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밤, 나를 안다
오늘은 부산 동구 초량 산복도로에 있는 카페에 왔다. 지난 학교에서 함께 일했던 몇몇 분들이, 직장은 떨어져도 정기적으로 만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모임을 만들었고, 오늘이 처음으로 만나는 날이다. 한 직장에서 2~3년을 함께 근무했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거기에다가 같은 마음으로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그것은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지하철과 버스가 다니는 주도로에서 승용차로 약 10분 정도 40도 정도의 오르막길을 오르면 카페에 도착한다. 4층짜리 건물의 오른쪽에는 별도의 주차타워가 있다. 차를 가진 사람들은 주차가 불편하면 어디든 잘 가지 않는데, 이곳은 그런 면에서 장점이 있다. 고객의 주차를 돕는 직원의 안내에 따라 차를 세웠다.
카페 1층에는 빵 진열대와 주문 데스크가 있었고, 우리가 도착한 시각에는 다섯 명 정도의 고객이 우리 앞에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나는 카페를 한 바퀴 둘러보고 싶어서, 도착하자마자 2층으로 올라갔다. 층마다 삼 면이 유리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햇볕이 강할 때를 대비해 여닫이 롤스크린도 보였는데, 다행히 우리가 도착한 시간에는 햇볕이 강하지 않았다. 다양한 크기의 테이블이 있어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인원수에 맞게 자리를 정할 수 있다.
오늘 만나기로 한 사람은 총 일곱 명. 우리는 창가 쪽 4인용 테이블 두 개를 붙여 자리를 마련하고, 부족한 의자를 옆 테이블에서 가져왔다. 이런 부산스러운 행동이 주변 사람에게 불편함을 줄 수도 있지만, 50대가 되고 보니 사람들의 시선에는 둔감해지는 듯하다. 이렇게 나보다 늦게 도착하는 지인들을 맞을 준비를 마친 뒤, 의자에 앉아서 카페 아래쪽으로 보이는 마을을 봤다. 산복도로(산의 허리 부분을 따라 난 도로) 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과 그 사이사이에 드문드문 보이는 여유 공간이 아기자기했다. 가정집, 학교, 관공서, 그리고 여러 종류의 건물들이 있었다.
‘과연 저 건물 안에는 어떤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새로운 공간을 찾으면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에 대해 궁금해진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본다는 건 내게는 여유를 부리는 일이다. 집들과 사람이 작아 보여서일까. 아니면 내 마음이 편안해서일까.
‘사람들은 왜 아웅다웅하며 살아갈까?’
사는 동안 경쟁을 하다가도, 상대방에게 맞추려 애쓴다. 나 역시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스무 살 때쯤, 대학 동기와 함께 부산 중구 남포동의 6층 건물 꼭대기에 있는 카페에 간 적이 있다. 그때도 지금처럼 창가 자리를 좋아했던 나는 남포동 도로변이 보이는 가장자리에 앉았다. 나보다 조금 늦게 오는 친구를 기다리며 잠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저녁 시간이 가까워져서인지 도로에는 차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왕복 8차선임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도 도로에는 공간이 부족해 보이던지. 차들은 그 길을 빠르게 지나기 위해 속도를 높인다.
하지만 높은 곳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던 나는 마음이 여유로웠다. 다투듯 앞서가려는 차들을 관망하는 마음으로 쳐다보며, ‘도대체 왜 저러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 한 대가 본인의 차를 앞지르면, 비켜주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비집고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서는 차도 보였다.
‘그냥 끼어들게 해주면 모두가 편안하고 빨리 지날 텐데.’
그 당시 내가 운전면허가 없어서인지 몰라도, 그들이 벌이는 경주가 우스워 보였다. 몇 대 앞서가겠다고 다투는 모습이 어쩐지 어리석게 느껴졌다. 아빠가 운전하시는 차를 타고 남포동의 아래 도로를 지날 때면 분명 나도 같은 상황 안에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저 차들처럼 빨리 지나가고 싶어 안달했을지도 모른다.
‘굳이 왜 저렇게까지 해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카페로 들어선 친구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웃으며 방금 내 눈에 비친 장면과 생각을 이야기했다. 그 자리에서 미소를 나눈 친구는 지금까지 40년 가까이 나와 가깝게 지내고 있다.
‘깨달음은 긴 시간을 요구하지 않는다.’
20대의 나에게 이와 같은 장면이 보였다는 건 행운이다.
‘인생을 각박하게 다투며 살아갈 필요는 없구나’
이런 생각이 나를 스쳤다.
지금 내 나이는 50을 훌쩍 넘겼다. 누군가는 이 나이에 ‘과연 꿈이 있을까, 희망이 존재할까’라고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당연히 그렇고, 오히려 마음은 여유롭다.
“나는 50대가 제일 좋아.”
선배 언니 중에 이런 말씀을 하신 분이 계셨다. 그대로 해석하면 나이가 들어서 좋다는 말이다. 물론 그 당시의 나를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 언니가 측은해 보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이제는 그 말에 동의를 보낸다. 지금 내가 같은 마음이다.
