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히 많은 책의 장르 중 나는 에세이를 즐겨 읽고 직접 쓰기도 한다. 내가 처음 에세이를 쓰게 된 것은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병가 중일 때였다. 당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던 중인데 약을 먹지 않으면 4시간도 잠들지 못하는 상태였고 약을 먹으면 20시간 내내 잠을 잤다.
쓰디쓴 약은 내 하루를 갉아먹기 시작해서 점점 삶 속 깊은 곳까지 마비시켰다. 깨어있는 시간은 고통의 연속이었고 고통으로부터의 탈출구가 절실했다.
나의 탈출구는 글쓰기였다. 어린 시절 작가가 꿈이었던 적도 있고 몇 년간 블로그 체험단을 하면서 한 달 식비는 충분히 벌 만큼 글쓰기는 나름 자신 있던 분야였다. 나에게 일어난 일을 글로 쓰기 시작했는데 무엇이든 동기가 있어야 실행하기에 '브런치 스토리'에 작가가 되는 1차 목표를 세웠다. 과거의 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쓰고 지우길 반복한 글은 한글 파일로 열두 페이지 분량이 되었다.
글을 쓰고 나와 친했던 몇몇의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당시에 나는 답정너처럼 나에게 칭찬만 해주는 사람들에게 글을 공유했는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잘 한 선택이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해도 늘 나를 응원해 주고 격려해 주는 사람들에게 공유했던 글은 직장 내 가스라이팅으로 지극히 낮아져 있던 내 자존감을 올려주기에 충분했다.
많은 사람들의 격려와 애정 어린 조언으로 만들어진 글로 브런치 작가 승인을 받았고 이 성공 경험은 새로운 일을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또한 매일 죽음을 생각했을 만큼 고통스러운 기억을 글로 써보니 생각보다 내 아픔이 별거 아닌 것 처 느껴졌다. 나를 괴롭힌 대상들에 대한 분노와 저주로 가득 차 있었는데 이 또한 글로 적어보니 그 사람들이 너무 하찮고 가식을 조금 더 보태서 불쌍한 존재로 여겨졌다.
나를 퇴사하게 만들었던 건 괴롭힘을 당하고 있던 사람들을 '또라이'로 지칭하며 이상한 사람취급하거나 고통을 모르는척했던 무정한 타인들이었다.
고통은 우리를 외롭게 하고, 외로움은 '다정한 타인'이 필요하다는 신호이다. 다정한 타인의 부재는 고통의 주체를 '이상해' 보이게 만든다. 이상하다는 건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해는 고통의 내용을 들어보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
- <불안이 젖은 옷처럼 달라붙어 있을 때> 박성미 -
나에게 다정한 타인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내 고통에는 좀 더 많은 다정함이 필요했다. 다정한 타인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다. 글로 쓴 이야기 속 밖에 있던 내가 다정한 타인이 되어줄 수 있었다. 글을 쓰며 나의 과거로 돌아가 봤다. 나는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고 이 일에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퇴사 후 1년은 디지털 강사라는 새로운 일에 도전했다.
퇴사 후 2년이 되던 해, 공동저자로 관련한 경험을 담은 전자책을 출간했다.
함께한 저자들의 멋진 경험담으로 출간한 전자책이 에세이분야 베스트셀러에도 올라봤다.
나의 이야기로 사람들 앞에서 강연도 했다.
내가 쓰고 지우고 반복했던 글들을 통해서 큰 위로를 받았다는 사람들의 댓글에 다시 용기를 얻고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프랑스 엘르의 편집장 장도미니크 보비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전신마비가 왔다. 몸 전체에서 왼쪽 눈꺼풀만 움직일 수 있었다. 이 상황에서 그는 평생 동안 해온 '글쓰기'를 한다. 20만 번 이상 눈을 깜빡여, 15개월 동안 글을 써서 '잠수복과 나비'라는 책을 낸다. 그리고 이 책이 출간된 지 18일 만에 세상을 떠난다.
마지막 순간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때 장 도미니크는 눈을 깜빡여서 글을 써내려 갔다.
삶은 고통이라고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고통스러운 것은 욕망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며, 욕망이 사라지면 공허감에 시달려 더욱 고통스러워진다고. 행복은 욕망과 공허감 사이 잠깐의 탈출상태일 뿐이라고.
잠깐의 탈출상태를 늘리기 위해 나는 글을 써내려 갔다. 쓰디쓴 고통의 기억을 덜어내고 쓰고 쓴 글들로 삶을 채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