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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동그란 Mar 12. 2023

워라밸만 쫓는 게 아니라 워스트 라이프를 피하는 겁니다

전 국민 오디션이 된 현대차 생산직 채용과 역대 최저 공무원 경쟁률

 인생을 ‘산다는 것’은 live의 의미도 있지만 buy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잘 산다, 못 산다’의 기준도 구입능력으로 결정 되기 때문이다.


 삶을 살기(live) 위해서, 윤택한 삶을 사기(buy) 위해서도 직장은 필요한데, 직장을 고르는 가장 큰 가치로 최근 몇 년 새 급 부상한 것은 '워라밸'이다. WORK & LIFE BALANCE의 줄임말로 업무 강도가 높지 않고 복지가 괜찮은 회사들을 워라밸이 좋다고 말한다.


 통상적으로 공무원이나 공공기관이 워라밸이 좋고,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은 상대적으로 업무강도가 높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얼마 전 9급 공무원 경쟁률이 31년 만에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https://naver.me/Gd1jtkuO


 또 전 국민 오디션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폭발적인 경쟁률을 보이고 있는 곳은 현대자동차 생산직 채용이다.

강성노조가 있는 현대자동차는 정년도 보장되고 복지 수준이 높으니 업무강도가 아주 높은 대기업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채용시장의 분위기이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의 매력도가 떨어진 이유는 비단 낮은 연봉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세 가지 이유이다.


 첫째, 젊은 세대는 더 이상 나 자신을 회사와 동일시하지 않는다. 라이프 밸런스를 찾게 된 현상도 회사생활과 여가 생활을 분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했다. 출근 전, 혹은 퇴근 후 자기 계발을 하는 것도 회사에서의 승진을 위한 행위가 아니라 개인의 발전을 위한 경우가 많다. 또한 평균 연령의 상승으로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한 고민이 커졌기 때문에 회사가 인생에 전부가 될 수 없다.


 둘째, 낮은 연봉이라고 업무강도가 낮지 않다. 내가 경험했던, 또 주변에 공무원, 공공기관에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찡찡거리거나 못하겠다는 소리를 하지 않는 사람일수록 더 많은 일을 떠맡게 된다. 불평불만이 없거나 할 수 없는 상황인 막내들은 1.5명에서 2명의 몫을 해내고 그걸 피해 간 사람은 0.5명으로서의 존재감만 나타내면 된다. 때때로 0명의 역할을 하는 투명직원과 -1명의 존재감을 뽐내는 엑스맨도 있다. 여기서부터 이미 밸붕(밸런스 붕괴)이다.


 셋째, 나의 정년 보장은 저 또라이의 정년 보장이기도 하다. 공공기관이었던 전 직장의 남자 차장(승진한 지 얼마 안 된)의 퇴사를 마지막으로 나를 괴롭혔던 팀장의 당시 팀원이었던 젊은 직원 4명이 모두 퇴사했고, 내 후임으로 그 팀장 밑에서 일하게 된 주임은 병가를 쓰고 팀을 옮긴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문제를 일으켰을 때 있었던 팀의 팀장이다. 보통 사기업이라면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나가지만 공직사회의 정년 보장 덕분에 절이 싫은 무수한 중들이 떠나게 된다.





 구직자, 재직자들이 WORK & LIFE BALANCE만 쫓는 것이 아니다. 워스트 라이프를 피하는 것이다. 베스트는 아니어도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는 곳에서 최악의 삶을 보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1월부터 새벽 6시에 시작하는 수영을 다니고 있는데 수영이 끝난 뒤 샤워실에서 줄을 서야 할 정도로 '갓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갓생은 ‘갓’(God)과 ‘인생(生)’을 합친 합성어로, 부지런하고 생산적인 삶 또는 일상에서 소소한 성취감을 얻는 일을 규칙적으로 하는 것을 뜻하는 신조어이다.


 퇴사 후 새롭게 시작한 일들이 아직은 최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최악은 아니다. 누군가 베스트 라이프를 살기 위해 애쓰는 것도 갓(god) 생이지만 워스트 라이프를 피한 것 또한 내가 얻어낸 갓(got) 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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