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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뚱 Aug 15. 2023

88일 2060km 스페인
도보 순례길 은의길 28일차

사진으로 적는 순례기 : 레께호 ~ 오 뻬레이로

*Via del la Plata 은의 길 28일 차 

  Requejo ~ O Pereiro

 레께호 ~ 오 뻬레이로

 운행거리 : 33km, 운행시간 : 8시간 50분, 획득고도 942m, 최고점 1,430m

위의 지도를 보면 높은 산을 두 개 넘어가는 코스다. 실지로 산 정상을 넘어가는 것은 아니고 제법 높은 고개 길을 넘는데 획득고도가 942m나 됐고, 최고점은 1,430m였으니 은의 길에선 난이도가 높은 코스였다. 

애초 계획은 17km만 가서 숙박하려고 했으나 어쩌다 보니 그 두 배의 길을 걷게 되었다. 


짧은 거리를 걸을 것이라 생각하고 느지막한 8시쯤 출발했다. 알베르게를 나와 큰길로 나오니 어제 지나왔던 방향에서 해가 뜨려는 듯 붉은 기운이 잠시 보였다 사라진다. 

큰 도로 따라가도 만나는 길이지만 굳이 마을 중심으로 내려가 걷기 시작한다. 물이 많은 지역인지 물 관련 시설이 눈에 띈다. 

귀여운 넝쿨 담을 꾸민 집주인의 여유와 예술적 감성을 칭찬해! 마을은 조용하고 깨끗하다. 

마을 날머리쯤 순례길을 걷는 순례자를 위한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조개는 산티아고 데 꼼뽀스뗄라 가는 순례길 자체를 상징하고, 등산화는 고되게 걷는 순례자를 상징한다. 

가을이 점점 깊어져 간다. 

어제저녁먹으러 왔던 식당은 이런 모습이었군. ^^

마을 끝 주택 앞의 점잖고 멋진 흰색 래브라도(맞나?)가 쿨하게 눈인사해준다. 

길은 도로를 따라 걷는 길로 안내하기도 숲으로 안내하기도 하지만, 계속 오르막이라 그냥 도로를 따라 걷기로 한다. 경치 보기는 더 좋다. 

물이 참 흔하고 많다. 이렇게 하천이 되어버린 길을 건너기도 해야 한다. 

짙은 갈색으로 변해가는 커다란 밤나무와 땅에 떨어진 밤송이들이 순례길을 예쁘게 장식하고 있어 걷는 이의 눈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9km쯤 걷고 나서야 첫 번째 마을에 도착한다. 바른에 들러 가볍게 콜라 대신 따뜻한 커피 한잔 호로록.

날이 좋으면 휴식을 취하기 좋은 Iglesia de Santa María de la Asunción과 공원.


빠도르 넬로 마을을 지나면 계속 내리막이다. 올라왔던 것만큼 다시 내려간다. 아... 이럼 곤란한데.

비가 오락가락해, 카메라를 비닐봉지에 꽁꽁 싸매고 걷는다. 굉장히 귀찮다. 

숲길을 따라 내리막성의 길을 4km쯤 걷자 작은 마을인듯한 아쎄이로 마을이다. 

Ermita de Santa Ana
샘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제법 자란 새끼냥 형제들.

아쎄이로 마을을 지나 다시 숲길을 따라 걷는다. 오래된 집들, 아마도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듯 보이는 곳이 시골집이 정겹다. 이곳도 예전엔 난로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따뜻한 집들이 었겠지. 

다시 한시감 쯤 걷자 오늘의 목적지인 Lubián에 도착. 마을 초입에 알베르게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아직 오픈 전이라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마을 중심으로 이동한다. 마을안도 오르막과 내리막이 섞여있는 산간 마을인데, 꽤 많은 집들과 예쁜 성당도 있다. 

루비안의 공립 알베르게

마을 중심에 자리 잡은 Parroquia San Mamed, mártir가 아름답다. 