50대가 되고 보니 30대와 40대와는 달리 화를 낼 일이 적다. 그래서 나는 힘겨운 20대와 30대를 보내는 이들에게 “곧 좋아질 거예요.”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지금은 다른 사람이 화를 내도 그 일에 동요하지 않는다. 사람은 생각이 다르니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마음을 먹는다. 이런 말을 떠올리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감정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편안하고,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육아의 어려움도 줄었다.
‘조급한 마음을 버리면 건강하다.’
40대 후반에 현기증과 두통으로 힘들었다. 그 원인을 알고 싶어서 각종 병원 검사를 진행했지만, 별다른 진단은 없었다. 그런데도 몸의 불편함은 유지되었다. 진단이 나오지 않으면 ‘이상이 없구나’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답답한 마음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의학에서 말하는 ‘8 체질 검사’를 받아본 적이 있다.
8 체질은 사람의 체질을 여덟 가지로 분류하는 이론이다. 이는 사상의학과는 다른 독자적인 분야로 여겨진다. 20세기 초 고(故) 정통수 한의사가 창시했고, 현재는 그의 아들 정혜진 박사를 통해 이어지고 있다. 여기서 8 체질이란 목양, 목음, 토양, 토음, 금양, 금음, 수양, 수음으로 나뉘고, 맥진과 장부 기능 검사 등을 통해 파악한다. 이 검사를 하는 이유는 체질에 맞는 식단과 생활 습관을 따르면 질병 예방과 건강 유지에 효과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과학적 근거는 제한적이지만 실제 체질식으로 하고 나서 건강을 회복했다는 분이 주변에 있어서 나도 관심을 가졌다.
한의원에서 관련 검사를 해보니 나는 8 체질 중 ‘토양’ 체질로 나왔다. 이 체질에 따라 조심해야 할 운동, 음식, 질병 등을 안내받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마음을 급하게 먹지 말라’는 조언이 마음에 닿았다. 무슨 일이 생기면 마음이 다급해지는 것이 나의 취약점이다. 그래서 이 검사를 받은 이후부터는 마음을 더 차분하고 평온하게 가지려고 노력했다. 물론 이 체질식 하나로 그때의 건강 상태를 모두 회복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정 부분은 도움이 되었다.
지인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찾은 이 카페에서, 40여 년 전의 나를 떠올렸다.
‘내가 어느새 이렇게 나이를 먹었지?’
지금 내 마음은 20대와 다르지 않다. 그래서 어른들이 ‘내 나이가 어때서’라고 말씀하시는 걸까. 나도 이제 그 말씀에 공감이 될 나이가 되어 버렸다.
'우리 눈에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도 나와 같을 거야.'
삶의 여유를 찾고 싶다. 각박하지 않게 나와 타인을 대하고, 다툼은 피하려고 노력한다. 좋지 않은 말을 건네면 상대방보다 오히려 내 마음이 불편하다. 내 감정을 잠시 누그러뜨리면 그 이후의 어색함을 덜어진다. 물론 오랫동안 부정적인 감정을 쌓아두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하지만 불필요한 감정을 자꾸 생성하지는 말자.
‘화가 나지 않는 사람’
법륜스님의 강연장에서 한 사람이 이런 질문을 했다.
“어떻게 하면 화를 내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런 방법은 없어요. 단, 화가 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화를 참으면 ‘화병’에 걸리기 쉽다. 화가 생기면 그 화를 없애는 방법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한다. 그렇다면 화가 아예 생기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답이다. 이것이 가능할까. 나는 마음의 동요가 적은 편이다. 웬만한 일에는 화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 스스로 내 성격을 ‘잔잔한 호수’에 비유하고 싶다. 그렇지만 녹록지 않은 삶 앞에서는 장사가 없다. 결혼과 사회생활을 하면서 수시로 화가 나거나 억울했다. 6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런저런 일들에 달궈지다 보니 나도 언젠가부터 화를 내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그 화를 쏟아낼 수도 없어서 꾹 참았다. 그랬더니 결국 나에게 온 것은 ‘화병’. 매일 작은 일에 화가 치밀고, 또 치밀었다. 화를 내게 한 상대를 원망하면서 또 화를 냈다. 이렇게 하고 보니 결국 가장 힘든 사람은 나였다. 이러느라 3년 정도는 아팠다. 그러고 나서 깨달았다.
‘어릴 적 나로 돌아가자.’
지금도 완벽히 화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생각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타인이 나를 화나게 만든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화는 그냥 내가 내는 것이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은 화를 내지 않고, 어떤 사람은 화를 낸다. 이것은 바로 사람의 차이였다.
“모든 일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해보세요.”
모 국립대학교 총장님으로 퇴직하신 분이 내게 건네주신 말씀이다.
‘그래, 강 건너 불이라면 내게 옮겨붙을 일도 없겠다. 그러니 얼마나 마음 편히 그 상황을 대할 수 있을까?’
3년 전에 들었던 이 말씀을 내 가슴에 새겼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인생의 열을 내리는 ‘아스피린’처럼 이 말을 전한다. 그리고 그 말을 전하는 동안 내 마음에도 다시 이 문장을 심는다.
사람을 좋아하는 나는, 이렇게 차 한 잔을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시간이 좋다. 상대방의 말에 스며들면서 ‘말하기’를 잠시 쉬어도 좋고, 차분한 시간을 통해 그 시간의 나를 드러낼 것이다. 급하지 않고 여유롭게.
또 다른 나를 돌아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