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은 1970년 겨울에 태어났다. 1993년 『문학과 사회』 겨울호에 「서울의 겨울」 외 4편을 발표하고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 소설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소년이 온다』 『흰』 『작별하지 않는다』, 소설집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노랑무늬 영원』,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등이 있다.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황순원문학상, 김유정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노르웨이 '미래 도서관' 프로젝트 참여 작가로 선정되었다.
한국 작가 최초로 인터내셔널 부커상, 말라파르테 문학상, 산클레멘테 문학상,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강 작가의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하고, 인터넷 서점에서 『채식주의자』를 주문했다. 책은 양장판의 표지에 목련 꽃잎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이 세 편의 중편소설은 각각 『창작과 비평』, 『문학과 사회』, 『문학 판』에 수록되었고, 여기서는 모두 하나의 소설로 연결되어 있다.
『채식주의자』는 2007년에 초판이 완료되었고, 이번에 받은 책은 46쇄로 출간되었다. 작가는 위의 세 중편소설이 '따로 있을 때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합해지면 그중 어느 것도 아닌 다른 이야기가 담긴 장편소설이다.'라고 하였다.
'길었던 매듭이 지어지는 느낌'
(273쪽, 작가의 말 중에서)
소설 속 주인공의 이름은 '영혜'이다. 하지만, 각각의 세 소설에서는 다르게 불린다.'채식주의자'에서는 '아내'로, 몽고반점에서는 '처제' 그리고 마지막 '나무 불꽃'에서는 '영혜'가 그 이름이다. 처음에는 이 세 명의 인물이 같은 사람이란 걸 몰라서 내용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세 명이 같은 사람이라는 걸 알고 나니 줄거리를 연결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그녀와 결혼한 것은, 그녀에게 특별한 매력이 없는 것과 같이 특별한 단점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9쪽)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왜 한강 작가와 소설 속 영혜를 같은 인물로 판단한 걸까. 작가가 인터뷰를 하는 영상에서 보이는 수수한 외모와 화장기 없는 얼굴 그리고 깊은 눈빛 때문이 아닐까. '평범함이 좋다.'라는 작가의 표현이 좋았다. '과함'은 '무리수'를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 무던하던 아내에게 '악몽'이 찾아왔고, 그로 인해 그녀는 끝을 모를 '채식주의자'의 길을 걷는다. 영혜의 가족은 육식을 피하느라 극도로 피폐해진 그녀의 행보를 인정할 수 없었다. 책에서 보이는 영혜의 악몽은 적나라하고 끔찍하다. 만일 이런 꿈을 반복해서 꾼다면 나라도 '채식'의 길을 향한 것이다.
'채식주의자'에서 보인 그녀의 행보 탓일까. 아니면, 영양 부족으로 인한 오류인가. 형부와의 부적절한 관계로 이어지는 '몽고반점'은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작가가 그린 상황의 전개는 '공감의 두려움'을 넘어 독자를 몰입시켰다. 위험한 장면의 적나라하고 세심한 필력은 일탈을 꿈꾸는 누군가에게는 '대리만족'을 제공할 것이고, 이 또한 소설의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도발적 상황에서 느껴지는 두근거림 또한 독자의 숙제다. 그리고, 이는 소설을 통해 작가가 말하려는 의도를 전달하는 과정일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필연적이더라도 작가는 다소 곤욕을 치렀을 듯하다.
'심리 묘사'
작가는 남자의 심리를 세밀하게 표현했다. 이런 그녀의 스케치 덕분인지 이 책은 그저 하나의 소설일 텐데도 화를 내거나 읽을지 말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나 또한 완독을 위해 주춤거리기를 두어 번 반복했다.
세 번째 부분인 '나무 불꽃'에서는 처절히 고통스러운 영혜를 만난다. 정신 병원에서 죽음을 향해 달리는 그녀는 음식을 먹지 못했다. 병원에서는 위장에 관을 삽입해 음식을 투입하려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영혜의 극단적인 행동 이후 남편은 그녀를 떠났다. 형부는 그녀에게 난도질을 했으며,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입원하는 그녀의 곁을 지키는 유일한 가족은 언니였다. 남은 삶을 정처 없이 병원에서 지내는 영혜는 창밖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루는 자신을 나무에 비유하며 물구나무를 선다. 그녀에게 거꾸로 보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영혜가 내 옆에 있다면 그녀를 꼭 안아주고 싶다.
이 책을 통해 한 여자의 삶을 읽었다. 하루가 이어지면 한평생이 된다. 하지만, 모든 이의 하루가 다르니 내일 당장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다. 그리고, 주어지는 매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는 개인의 몫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 사람의 앞날을 결정한다. 그렇게 영혜도 주어진 삶을 살아왔다. 작가가 보여주는 영혜의 삶에 누가 객관적인 잣대로 평가를 할 수 있을까. 주어진 삶의 동굴에서 그녀는 소설이 끝나는 순간까지 처절히 허우적댔다. 그녀의 손은 누가 잡아줄까. 책을 읽는 내내 이런 생각을 했다.
"제발 영혜의 삶이 더 이상 아프지 않길"
그녀는 악몽으로 인해 채식주의자의 길을 걸었다. 자신을 걱정해서 그녀에게 고기를 먹이려는 아버지를 거부한다. 그리고, 형부의 부적절한 제안에 응한다. 병원에서 먹이려는 음식을 객혈까지 동원하며 거부했다. 그녀의 몸과 마음은 의료진이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났다. 죽음을 항상 염두에 두고 현실을 도피하려는 그녀의 발목을 붙들고 싶었다. 작은 소녀로 태어나 가족의 일원이 되었고, 엄마 아버지의 딸로 살았다. 한 남자와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그녀는 예측 못할 상황을 만나 어려운 길을 걷고 있다. 회생이 불가능한 상황까지 이어져 그녀의 앞날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그녀를 도울 누군가가 필요하다. 우리가 인생의 바다를 헤맬 때 나의 배를 인도해 줄 등대가 필요하듯. 하지만, 그 바다는 건널 것이다. 이런 헤맴은 영혜만의 것은 아니다. 하늘 아래 살고 있는 나는 그녀와 어떤 부분이 다르고 또 같을까. 그래서, 더 그녀를 응원하고 싶었다. 힘을 내라고, 반드시 나아지라고. 한강 작가와 영혜 사이에 존재하는 오버랩(overlap) 덕인지 책을 읽는 내내 작가를 응원했다.
'발상의 창의성'
'표현의 섬세함'
'작가와의 연결선'
'시적 전개'
소설 속 주인공인 '영혜'가 되어 한 여인의 삶을 지켜보고 싶은 분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그리고, 지금도 마음의 고통으로 인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분에게 '힘을 내십시오. 당신은 잘하고 있어요.'라고 전하고 싶다. 영혜의 언니처럼. 끝까지 곁을 지켜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