신다. 마을 슈퍼마켓이 오픈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지도를 찾아 같지만 아직 열지 않았다. 어떡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다시 까페에 들어가 일단 파운드 케이크처럼 생긴 케이크 한 조각과 콜라를 시켜 먹고, 똑같은 구성으로 포장을 했다. 마을을 빠져나가는 분기점 근처에 작은 가게가 하나 열려 있어 과자와 음료수를 간단하게 구입하고 나니 안심이 된다. 

Igrexa de San Pedro de A Gudiña

도로 길에서 빠져나와 주택사이로 난 길을 걷는데 낯선 표시석이 나타난다. 한쪽은 베른을 한쪽은 라싸를 가리킨다. 베른 쪽 길은 평이한 대신 길이가 길고, 라싸 쪽은 길이가 짧은 대산 높은 지역을 넘어가야 한다. 

하루 짧은 거리의 라싸 방향으로 진행한다. 원래 계획도 그랬으니.

마을을 빠져나가는데 귀여운 강쥐와 냥이가 배웅을 한다.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며 경치는 완전히 열려 시원하고 아름답지만 지루하게 긴 오르막을 3km 넘게 올라간다. 

길의 정상 부분 위로 뜬 달이 인상적이다. 


달로 이어지는 길처럼 보이지 않나? 

해발고도 1천 미터가 넘는 지역이고 막힌 곳 없이 시원하게 뚫린 길은 당연히 매우 풍광이 좋다. 

대문 기둥 위 양쪽에 하나씩 놓인 여드름난 호박.

계곡사이를 채운 안개구름이 흐르는 강처럼 보이기도 한다. 

길은 계속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며 평균 고도를 높이고 있다. 

멀리 아래 계곡 쪽으로 큰, 매우 큰 encoro das portas라는 이름의 호수가 보인다. 

제법 커 보이는 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기차역이 있는 마을이긴 하지만 마을엔 식당등의 시설은 없었고 걷는 몇 시간 동안 지나가는 기차를 보지도 못했다. 

마을의 벤치에 앉아 신발과 양말을 벗어 말리며 간식으로 체력을 보충하고 기분 좋게 담배도 피워 문다.

우리나라 강원도 산간지방의 폐광이 있는 마을과 유사한 느낌을 가진 동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리되지 못한 여러 채의 집들이 있고 사람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멀쩡한 집에는 아마 노인들만 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장소엔 덩그러니 그네가 하나 설치되어 있다. Columpio de Vilariño de Conso라는 이름을 가졌는데, 유명한 장소는 아닌가 보다. 사람 한 명 볼 수 없었으니. 

Columpio de Vilariño de Conso

그냥 걷다가, 음악 들으며 걷다가, 노래 부르며 걷다가, 유튜브 들어며 걷다가, 사진도 한 장씩 찍다가...

이런 여유를 언제 다시 가질 수 있을까? 생각도 하면서 주어진 길의 시간을 죄책감 없이 기분 좋게 써버리는 이런 기분 참 오랜만이다. 

까마득히 내려다 보이는 마을

한참을 걸어 내리막이 시작되는 곳에 이르자 알베르게가 있는 마을 Campobecerros가 보인다.

마을로 이어지는 길은 엄청 가파른 내리막이었기 때문에 무릎이 고장 나지 않도록 천천히 내려간다.

기차역 주변으로 만들어진 마을. 마을이 만들어지고 난 후 기차길을 만들었겠지?

마을에서 좀 떨어진 곳에 예수상이 서있는 Igrexa da Asunción de Campobecerros.

마을로 들어가는 길에서 알베르게를 만났지만 이 마을에서는 점심만 해결하기로 했다. 

마을 중심으로 들어오니 음식냄새가 나고 음식냄새가 나는 곳에는 바르가 문을 열었다. 냉큼 들어가 메누 델디아를 시켜본다. 다른 손님들은 닭요리와 갈비구이 비슷한 음식을 먹고 있었다. 나도 갈비구이처럼 생긴 음식을 먹고 싶었는데 정작 주문해서 받아 든 음식은 뽀요(치킨)이었다. 살짝 실망 감이 들려고 했지만 맛을 보니 실망할 이유는 없었다. 맛나게 촵촵! 어제에 이어 오늘도 와인 한 병을 거의 다 마신다. 

