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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뚱 Aug 18. 2023

88일 2060km 스페인
도보 순례길 은의길 30일차

사진으로 적는 순례기 : 라싸 ~ 순께이라 데 암비아

*Via del la Plata 은의 길 30일 차 

  Laza ~ Xunqueira de Ambía

 라싸 ~ 순께이라 데 암비아

 운행거리 : 34km, 운행시간 : 10시간 10분, 획득고도 784m, 최고점 1,017m

은의 길 30일 차, 램블러 기록

오늘은 순께리아 데 암비아라는 곳까지 걷는다. 지도상으로 33km쯤 되는 시골에서는 꽤 큰 동네인 듯하다. 공립 알베르게가 운영 중이고 마트와 식당들도 많아 오늘의 기착지로 결정했다. 어제 44km를 걸었으니 오늘은 더 무리하지 않는 것으로. 

애초에 일차별로 머물 장소를 계획하긴 했지만 걷다 보니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경우가 있다. 큰 틀에서 변하진 않고 전체일정에서 하루나 이틀정도의 차이가 발생할 뿐이다. 88일의 일정으로 이 길을 걷는 나에겐 큰 의미 없는 수치일 뿐이다.


7시쯤 알베르게를 나섰다. 어제 지나왔던 마을 중심의 약국과 시청사를 지나 큰 도로를 따라 안개 낀 스페인의 시골을 걷는다. 

안개가 자욱하고 주변이 모두 산림지대인 듯 보인다. 

한 시간쯤 걸어 첫 번째 마을에 도착했는데 작진 않지만 오픈한 바르나 빵집(빤데리아)은 없다. 2층 난간 위에 고양이가 있을 뿐이다. 

짜식 이뻐...

첫 번째 마을을 지나면서 길은 슬슬 오르막으로 변한다. 걸어온 방향을 돌아보니 동이 튼다. 

안개가 강물처럼 깔려 흐르는 듯 보이는 주변 경치는 매우 평온하고 아름답다. 

오르막이 계속되는 길에 Tamicelas라는 마을을 지난다. 마을에서 좀 떨어진 주택의 입구에 터널처럼 만들어진 키위 덩굴에 매달린 제법 큰 키위를 하나 스윽 따서 주머니에 넣는다. 

Igrexa de Tamicelas

마을을 빠져나오는 길도 가파른 경사다. 오르막이 계속 이어지는데 꽤나 힘들다. 잠시 앉아 쉬며 서리해 온(훔쳤다는 게 맞는 표현이겠지만)  키위 껍질을 이로 깎아 한입 베어무는데 딱딱하고 몹시 시다. 하! 괜히 가져왔다. 사이즈로 봐선 충분히 익었겠다 싶었는데. 지나온 방향의 경치가 아주 멋졌다. 강물처럼 흐르는 듯한 안개가 계속을 완전히 덮고 있는 모습이라니. 아침 일찍부터 걷는 순례자에게 주어진 특별한 경험일 것이다. 

와우... 땀을 뻘뻘 흘리며 숨 가쁘게 마지막 정상부에 도착하니 한숨 돌려진다. 다시 비교적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알베르게가 있을 것 같은 동네인 알베르게리아에 도착하니 은의 길에서 유명한 바르가 영업 중이다. 

순례자들이 적어 걸어 놓은 조개껍데기가 징그럽게 많이도 매달려 있다. 만국기와 함께.

이태리, 독일 등의 유럽 순례자들
알베르게리아의 Capilla de la Virgen del Carmen
스페인 갈리시아 시골식 베란다? 테라스?

알베르게리아를 지나서도 오르막이 이어지고 있다. 나무 십자가를 지나자 갑자기 시야가 확 터진다. 

이젠 내리막이다. 그것도 제법 가파르게 내려간다. 내리막도 싫다. 힘들진 않지만 무릎에 무리가 많이 간다. 

내리막의 끝에서 만난 마을의 이름은 Vilar de Barrio 빌라르 데 바리오. 이곳에서 유심을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구글지도에는 있는 렙솔 주유소가 실제 하지 않고 있었다. 해서 공원 옆 카페에서 하몽 보까디요와 꼬까 꼴라로 요기를 했다. 다비드와 몇몇 순례자들도 시간차를 두고 도착해 한 테이블에 앉아 각자 요기를 했다.