꽤 복잡한 동네 길을 지도와 비교해 보며 열심히 차도옆에 자리 잡은 하비 바르[Casa Rural Val dos Pigarros (Bar Javi)]에서 점심으로 메누 델디아를 주문해서 맛있게 먹는데 같이 나온 와인이 제법 맛이 좋았다. 그래서 거의 한 병을 다 비웠는데 술기운이 확 올라온다. 후식까지 먹고 다시 알베르게로 되돌아 가려진 너무 멀고 귀찮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다음 마을로 걷기로 한다. 

가파른 내리막 끝에는 꽤 큰 성당과 공원과 하천이 자리 잡고 있다. 

Ermita Santuario de la Tuiza라는 이름을 가진 뭔가 사연이 있을 것 같은 성당유적에서 잠시 쉬어 간다.

이제 길은 다시 오르막으로 바뀌었는데 길이 물 반 진창 반이다. 매우 성가신 길이 나타났는데, 길은 정상부까지 계속 상태가 좋지 않았다. 

지나온 루비안 마을 방향의 풍경

술기운을 빌어 그렇게 힘들이지 않고 올라가는 언덕길은 때때로 길표시가 애매한 갈림길에 고민하기도 한다. mapy.cz 앱은 이럴 때 요긴하다. 정말 꽤 길고 가파른 길이 4km가량 이어지는데 쉬지 않고 걷는다. 어쩌면 술기운 때문에 그래도 쉽게 올라오지 않았을까 싶다. 입에서 단내가 난다.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이제 반가운 갈리시아주의 표지석이 눈에 들어왔다. 갈리시아의 표지석은 매우 자주 있고 정확한 편이다. 그래서 안심된다고 할까? 정상에서 여유롭게 쉬며 담배도 두대 피워 재낀다. 

이젠 계속 내리막길이다. 오늘 계획에 없었던 숙소를 구글링 해서 간신히 찾았다. 본선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자리 잡은 식당 겸 호텔(오뗄)인 Cazador Restaurante Hotel을 가기로 했다. 인적 드문 작은 마을을 두 개쯤 지나는 길은 이제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시작을 8시에 한대다 33km 정도를 걸어야 해서 목적 마을인 오  뻬레이라에 도착하니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갈리시아의 길은 이렇게 물관리 시설이 잘되어 있어 걷기에 좋은 편이다. 

Capela do Santo Cristo

아 빌라베야(A Vilavella) 마을을 지나며 목장에 순한 눈을 한 소들과 이들에게 목초를 나르고 똥을 치우는 농장의 목부들을 만났다. 

뉘엿뉘엿 지는 해의 마지막 빛을 받은 이끼 깔린 바위 모습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Capela da Nosa Señora de Loreto

오 뻬레이오 마을에 도착하자 해가 완전히 져 버렸다. 랜턴을 찾아들고 마을에서 6백 미터쯤 떨어진 호텔을 찾아가는 길이 낯설지만 노을을 바라보니 또 아름답기도 하다.

꽤 길고 힘든 28일 차를 마치기 위해 찾은 호텔의 여 종업원과 소통하기 어려웠지만 예약은 하지 않았고 방 하나가 필요하다고 간신히 전달했다. 다행히 빈 방이 있어 열쇠를 받아 들고 방으로 올라왔는데, 트윈룸에 샤워실도 제법 깨끗한 방이다. 젖은 우의와 빤 양말 셔츠 등을 잘 널어놓고 9시에 시작하는 저녁식사를 하러 식당에 내려갔다. 빠에야와 쇠고기 감자 찜인지... 가 나왔다. 이미 빠에야에서 배가 불렀지만 가능하면 남기지 않으려고 고기를 열심히 먹으려 했다. 아... 뭔 고기가 이렇게까지 질길 필요가 있나 싶게 질긴 고기는 결국 다 먹지 못하고 반만 먹을 수밖에 없었다. 오른쪽 아래 어금니도 계속 상태가 안 좋아서 더 열심히 씹어 먹을 수는 없었다.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싹싹 퍼먹고 방으로 올라와 내일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려고 한다. 내일은 어쩌면 가장 많이 걸어야 하는 날이 될 수도 있으니.

12유로의 메누 델 디아. 그 값어치는 충분히 했다.

[오늘의 지출]

라떼 2번 3.6

점심 14

저녁 12

호텔 22

52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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