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이름의 감정들

2부. 밤, 나를 안다

by 윰글

사랑은 깊은 상호 인격적인 애정에서부터 단순한 즐거움에 이르기까지, 강하고 긍정적으로 경험되는 감정적·정신적 상태다. 즉, ‘좋아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뜻한다. (출처: 네이버 위키백과)


대학 시절 나를 뜨겁게 했던 선배가 있었다. 동아리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카페 한구석에 비스듬하게 소파에 기대앉은 그의 모습을 보는 순간 머리가 띵했다. 그리고 어디를 가든 그 모습이 눈에 선했다. 가슴은 두근거리고, 머리는 멍했다. 보고 싶어서 그의 곁에서 얼쩡거렸다. 여고 시절 좋아했던 친구 덕에 비슷한 감정을 느꼈었다. 경험은 사람을 성장시킨다. 처음이 아니라서 그 감정에 적응이 될 줄 알았지만, 이것도 나의 오산이었다. 상대가 달라져서인지 그 감정의 색도 달랐다. 거기다가 이성이라는 차이로 인해서 그 감정의 강도는 더했다. 이런 상태가 심해지면 ‘병’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그의 마음을 확인하지 못했다. 말도 못 붙일 정도인데 감히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그는 동아리 2년 선배였다. 거기다가 다른 학교에 다니고 있었으니, 볼 기회가 적었다. 남포동 한 카페에 동아리 아지트가 있었다. 시간이 나는 사람들은 그곳에 별도의 시간 약속 없이도 삼삼오오 모였다. 나는 그 선배가 보고 싶어서 수업이 끝나자마자 그곳으로 가서 한쪽 구석 자리에서 저녁 시간까지 버텼다. ‘혹시 오늘은 그 선배가 올까’라는 기대하고. 운이 좋으면 그 선배가 그 자리에 나타났다. 그런 날이면 마치 복권에라도 당첨된 듯 기분이 들떴다.

카페 출입문으로 그의 모습이 보이면 눈이 마주친다. 나를 보고 들어오는 것도 아닌데 왜 고개를 들지도 못한 건지.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의 내가 귀엽게 느껴진다. 고개를 숙인 나를 보고서 속사정을 모르는 선배들이 “유미야, 고개 들어야지” 하며 내 얼굴을 들추려 했다. 그렇게 하면 나는 부끄러워서 고개를 더 숙였다.

그 선배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는 내 귀가 온통 그의 말소리에 집중됐다. 혹시라도 그가 다른 사람에게 다정한 말을 건네기라도 하면 질투가 일었다. 한마디로, 나의 모든 감각이 그를 향하고 있었다. 보이지 않으면 그리웠고, 그도 나와 같은 마음이길 바랐다. 이것은 20대 초반의 내 가슴을 채운 추억이다.


하지만 불같았던 그 감정도 2년을 넘기지는 못했다. 나는 대학을 졸업했고, 그 선배와 마주칠 일도 자연스레 사라졌다. 문득 이런 궁금증이 생겼다.

‘어떻게 지낼까.’

‘결혼은 했을까. 아이는 있을까.’

매일, 매 순간 보고 싶을 정도로 달아올랐던 감정이 지금은 식은 돼지고기 비계처럼 불편해졌다. 한때 따뜻하고 부드러웠는데.

이것이 사랑이다. 상대방이 없으면 못 살 것 같고, 안 보면 큰일이라도 벌어질 듯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 이것도 사랑이다. 적어도 스물다섯의 나에게는 그랬다.

사람에게 망각이 있다는 사실, 그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사랑은 ‘어긋남’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그 시기, 강도, 대상에 따라 서로를 바라보며 상대방의 마음을 읽으려 애쓰지만, 정작 내 마음은 감춘다. 상대방이 알아주길 바라면서도, 내 마음은 숨기는 아이러니함. 상대방에게 드러내어야 그도 나와 같은 마음인지 확인할 수 있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상대의 마음이 나와 맞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쉽게 포기한다. 이것이 말처럼 쉬운가.

나는 사랑에 자신감을 가진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눠본다.

‘진짜 사랑이 아니거나, 자존감이 높거나.’

대부분은 전자가 아닐까 싶다.

게다가 연애한다고 해서 모두가 사랑을 하는 그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육체적인 탐욕을 ‘사랑’이라는 말로 대신할 때도 있다. ‘책임’이라는 말로 상대방을 옥죄기도 하고, 자신은 그 테두리를 벗어나려고 한다. 이 책임의 색도 다양할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다 그 사랑이 식을 때쯤 다른 누군가가 눈에 들어온다? 그럴 때는 먼저 선택한 사람에게 더욱 집중하는 ‘의리’와 ‘믿음’이 필요하다. 그래야 관계의 안정성이 생기니까.


사랑의 종류를 찾아봤다. 보통은 여덟 가지로 분류한다. (출처: 챗GPT)

첫 번째는 에로스. 감각적이고 열정적인 사랑으로, 신체적인 끌림이 동반된다.

두 번째는 스토르게. 가족 간의 사랑이며, 자연스럽고 안정적인 유대감을 형성한다.

세 번째는 필리아. 친구 간의 사랑으로, 상호 존중과 신뢰에 기반한다.

네 번째는 아가페. 조건 없고 이타적인 사랑으로, 신적 사랑이나 인류애를 의미한다.

다섯 번째는 루두스. 유희적이고 장난스러운 사랑으로, 주로 연애 초기에 나타난다.

여섯 번째는 프라그마.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사랑으로, 이해를 통해 깊어진다.

