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 나를 안는 시간

2부. 밤, 나를 안다

by 윰글

“딩딩딩, 딩딩딩.”

책상 위 자명종 시계가 울린다. 밤 9시 50분. 이 소리가 들리면 하던 일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운동화를 신은 후,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선다. 이 알람 소리는 나만의 약속인 저녁 운동을 시작하라는 신호다. 오늘로 10개월째, 나는 이 밤의 일상을 이어오고 있다.

매일 밤 10시가 되면 집을 나와 어디서든 걷는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지하에 주차장이 있어 1층에는 정원과 놀이터, 운동기구들이 갖춰져 있다. 그러니 밤 산책을 즐기기에는 적당한 환경이다. 아파트 뒤편에는 작은 산이 있어서 여름이라도 밤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운동을 하려고 집을 나설 때는 귀찮은 마음이 들 때가 있지만, 막상 1층 아파트 현관문을 여는 순간 “그래, 잘 나왔어”라는 생각을 한다.

아파트 뜰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5분. 몸이 가볍게 느껴지는 날엔 천천히 달리기도 하는데, 이렇게 하면 시간이 줄어들어서 약 3분 정도가 소요된다. 마냥 걷기만 하는 것보다는 달려주는 게 운동 효과는 더 크다고 들었다. 운동을 시작하면 타이머를 작동시키셔 일정 시간을 채운다.


나는 40대까지는 운동의 중요성을 몰랐다.

“요즘 소화가 잘 안돼.”

그런 말을 하는 어른들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늘 잘 먹고, 먹는 대로 소화를 시켰으니까. 그런데 나이 앞에서는 장사가 없다. 50대에 접어들면서 나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음식을 삼키면 그 즉시 목구멍이 걸리는 듯 답답하고, 위장은 제 기능을 멈춘 듯했다. 음식이 배 속에 쌓이는 기분이 들어서인지 저녁 시간엔 식사가 두려웠다. 이런 상태에서 늦은 밤 음식을 먹으면 다음 날 하루 종일 속이 더부룩했다. 그래서 어른들이 저녁을 적게 먹고, 산책을 하시는가 보다.

이런 소화의 불편함을 그대로 안고 살 수는 없었다. 여러 가지 고민 끝에 선택한 첫 번째 방법은 ‘간헐적 단식’이었다. 나는 ‘16:8’ 방식, 즉 하루 16시간 단식하고 8시간 동안 식사하는 방법을 택했다. 저녁 8시 이후부터 다음 날 정오까지는 오직 물만 마셨다. 처음엔 배가 고팠고, 아침이면 허기가 밀려왔다. 그러나 참았다. 이것은 내 몸의 회복을 위한 인내였다. 다행히도 일주일 정도 지나니 몸이 적응을 했는지, 편안했다.


하지만 먹는 시간을 조절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어깨가 뭉치고, 온몸이 뻐근했다. 이건 또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을 더하다가 선택한 방법이 바로 ‘저녁 걷기’였다.

‘걷기’는 지구의 중력에 맞서 이루어지는 운동이라고 한다. 우리는 지면에 발을 딛고, 몸을 수직으로 지탱한 채 수평으로 생활한다. 이렇게 자연스럽고 당연하게만 여겼던 걷기가 어느 순간 두려웠던 적이 있다. 조금만 걸어도 어지럽고 몸이 무겁게 느껴졌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편함 속에서, 매일 걷는 일이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나는 계속 걸었다.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 알게 되었다.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인간의 움직임인지를.

산책의 중요성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철학자 칸트의 일화에서였다. 그는 매일 같은 시각, 독일 쾨니히스베르크의 ‘린덴가세’를 산책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중학생 시절, 도덕 선생님에게 들었다. 그땐 ‘걷는 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내 생각이 달라졌다. 걷는 것이 내게 힘을 준다는 걸 알았다. 지금도 그렇다. 집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기분이 좋아지고, 이렇게 나서서 걷기 시작한 지 1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마음속에 얽힌 것들이 하나씩 풀리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40분 정도 걷고 나서는 놀이터에 있는 나무 그네에 앉는다.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고개를 들면, 밤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별과 달이 있다. 어둠이 짙을수록 더욱 잘 보이는 그 풍경은, 마치 어떤 사람과 닮아 있다. 마음이 고요해지고, 온몸의 장기가 비워지는 느낌. 그렇게 하루의 피로와 복잡한 생각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간다. 이렇게 생각 없이 보내는 30분, 이 편안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밤 산책 시간이 매일 기다려진다. 늦은 저녁 식사 중이더라도, 친구를 만나고 있더라도, 가족과 TV를 보고 있더라도 밤 10시가 되면 어김없이 걷는다. 마치 내가 칸트가 된 것처럼 상상한다. 그 시간과 공간은 나를 누구보다 잘 돌보는 힐링의 포인트다. 오직 나를 위한 시간, 나를 마주하는 공간이다.


