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밤, 나를 안다
학교는 텅 비어 있었다.
복도를 가득 메우던 아이들의 발걸음 소리도, 교실 안에서 터지던 웃음소리도 자취를 감춘 지 벌써 석 달째. 교실 문은 열릴 기미가 없었고, 특별실에도 인기척은 들리지 않았다. 책상 위는 텅 비었고, 의자들은 조용히 책상 밑으로 밀려 들어가 있었다. 아이들이 떠난 자리엔 정적만이 내려앉았다.
교실마다 투명한 칸막이가 설치되었고, 교문 앞에선 교사들이 돌아가며 아이들의 체온을 재고 있다. 아이들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건물 입구에 놓인 손 소독제를 바르고 교실로 들어섰다. 간혹 마스크를 벗는 순간, 익숙한 듯 낯선 얼굴들이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 채 스쳐 지난다. 그러다 같은 반 친구임을 알아보고 쑥스레 웃는 장면은, 그 시절의 짧고 귀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그 웃음도 오래가지 못했다. 매년 열리던 학교 행사는 대부분 취소되었고, 아이들은 이 상황이 끝나서 예전처럼 뛰어놀 수 있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운동장은 아이들이 떠난 채 비어 있었고, 모래밭 위에서 웃고 달리던 모습은 점점 더 기억 저편으로 멀어졌다.
이런 날이 오리라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무심히 흘려보내던 하루하루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시간이었는지를 그제야 깨달았다. 아이들과 함께 웃고 떠들며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순간들이, 지금은 아득한 꿈처럼 느껴진다. 낯선 정적 앞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조용히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2019년 말, 전 세계를 뒤흔든 그 이름. 코로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COVID-19. 이 낯선 바이러스는 우리의 삶 속까지 파고들어, 일상의 모양을 바꿔놓았다. ‘거리두기’라는 단어가 생겨났고, 사람들은 서로를 향해 손을 내미는 대신 거리를 유지한다. 기침과 발열, 피로를 몰고 다니는 바이러스는 노약자와 면역력이 약한 이들에게 치명적이었다. 쉴 새 없이 오가는 구급차 사이렌 소리는 사람들의 불안을 증폭시켰다.
백신이 없던 초창기, 세상은 그야말로 공포였다.
“이 상황은 언제 끝날까.”
“정말 끝나기는 할까.”
코로나 검사를 기다리는 줄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한 사람이 감염되면 온 가족이 격리 대상이 되었다.
“차라리 가족이 다 같이 걸리는 게 낫겠다”는 체념 섞인 말조차 진심처럼 들리던 시간. 백신이 개발된 후에야 그 말들은 농담이 되었고, 끝날 것 같지 않던 전쟁도 서서히 종식을 향해 나아갔다. 결국 코로나는 독감처럼 일상의 일부가 되었고, 사람들은 두려움을 넘어 새로운 삶의 방식을 익혔다. 그러나 교육 현장은 그 충격을 가장 오래, 깊이, 고스란히 짊어졌다.
‘원격수업’.
낯설고 어색한 단어가 하루아침에 교실을 대신했다. 교사와 아이들은 모니터 속에서 서로를 만났다. 특히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과 그 부모들에게는 말로 다 못할 버거움과 고단함이었을 것이다. 교실에 적응하고 학습 습관을 길러야 할 그 시기, 아이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배움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5년이 흘렀다. 그 혼란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마스크를 벗고 옆 사람과 자유롭게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귀한 일이었는지를, 우리는 뼈저리게 느꼈다. 2020년 3월과 4월, 약국 앞에 길게 늘어선 줄, “돈보다 마스크가 더 귀하다”는 말, 심지어 “마스크 있는 사람이 최고의 배우자감”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이 웃음 뒤에 남은 씁쓸함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5월, 교무실 창 너머로 내려다본 운동장과 교문은 여전히 고요했다. 등교는 계속 미뤄졌고, 학교는 비어 있었다. 나는 자꾸만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이 기다림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처음엔 한두 달이면 괜찮아질 거라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 믿음을 조용히 비웃기라도 하듯 흘러갔다. 그때마다 우리는 또 다른 방식으로 하루를 견뎌야 했다. 온라인 수업을 이어갔고, 부모는 아이를 집에 둔 채 출근했으며, 교사들은 모니터 앞에 앉아 익숙하지 않은 화면 속에서 수업을 이어갔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해야 했기에 해냈다.
4월이 되어 교사들은 학교로 복귀했지만, 교실은 여전히 텅 비어 있었다. 수업은 온라인 강의와 과제로 대체되었고, 교사들은 매일같이 자료를 만들고 공유했다. 동학년 교사들과 머리를 맞대며, 서로를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하루는 답답한 마음을 달래고 싶어서, 나는 동료들에게 제안했다.
“점심 먹고 운동장 한 바퀴 걸을까요?”
우리 학교 운동장은 집 마당만큼 작다. 그런데 그날따라, 그 작디작은 운동장이 넓게 느껴졌다. 네 명의 교사가 햇볕을 맞으며 트랙을 천천히 걸었다. 뜨거운 볕 아래였지만, 그 걸음은 멈추기 아쉬웠다. 걷는 일은 참 묘하다. 몸은 움직이는데 마음은 오히려 가벼워진다. 바람은 마음 깊숙이 스며들었고, 햇살 아래 나눈 짧은 대화는 곧 따스한 위로가 되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걷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이상하리만치 든든했다. 어쩌면 우리가 그렇게 걷고 싶었던 건, 무기력으로부터의 탈출이었는지도 모른다. 흙을 밟는 발바닥의 감각, 바람과 햇살이 전해주는 온기. 그 모든 것이 그리웠고, 그래서 반가웠다.
2020년 5월 27일.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등교의 날. 새 학년이 시작된 지 두 달이 넘도록 얼굴 한 번 마주하지 못했던 아이들과 처음 만나는 그 순간. 설렘, 긴장, 벅참이라는 감정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아이들도 같았을 것이다. 새로운 친구, 새로운 선생님, 낯선 교실. 집 안에 갇혀 쌓였던 외로움과 갑갑함. 이제 교실은 다시 웃음과 이야기로 가득 찼다.
오늘도 나는 운동장을 걷는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화단의 나무들을 바라본다. 마스크를 쓴 채 학교 앞을 지나는 사람들, 커피를 들고 나오는 이, 학원차를 기다리는 아이들, 1학년 아이의 손을 꼭 잡은 엄마. 모래사장에서 놀다 엄마를 향해 운동장을 가로질러 달려가는 아이의 모습. 오랜 기다림 끝에 꽃처럼 활짝 피어난 얼굴들. 그 하나하나를 바라보며, 나는 문득 가슴이 저릿해진다. 운동기구 위에서 천천히 허리를 돌리는 어르신, 햇살 속을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들.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그 시절을 견디고, 살아냈다. 늘 분주했던 시간이 이렇게 고요하고 따뜻하게 채워질 수 있다니. 삶의 속도를 조금 늦추고 바라보니, 비로소 보인다. 눈앞의 풍경이 얼마나 귀한지.
그래, 일단 걸어보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길을 천천히 걷는 것. 그리고 아이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 곧 운동장에도, 복도에도, 교실 마다도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발걸음이 다시 가득해질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지켜야 할 가장 소중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