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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수육과 담배꽁초

by 감동글

연일 매서운 추위가 지속되던 1월의 어느 날,

나가지 말라고 만류하던 할머니 손을 뿌리치고 달랑 가방 하나에 옷 몇 가지만 쑤셔 넣은 채

집을 나왔다


학생 티가 아직 완전히 벗겨지지 않은 스물두 살의 어린 나이였지만 법적으로는 성인이었으니 출가라고 해야 하나?


제일 먼저 부산 유명 대학교 인근 고시촌에 가보았다

화장실 딸린 1인실부터 책상 있는 방, 그리고 사람 하나 겨우 누울 수 있는 빛 한 점 없던 방까지 선택지는 다양했지만 제일 싼 방도 밥과 김치가 제공된다는 이유로 원룸 월세 수준으로 비쌌고

단 돈 백만 원 없는 나 자신이 너무 분했다


학교 친구들이 많이 살았던 한 동네에 저렴한 자취방이 많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보고 자란 게 있어서인지 왠지 거긴 가기 싫더라

결국 마지막으로 택한 곳과 어찌 보면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말이다


당시 만나던 여자친구 추천으로 고등학교 졸업한 곳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동네에 있던 한 여관에

달방 생활을 시작했다

밥은 해 먹을 수 없었지만 티브이와 에어컨이 있었고 방도 꽤 넓었으며 욕조 딸린 화장실도 있었다

비록 빨래를 직접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으나 주인아저씨의 배려로 햇빛이 내리쬐는 옥상에 널 수 있어 옷에 쉰내 나는 것은 피할 수 있었다

어차피 곧 담배냄새로 뒤범벅될 테니 상관은 없었지만,


하지만 내가 너무 어린 게 단점이었을까?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꼬박 내던 월세와 항상 인사성 밝던 모습에도 불구하고 6개월이 지나자 돈을 5만 원 더 올려 받겠다고 하신다

나름 불편함 없이 만족하고 지낸 터라 더 내고 살았어도 되었지만 이사 아니 이동을 선택했다

100미터 근방에 같은 금액에 더 넓은 달방이 나왔기 때문이다


남자 혼자 사는 방에 짐이라고 몇 개나 될까, 양손 가득 바구니 들고 서너 번 왔다 갔다 하니 이내 곧 새 보금자리가 나를 맞아주었다

새로 온 달방 주인아주머니도 젊은 총각이 인상이 좋다며 상상도 할 수 없는 특혜를 주셨는데

무려 세탁기를 무료로 쓸 수 있게 해 주셨다

그 이전 쉬는 날이면 하루종일 밀린 빨래 하느라 시간 다 보냈는데 한 줄기 빛과 같은 특전,

요즘같이 편의점 음식이 대중화되고 하다못해 햇반이라도 있었으면 아마 자취방 이상으로 좋았을지 모르겠다


한 해가 바뀌었다

그리고 나는 일자리를 잃었고 노는 시간이 늘어 갔다

남들처럼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는 게 아니었으니 수중에 모아놓은 돈은 금세 바닥을 드러냈고 처음으로 월세가 밀릴 위기에 처했다

인정 많던 아주머니에게 사정을 얘기하니 내일 당장 나가던지 월세를 낼 때까지 하루씩 숙박료를 지불하던지 선택하라고 하신다

가혹했지만 한 편으론 이해는 해야 했다

이때까지 별의별 많은 사람을 상대했을 테니 말이다


여자친구가 자기 친한 친구에게 사정을 얘기해서 돈을 빌려와 한 달 치 월세를 냈다

하지만 막막했다

당장 일하러 나갈 수 있는 차비도, 천 원밖에 안 하던 담배도 한 갑 사 필 돈이 없었다

유일하게 하나 있는 통장 잔액을 조회해 보니 2,310원이 들어 있었는데 누군가가 폰뱅킹으로 8,000원만 보내주면 만원을 atm기로 찾을 수 있지만

그 누군가가 내 곁엔 아무도 없었다


창피함을 무릎 쓰고 은행 창구에 가서 돈을 찾았다

그리고 담배 한 갑을 사고 침대 밑에 숨겨 놓은 전기버너에 끓여 먹을 요량으로

봉지라면 하나를 샀다

오자마자 반 개를 끓여 먹고 밤에 먹으려고 놔둔 남은 반 개를 몇 시간 뒤 마저 끓여 먹었다


그래도 배가 너무 고파서 마트 시식코너 음식이라도 몇 개 주워 먹어야겠다 생각하고 주섬주섬 옷을 입는데 옆방에서 중국음식을 주문했는지 철가방 문 여닫는 소리가 나더라

이 근방 건설현장에서 근무하시는 것 같던 항상 작업복 차림의 옆방아저씨 방에서

후루룩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이따금 중국음식을 시켜 먹고 내다 놓은 그릇이 늘 절반이상 남겨져 있던 게 생각났다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30분 정도 흘렀을까?

철커덕 문 닫는 소리에 이어 코 고는 소리가 들린다

슬며시 내 방문을 여니 예상대로 내놓은 탕수육 그릇에 음식이 꽤 많이 남아있었고 소스에 푹 찔러 놓은 담배꽁초 3개도 시선에 같이 들어왔지만 오히려 가장자리에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혹여 주인아주머니가 씨씨티비로 볼세라 후다닥 한 주먹 쥐어들고 입 안 가득 쑤셔 넣었다

그리고 조그맣게 있던 문과 방문 사이에 주저앉아 우걱우걱 씹어대기 시작했다

방문을 열면 바로 앞에 있던 거울에 내 초라한 모습이 비칠까 봐 센서등이 꺼진 컴컴한 곳에 선 채 모조리 삼키고 번들번들하던 입도 들킬까 봐 옷소매로 빡빡 닦았다


하지만 인생 가장 초라했던 나 자신은 거울을 보지 않아도 숨길 수가 없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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