규칙적인 신체 활동은 불안과 우울을 완화한다고 한다. 수영, 자전거 타기, 줄넘기, 리듬운동, 그리고 걷기 같은 리드미컬한 활동이 뇌에 안정적인 자극을 주어 정신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특히, 햇빛을 보며 걷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최수희 교수는 일상적인 운동이 불안장애 극복에 효과적이라고 말한다.(출처: 서울대병원 TV 유튜브) 또한 중앙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한덕현 교수도 운동선수들의 규칙적인 활동이 정신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강조한다. (출처: 클래스 e, 《한덕현의 프로선수의 정신승리법》)

이런 이유로 나는 매일 밤 걷기를 실천하고 있다.

“하루에 한 시간씩 걷기.”

그것은 단순히 체중 감량을 위한 것이 아니다. 50대가 되며 겪는 땀, 열감, 근육통, 수면장애, 이 모든 갱년기의 불편함을 이겨내기 위한 나의 선택이다. 새벽 시간, 두세 시간마다 깨어나는 것도 일상이 되었으니, 어쩌다가 수면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면 다음 날까지 피로가 이어졌다. 이런 문제에 대한 해답도 ‘운동’이라고 여겼다.

밤 10시, 아파트 뜰엔 걷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래도 상관없다. 나는 나의 활동에 집중하면 되기 때문이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내 옆을 지나치는 사람은 무심히 보낸다. 요즘엔 유모차에 강아지를 태우고 산책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그럴 땐 강아지와 눈을 마주치는 정도. 때로는 우리 집 강아지와 함께 걷는다. 그럴 때면 걸음도 한결 느려지고, 강아지가 용변을 볼 때는 멈춘다. 그 아이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나의 마음도 내려놓는다.

아파트 옆동으로 걸어가면 헬스장이 있다. 러닝머신 위에서 뛰는 사람들, 자전거 페달을 밟는 사람들. 편의점 앞에선 아이 손을 꼭 잡고 간식을 고르는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차로 스쳐 지날 땐 보이지 않던 장면들이, 이 고요한 산책 속에선 선명하게 다가온다.


운동은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한 인간의 몸부림이다. 피를 맑게 하고, 무거운 마음을 가볍게 만든다. 가끔은 딸이 함께 걷겠다고 나선다. 그럴 땐 평소 말하지 못했던 속마음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풀꽃을 들여다 보고, 지나치는 강아지에게 인사를 건넨다. 조금만 마음을 기울이면, 평소 보지 못했던 것들과도 소통할 수 있음을 느낀다. 그렇게 하루의 흐릿함이 걷히고, 나는 다시 단단해진다. 피로가 쌓였거나, 무심코 던진 말이 마음에 걸릴 때, 운동을 통해 그 무게를 몸 밖으로 털어낸다. 그리고 다시 돌아본다.

“혹시 내 감정에 휩쓸려 누군가를 다치게 하진 않았는지, 내 아이를 손님이 아닌 ‘나처럼’ 생각해서 함부로 대하진 않았는지.”

이런 생각을 하며 하루라는 톱니바퀴를 돌린다. 스스로를 조용히 되돌아보는 시간.

하루는 무지갯빛이다. 다양한 감정과 시간, 노력, 때로는 절절함과 행복이 뒤섞여 있다. 그래서 힘들어도 오늘을 살아내고, 내일을 기대하며, 모레를 꿈꾼다. 오늘의 나 역시 그랬다. 그 하루를, 걷는 시간 속에서 되돌아본다.

온전히, 그리고 마음 가득히.

“잘했다, 나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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