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학창 시절 살던 동네에는 유명한 정형외과가 하나 있었다
동네에 단 하나라 그런 것도 있었지만 사실 해당 병원은 수산업으로? 더 유명했는데 그 당시 근처 초중고가 10개 정도 있었고 맘카페도 없던 시절 오직 입소문 하나로 방학 시즌만 되면 그 병원은 문전성시 불야성이었다
방학이 되면 너도나도 그 시절 아지트인 놀이터에 약속을 안 정해도 늘 모이기 마련인데 맨날 오던 친구가 며칠 안 보인다?
그럼 십중팔구 해당 병원에서 탈피 작업 후 집에서 회복 중,
그리고 귀신같이 일주일 뒤 어기적거리면서 나타나 인생 첫 자장면 후기들을 그렇게 늘어놓더라
그렇다
그 정형외과는 포경 수술로 유명한 병원이었다
실력도 실력이겠지만 요즘 같으면 벌써 주변에 비슷한 곳 몇 개는 더 생기기 마련일텐데 동네 유일 정형외과는 몇년을 굳건했고 내가 성인이 되고 동네를 떠날 때에도 간판은 여전했다
해당 병원 아들과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적이 있는데 크게 접점은 없었지만 딱히 불편하게 지내진 않았다
친구들도 동네 유명 정형외과 아들인건 누구나 다 알았지만 특별히 우대해주거나 무시하거나 하지 않고 평범하게 지냈고
그렇게 반년이 지나 2학기 개학식 첫날부터 안 그럴 것 같은 집안의 아이가 유일하게 결석을 했을땐 다들 조금 놀라는 눈치였다
그 시절엔 학교 결석이 흔하지 않는 일이여서 더 그랬는데 친구들을 대신해 근처 사는 옆 짝지에게 물어보니 방학 중 미국으로 유학길에 올랐다는 소식을 전하더라
그 병원 친구는 그렇게 학창시절 희미한 기억으로 잊혀져 갔지만 대가리가 크고 나서 든 생각이 그 친구 의사 아빠가 때로는 깁스 석고를 따고 때로는 수많은 수컷 고래들의 꽈추를 딴 이유는
히포크라테스 선서 때문이었을까?
부성애 때문이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버지가 되고 나니 번듯한 직장의 직장인도 의사처럼 전문기술을 가진 전문직은 아니지만
그 병원장이 자신의 아들의 미래를 위해 그랬던 것처럼 내 아이가 더 나은 세상을 살길 바라는 마음은 똑같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 친구를 생각하면 가끔 후회가 들때 있다
어릴 때 공부를 더 열심히 할 걸, 기술 배우라고 하던 어른들 말을 들을 걸,
하며 그 시절엔 귀에 들어오지 않던 말들이 이제야 떠올라 아쉽기도 한데
하지만 지나간 후회보다는 내가 걸어온 길을 경험 삼아 아이가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는다
내가 실패했던 경험을 스스로 깨닫는데 오래 걸렸지만 그 덕분에 누구보다 정확한 답을 알려줄 수 있는 아빠가 되었으니 의사 아빠가 아니더라도 그걸로 충분하다
가끔씩 그 병원장 친구의 현재 모습이 궁금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