이어지는 시골길. 아직 남은 거리가 꽤 길다.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 마을을 지나니, 갑자기 네모 반듯하게 구획된 농지 사잇길을 걷는데, 그 길이가 장난 없다. 땡볕에 지루하고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지루하기 그지없는 반듯한 길은 4km가 넘게 이어졌다. 

발바닥도 아프고 좀 지치길래, 길 옆 또랑 위에 만들어진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서 신발, 양말 다 벗고 누워서 담배도 한대 피우고 쉬어 간다. 20분 정도 쉰 것 같은데 양말이 뽀송뽀송하니 기분이 좋다. 

길고 지루했던 직선의 길들을 지나 다시 숲길로 접어든다. 이제 6km도 남지 않았는데 거리가 줄어들지 않는 느낌이다. 힘드네...

작은 마을들이 계속 이어져 지루함은 확 줄었지만, 짧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사람 피곤하게 한다. 

적의를 가지고 나를 바라보는 고양이 녀석. 좀 고운 눈으로 바라보면 안 되겠니?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 사이로 보라색의 꽃이 피어 있는데, 북쪽길에서도 종종 보았던 꽃이다. 꽃이름은 잘 모르겠는데, 군데군데 군락을 지어 핀 꽃들이 꽤 우아한 아름다움이 있다. 

오늘 길의 마지막 오르막이길 바라며 힘을 짜내 걷는다. 

등산을 하는 기분이다. 힘든 정도와 경치 모두 말이다. 

길이 맞는지 모를 내리막을 다시 내려간다.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빛이 많이 들지 않는 곳에서 다시 보랏빛 꽃을 만났다. 들고 온 카메라로는 더 예쁘게 찍을 수 없었다는 것은 핑계고 힘들어서 쪼그려 앉기 싫어서 대강 찍다 보니 사진이 이렇다. 이럴걸 뭐 하려 비싼 돈 주고 큰 카메라를 사 들고 왔는지.

숲길이 매우 아름답다.

작은 마을을 다시 지나는데 양들과 돌담과 그위로 비스듬히 떨어지는 오후의 빛이 너무 예쁘다. 

내리막 숲길을 지나자 오늘의 목적 마을인 순께리아 데 암비아의 초입에 있는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마을이 전부 보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좀 높은 위치라 잘 내려다 보인다. 

관리인 없는 알베르게에 들어가 침대를 하나 차지하고 있으니, 여태까지 만나지 못했던 스페인 부부 순례자 한 팀과 노인 한 명, 이렇게 네 명이 알베르게에 머물게 되었다. 이태리 청년 다비드와 독일 청년은 아마도 마을 중심에 있는 오스뗄에 머무는 것인지 볼 수 없었다. 

8시 넘어 관리인이 와서 접수하고, 먹을 것이 똑 떨어져 저녁을 먹으러 마을 중심부로 내려갔다. 해가 완전히 져서 랜턴을 켜고 걷는데 너무 깜깜하다. 

순께리아 데 암비아의 공립 알베르게. 외딴곳에 있어 마을 중심까지는 5백 미터 정도 걸어가야 한다. 

마을은 제법 커서 식당도 여러 개 있고 마트도 있다. 밥 먹기 전에 마트에 들러 간단한 간식거리를 사고 괜찮아 보이는 바르로 들어가 메누 델 디아로 늦은 저녁을 먹었다. 이 시간에 식당에서 밥 사먹는 일은 별로 없었는데. 음식은 맛있었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까지 싹싹 긁어먹고 알베르게로 다시 돌아와 무사히 30일 차를 마무리했다. 



첫 간식 알베르게리아 카페 3.5

점심 5.5 기호식품 5(기호 식품은 담배를 말한다. 스페인 출발 전까지는 담배는 가끔 피거나 안 피거나 했는데 이 길을 걸으면서 담배는 매우 소중한 기호식품이 되었다. 다만 가격이 비싸 한 갑으로 나흘을 피우는 것이 목표)

알베르게 8

저녁 및 장보기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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