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뒷걸음질로 미래에 들어선다.
김연수 작가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는 책에서 내 마음을 사로잡은 한 문장이다. 당장 내일 일어날 일도 모르는 인간에게 미래는 수동적인 느낌이 강하다. 내가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지 않은 순간에도 누군가에 이끌려 가듯이 들어서게 된다.
뒷걸음질은 사전적인 의미로도 꽤나 부정적인데 본디보다 뒤지거나 뒤떨어진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2023년이 시작된 지 2개월이 지났다. 내 나이는 23년을 거꾸로 한 32세가 되었다. 삼십 년을 살면서 절반 가까이 남들이 부러워하는 회사가 인생에 종착점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퇴사를 한 뒤 시간이 그냥 흘러가는 대로, 미래가 오는 대로 보낸 것 같다. 과거의 내가 지금 내 모습을 마주한다면 본디보다 뒤지거나 뒤떨어져 보일지도 모르겠다.
이 시간들에서도 배움과 성장은 있었다. 프로 일벌러라 마냥 쉬지만은 않았고 작년 6월부터 8개월가량 코딩 강사를 했는데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사회생활이 하기 싫어서 프리랜서를 한 것인데 그 또한 작은 사회였다. 늘 그렇듯 좋은 사람들도 많았지만 닮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다. 나를 괴롭혔던 팀장에게서 내가 얻은 것은 이상한 사람에 대한 내성이었다. 아무리 이상한 사람을 만나도 크게 놀라거나 예전만큼 분노하지 않았다.
얼마 전 읽었던 글에서 분노는 두려움으로부터 기인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상상이 더 큰 두려움을 가져오고 이런 두려움은 더 큰 분노를 가져오게 된다는 말이었다. 그럴 땐 이기려고 기를 쓰기보다는 아예 패배를 경험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 같다.
메이저리그의 슈퍼스타인 크리스티 매슈슨이 한 말이다. 승리를 통해서는 작은 것을 배울 수 있지만, 패배로부터는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 내가 처절하게 패배했다고 생각한 회사생활에서 나는 모든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패배해 봤기에 알 수 있었던 것들이었다.
회사를 나온 뒤 새로운 것들에 거침없이 도전할 수 있었다. 코딩의 ‘코’자도 모르던 내가 아이들에게 코딩을 가르치고, 어릴 적 막연한 꿈이었던 글쓰기를 하고 내 나름대로의 결과물로 브런치북도 만들 수 있었다.
또 안정적인 직장인만 꿈꾸던 내가 창업을 생각하게 되었고 이 모든 일에 끝에는 ‘나’라는 모든 것을 지킬 수 있었다.
나를 해하는 사람들 때문에 삶을 끝냈다면 매일매일 선물처럼 찾아오는 일상을 절대로 마주하지 못했을 것이다.
뒷걸음질이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다. ‘황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는다 ‘라는 속담도 있듯이 뒷걸음질로 들어선 미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행운을 마주할 수도 있다. 마지못해 끌려 들어간 미래일지라도 나를 배우게 하고, 나에게 뜻하지 않은 기쁨을 줄 것이라 기대하게 된다.
삶에 완전히 패배했다는 것은 더이상 살아갈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제 다른 방향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 이토록 평범한 미래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