믹스타 살라드

마을을 빠져나가는데 못되게 생긴 고양이가 눈을 흘려준다. 

마을을 빠져나와 뒤돌아 보니 어느새 눈에 잘 안 들어올 정도로 멀어지고 있다.  

30분 정도 걸었을까 다시 마을이 하나 나타난다. 마을이름은 Portocamba 뽀르또깜바인데, 가구수는 적고 오래되어 방치되고 있는 집들이 여럿인 마을이다. 

오래되어 보이는 아름다운 성당이 떡 하니 서있는데 '뽀르또깜바의 성 미겔 성당 Igrexa de San Miguel de Portocamba'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Igrexa,iglesia,parroquia,catedral 등의 표현은 모두 성당을 뜻한다. 이 외에도 capilla,templo, ermita 등도 쓰이는 것 같다.  

Igrexa de San Miguel de Portocamba

외롭지 않게 쎄르데델로 마을 입간판과 커다란 나무십자가가 나타나 주시고. 

계속 높은 길을 따라 걷는다. 지나가는 차는 딱 두배 봤다. 

계곡 건너편에 기차가 다니는 높은 다리가 보인다. 

이제 10시간도 넘게 걸을 시점이고 35km를 넘기는 시점이라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 

가을이다. 

오늘의 목적지인 라싸에 도착하기 전 마지막 마을인 Punto de Apoio o Peregrino Ultreia As Eiras에 도착했다. 몇 집 없는 마을 중간에 무인 매점이 있어 0.5유로 넣고 귤이랑 사과를 집어서 허기를 달래고 당도 채워 본다. 고마운 무인 매점이다. 

어둠이 완전히 내려, 랜턴을 켜고 앞을 비추며 걷는데 뜬금없이 저수 시설이 있다. 산길 위의 뜬금없는 위치이긴 하지만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시설이다.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가축에게 물을 먹이거나 농사용으로 사용하거나 농부들이 쉴 수 있도록 만든 이런 저수 시설은 프랑스 길에선 더 자주 볼 수 있었다. 

이제 빛은 완전히 사라지고 어둠이 지배하는 시간이다.

아직 4km 정도 남았다.

산길을 빠져나오자 반가운 불빛 켜진 마을로 진입했고 구글 지도를 참고해서 알베르게가 있는 마을의 반대편 끝으로 걸었다. 마을 중심부 공원에서 아직 놀고 있는 아이들 구경도 하며, 문을 연 마트가 있는지도 둘러보며 걸었다. 공동묘지가 있는 성당을 지나 드디어 알베르게 도착. 안에 순례자가 보이긴 하는데 문이 잠겨있어 들어갈 수가 없었다. 마침 순례자 한 명이 나와 나에게 접수처를 알려주기 위해 직접 접수처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리곤 식사를 하러 총총 눈에서 멀어졌다. 지나왔던 마을의 중앙 광장쯤 되는 곳에 소방서 같은 곳(알고 보니 laza 시청쯤 되는 곳)에서 8유로 내고 세요 받고 열쇠 받아서 다시 알베르게로 왔다. 알베르게 안으로 들어오니 이태리 청년 다비드와 독일 청년이 반갑게 인사한다. 내가 44km를 걸었다고 하니 미쳤다고 한다. ^^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속옷, 반팔, 양말을 빨아 혼자 자게 된 8인실의 라디에이터에 널었다. 가방 속에 잘 모셔둔 비상식량을 털어 먹으니 오늘 하루 매우 힘들었지만 아픈데 없이 무사히 도착했음에 안도했다.

 

라싸의 공립 알베르게

[오늘의 지출]

 아침 까페 5.5유로, 간식 2.5유로, 점심 10유로,알베르게 8유로. 26유로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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