일곱 번째는 필라우투스.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즉 자기애로, 과하면 나르시시즘으로 변질된다.

여덟 번째는 매니아. 집착적인 사랑으로, 감정 기복이 크고 불안정하다.

이처럼 사랑의 종류는 다양하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모든 사랑은 신체와 감정의 교차로에서 태어난다는 점이다. 부모와 아이가 눈을 마주칠 때, 연인이 서로의 숨결을 느낄 때, 마음은 움직인다. 하지만 사랑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그걸 꼭 말로 해야 하나요?”라는 상대방의 말을 들을 때 상처를 받으면서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꾹 참아내는 것도 사랑이다. 그건 상대방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과거의 나에게는 그랬다.

때로는 그 사랑의 감정이라는 것이 분명하면서도 혼란을 일으킨다.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고민한다. 내 마음은 알지만, 상대방의 마음을 모르니 ‘노심초사’에 빠진다.

또, 사랑이 행동으로 옮겨지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둘 다 자신의 감정을 숨긴다면, 그 사랑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물거품이 될 것이다.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야”라는 광고 문구가 떠오른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한다. 마치 인어공주의 그 새벽처럼. 커피를 내리며 “맛있게 마셔줬으면 좋겠다”라는 마음, 추운 날 “감기 걸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향 좋은 음식을 보면 함께 먹고 싶다. 겨울밤에는 그 사람이 따뜻한 이불 속에서 편히 쉬었으면 하는 마음. 그 모든 사소한 순간의 마음이 바로 사랑이다.

표현할 수 있는 상대에게는 마음을 건네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오히려 내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 애쓴다. 그러면서도 마음으로는 전하고 싶다. 미우면서도 고맙고, 화가 나는데도 그립다. 손이 닿으면 가슴이 뜨겁고, 곁에 있으면 눈길이 가고 마음이 쏠린다. 스쳐 지나는 행동과 말 한마디에도 마음은 데워진다.

다행히도 사랑은 남녀 간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를 향한 엄마의 마음, 학생을 아끼는 교사의 진심, 신을 향한 믿음, 연예인을 향한 팬심 등. 이것 또한 사랑이다. 그러니 사랑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사람을 이어주고, 관계를 유지하는 접착제가 된다. 그 끈은 약해 보이지만 강해서, 평생을 함께할 운명선이 된다. 그래서 사랑의 힘은 깊다. 그 사랑이 지금 우리 곁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감사함과 신기함이 교차한다.


‘사랑은 외나무다리에서’

얼마 전 우연히 보게 된 tvN 드라마다. 이 제목은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라는 속담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일까. 이 드라마는 토일 12부작으로, 2024년에 방영되었다. 원수의 집안에서 같은 날, 같은 이름으로 태어난 남자 석지원과 여자 윤지원. 열여덟의 여름, 아픈 이별 후 18년 만에 다시 만난 원수들의 전쟁 같은 로맨스를 그리고 있다. (출처: 네이버)

드라마의 주연은 주지훈, 정유미 배우다. 18년은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할 정도의 시간인데, 이 둘은 어떤 모습으로 재회했을까. 그 후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로맨스 연기에 최적화된 두 배우의 감정 연기가 좋았다. 이미 사랑으로 맺어진 둘에게는 세월은 방해 역할을 하지 못했다.

드라마의 결말은 예상 가능하지만, 그 감성의 표현은 배우들의 몫이다. 두 주인공은 말과 행동에 감정을 담았고, 나는 그 모습에 몰입했다. 드라마의 결말을 아직 모르지만, 이들의 사랑이 따뜻하고 행복하길 바랐다. 설사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일지라도. 드라마는 우리에게 잊히거나 희미해진 사랑의 감정을 떠올린다. 나이와 무관하게 순수한 감정에 빠져들게 하고, 한때 뜨거웠던 나의 그 연애 시절을 떠올린다. 그리고 현재, 25년째 내 곁을 지켜주는 한 남자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한다.

오늘 저녁, 30대 초반의 나를 설레게 했던 한 남자. 지금은 ‘남편’이라는 이름으로 나와 같은 이불을 덮고, 매일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나와 함께 두 아이를 걱정하고, 매 끼니를 챙긴다. 저녁을 먹으면 싱크대 앞으로 가서 설거지하고, 물이 묻은 앞 소매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더 할 일은 없어요?”라고 묻는 남자. 주름이 져서 젊은 날의 풋풋함은 사라졌지만, 잘났는지 못났는지 판단조차 어려울 정도로 내 마음을 가득 채운 사람. 밉다가도 고맙고, 애처롭고, 깔끔하다.

저녁 8시. 늦은 저녁을 먹을 그 남자를 위해 밥상을 차린다. 된장찌개를 좋아하는 그 남자의 입맛을 떠올리며 파를 썰고, 냄비에 물을 붓고, 된장을 풀었다. 내 남자가 좋아하는 맛을 내기 위해서 숟가락에 국물을 담아서 간을 본다. 해물을 피하고, 호박 외 다양한 채소를 넣는 것도 그에 대해 표나지 않는 나의 배려다.

‘요리는 사랑’

적어도 남편에게는 아내의 밥상이 그러하다. 퇴근길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집안에 음식 냄새가 가득하면, 남편의 목소리는 격앙된다.

“오늘은 무슨 반찬이야?”

“된장 냄새가 가득하네. 맛있겠다.”

이런 반응에 내 손은 바빠진다. 내일도 저녁상을 차리고, 그를 기다릴 것이다.

이것이 25년이 된 나의 사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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