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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동그란 Nov 29. 2023

'삶의 모순'을 향해 천천히 달려가는 소설, <모순>

양귀자 작가의 <모순>은 1998년 IMF 사태 직후에 초판이 출간되었다. 그 해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자리를 잡은 뒤 25세였던 주인공 안진진이 50세가 되었을 만큼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의 인생은 원래 모순적이라는 불변의 진리로 인해 132쇄를 찍으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1. 인생의 부피를 늘리는 법            

내 삶의 부피는 너무 얇다. 겨자씨 한 알 심을 만한 깊이도 없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p.13


주인공은 25세의 안진진으로 같은 글자 '진'이 반복되는데 외자의 이름을 쓰려고 했지만 아버지가 출생신고를 하러 가는 길에 마음이 바뀌어서 갖게 된 이름이다. 참 '진' 자를 사용하지만 성이 '안'씨라 성과 이름을 붙이면 모순적인 이름으로 들린다. 주인공 안진진의 주변인물은 조직의 보스가 꿈인 남동생과 행방불명 상태인 자유로운 영혼의 아버지가 있다.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 한다.
p.20



소설의 핵심 인물로 일란성쌍둥이인 어머니와 이모는 얼굴과 학교 성적까지 모든 것이 같았다. 결혼 이후에 겉으로 보기에는 자상하고 아내밖에 모르는 남편과의 결혼 생활에서 지루함을 느끼는 이모와 끔찍한 술주정을 하는 남편을 만나 처리해야 할 불행들이 산적해 있어서 지루할 틈이 없는 어머니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주인공 안진진은 현재 이모부가 소개해준 건축회사에 다니면서 나영규와 김장우라는 인물을 동시에 사귀고 있다. 데이트를 할 때 식당, 드라이브 코스, 영화 예매등 인생의 모든 것이 계획대로 움직이는 남자 나영규, 야생화를 전문으로 찍는 사진작가인 김장우는 모든 면에서 그와 정반대이다. 주인공은 결혼을 전력투구할 삶의 중대한 출발점으로 생각하고 빈약한 인생의 부피를 늘려줄 수단으로 두 사람 중 한 사람과 결혼을 하고자 한다.
 

2.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스포 有)            


사람들은 의외의 사건에 대해 아무 생각 없이 이렇게 말한다. 그럴 줄 알았어. 예감하고 있었던 일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건은 언제나 돌발적으로 일어난다. 이런 일이 현실로 드러날 줄을 알았지만, 그 일이 '오늘이나 내일' 일어난다고는 믿지 않는다. 예감 속에 오늘이나 내일은 없다. 오직 '언젠가'만 있을 뿐이다. 매일매일이 오늘이거나 혹은 내일인데.
p.234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자상한 남편과 훌륭한 자녀들을 둔 남부러울 게 없어 보였던 이모는 자신의 삶을 결핍이라곤 경험하지 못하게 철저히 가로막아 버린 지리멸렬한 삶이라고 표현한 뒤 생을 마감한다. 이모가 떠난 뒤에도 살아있는 사람들의 사소한 이야기는 계속된다. 어머니는 중풍과 치매에 걸린 채 다시 돌아온 아버지의 시중을 들면서 불행하고 행복한 삶을 이어간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거이다. 실수는 되풀이 된다.
p.273



주인공은 이모의 죽음이 가르쳐준 대로라면 '무덤 속 같은 평온'한 삶을 피해야 하지만 결국 본인에게 없었던 것을 선택한다.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는 말과 실수는 되풀이된다는 말로 소설은 끝난다.
 
 

3. 행복과 불행, 삶과 죽음, 정신과 육체, 풍요와 빈곤


인생의 부피를 늘려 주는 것은 행복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가 그토록 피하려 애쓰는 불행이라는 중요한 교훈을 내게 가르쳐 준 주리였다.
p.210




인간에게 행복만큼 불행도 필수적인 것이다. 할 수 있다면 늘 같은 분량의 행복과 불행을 누려야 사는 것 처럼 사는 것이라고 이모는 죽음으로 내게 가르쳐 주었다. 
p.272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부피를 늘리기 위해서 행복과 풍요만을 좇는다. 하지만 인생에서 행복만큼 불행도 필수적인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행복해 보일지라도 불행했던 이모는 켜켜이 감싸진 불행들로 평생을 바쁘게 산 엄마의 삶을 동경했다.  '모순을 이해할 때 조금 더 삶의 본질 가까이로 다가갈 수 있는 것, 용기를 잃고 주저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무언가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었다'라고 말한 작가의 말처럼 20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이 책이 꾸준히 베스트셀러인 이유는 우리 모두 삶의 모순을 향해 천천히 달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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