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마음이 머무는 자리
객석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붉은 빛이 번지는 무대, 천장을 가득 채운 조명, 그 아래 가지런히 놓인 연주 의자와 단상. 무대 중앙에는 지휘대와 그랜드 피아노가 자리하고 있었다. 낯설지 않으면서도, 매번 새로운 긴장감으로 나를 맞이하는 풍경이었다.
공연장 로비는 사람들의 숨결로 활기가 가득했다. 소파에 삼삼오오 앉아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는 이들, 손에 미리 준비해온 음료를 쥐고 한 모금씩 목을 축이는 이들. 아이의 손을 잡고 화장실을 찾는 부모, 프론트에서 음악회 리플렛을 챙기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공연이 시작되기도 전인데, 사람들은 포스터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오늘의 기억을 남기고 있었다. 공연장은 이미 음악이 흐르는 듯 분주했다. 나는 그 다양한 모습들을 눈으로 좇느라 마음마저 분주했다. 생각해 보니, 내가 공연장을 찾은 건 무려 6개월 만이었다.
오늘은 대학교 시절의 선배님 두 분과 함께였다. 오랜만에 마주 앉아 공연을 기다린다는 것만으로도 설렘이 있었다.
“어서 오세요.”
“곧 공연이 시작될 모양이에요.”
스쳐 지나가는 짧은 인사 속에서도 묘한 떨림이 배어 있었다. 무대를 준비하는 사람도, 공연을 기다리는 관객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는 대기 의자에 나란히 앉아, 분장실로 향하는 검정 정장의 발걸음을 바라보았다. 무대에 설 연주자들의 뒷모습이었다. 전문 연주자라 해도 이 순간의 떨림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떨림을 묻고 싶었지만, 공연 직전의 섬세한 기류를 알기에 입을 열지 못했다. 대신 마음속으로만 속삭였다.
“잘해 주세요.”
‘2025년 제16회 부산마루국제음악제.’
9월 2일부터 21일까지, Soul in Classic이라는 이름으로 열린다. 클래식의 깊은 감성과 영혼을 담아내겠다는 의미가 담긴 주제. 오늘 이곳,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축제의 첫 문을 여는 개막 공연이 열린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만남이라니,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매혹적이었다.
이 음악제는 무대의 규모와 형태를 넘어, 대극장부터 야외무대까지 시민 누구나 클래식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드림 프로젝트’와 ‘부산 뮤지션 시리즈’ 같은 프로그램은 젊은 예술가들에게 무대를 열어 주며 공동체적 울림을 더한다. 예술이 개인의 감상에 머무르지 않고, 지역과 세대를 잇는 다리가 되는 순간이었다.
‘클래식’
고전이라는 뜻을 가진 이 단어는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가치 있고 본보기가 되는 것을 말한다. 문학에서는 ‘고전 문학’을, 예술에서는 ‘고전 예술’을, 음악에서는 서양 전통 음악을 가리킨다. 좁게는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이 빚어낸 18세기 후반~19세기 초의 고전주의 음악을 뜻하지만, 넓게는 대중음악과 구별되는 모든 서양 전통 예술음악을 일컫는다.
나는 클래식을 자주 듣는 편은 아니지만, 들을 때마다 마음이 고요히 가라앉고 편안해졌다. 때로는 복잡한 마음을 풀어주고, 때로는 희미해진 감각을 깨워주기도 했다. 오늘 이 공연에서도 그런 위로를 받고 싶었다.
어제 우연히 초대권을 구한 건 작은 행운이었다. 평소에는 보고 싶은 공연이 있으면 기꺼이 표를 사곤 하지만, 오늘은 뜻밖에 선물을 받은 듯한 기분이었다.
‘오케스트라와 피아노.’
110분 동안 펼쳐질 오늘의 무대는 지휘자 구스타보 리베로 베버와 피아니스트 알렉산더 야코블레프가 함께한다. 피아노는 언제나 내게 특별하다. 손가락으로 건반을 누르는 단순한 행위 속에서 연주자의 영혼이 울린다. 강렬하면서도 부드럽고, 단단하면서도 따스하다. 그래서 늘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오늘은 세 번째 줄 객석에 앉아 피아노 건반과 연주자의 손끝 움직임까지 뚜렷이 볼 수 있었다. 흰머리가 섞인 파마머리, 장난기 어린 눈빛, 약간 구부정한 허리선. 무대 위로 걸어 들어오는 연주자의 모습은 그 자체로 음악처럼 다가왔다.
“우와…”
관객은 연주자에게 기대를 건다. 시간을 내어 찾아온 자신들의 하루가 음악으로 보상받기를 바라면서.
연주자들이 자리에 앉자, 악장이 무대에 올라 피아노 건반 하나를 눌렀다. 그 소리가 객석에 울리고, 단원들은 각자의 악기를 들어 그 음에 맞춘다. 서로 다른 음색이 한 음으로 모이는 순간, 나는 늘 설렌다. 음에 집중하고, 서로에게 귀 기울이며 맞추는 일. 그 과정에서 마음까지 하나가 되는 것만 같았다.
현악기 연주자들은 두 명이 하나의 보면대를 나란히 쓴다. 활은 마치 거울처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여린 음에는 작은 손목의 떨림으로, 강한 음에는 온몸의 무게와 기운을 실어낸다. 단순한 팔의 동작이 아니라, 몸 전체가 음악을 빚어내는 순간이었다.
“저 사람은 언제 연주해?”
뒤편을 바라보던 선배가 미소 지으며 물었다. 타악기 주자 중 한 명이 단상 맨 뒤, 심벌즈를 앞에 두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는 긴 기다림 끝에 단 한 번, 음악이 절정에 이를 때 소리를 터뜨린다. 팀파니와 함께 곡에 숨을 불어넣는 존재. 절묘한 순간을 기다리며 음악에 깊이를 더하는 이들을 나는 존중한다. 우리의 삶에도 그런 이들이 있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흐름을 완성하는 존재들. 그들의 침묵은 결코 공허하지 않았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는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대화를 나눈다. 협연이라 주인공은 피아노지만, 늘 무대 앞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오케스트라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한 발 물러선다. 그러다 다시 힘을 받아 주도권을 잡는다. 오케스트라 안에서도 이 흐름은 이어진다. 어떤 순간에는 바이올린이, 어떤 순간에는 첼로가, 또 다른 순간에는 플루트나 호른이 중심이 된다. 주 멜로디를 맡을 때는 빛나지만, 다른 선율을 받쳐야 할 때는 묵묵히 뒤로 물러난다.
“이것은 인생이다.”
나는 연주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인생에서 주인공이다. 하지만 그 주도권을 조율하며 살아간다. 부모 앞에서는 내가 주인공이지만, 사회 속에서는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누군가의 중심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배경이 되기도 한다. 어린 시절에는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사실이 서운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것이 편안하다. 그것이 바로 ‘하모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 무대에서도 주도권은 오고 갔다. 그들의 조화로움에 내 어깨는 저절로 들썩이고, 가슴은 두근거렸다. 음악이 내 안으로 깊숙이 스며들었다. 공연을 본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떤 이익을 주는 건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시간을 내어 이곳에 와 있었고, 그들이 내어놓은 음악 속에서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얻었다.
뜨겁게 박수를 보냈다. 손바닥이 화끈거리고 손목이 저릴 때까지.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오늘부터 다시 지휘해 보자.
내 인생이라는 오케스트라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