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에서 나를 만난다

2부. 밤, 나를 안다

by 윰글

"엄마의 조바심이 나를 살렸다."

(드라마 대사 중)


엄마는 그렇다. 자식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리고, 아이의 행동 하나에도 눈물 흘리고 웃는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상상하며 “그러면 안 되는데”라는 말을 건넨다. 하지만 그 말은 사랑이 아니라 잔소리로 들리기 쉽고, 아이는 화를 낸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당한다. 그런 존재가 바로 엄마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금영이 엄마처럼. 세상 모든 엄마는 자식 앞에서만큼은 을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는 총 16부작이다. 이 드라마는 2025년 3월 7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었다. 제주도에서 태어난 ‘요망진 반항아’ 애순이와 ‘팔불출 무쇠’ 관식이의 모험 가득한 인생을 사계절로 풀어낸 이야기로, 휴먼·로맨스·가족·일대기 등 여러 장르를 아우른다.(소개글 출처: 네이버)

주인공은 양관식(박보검)과 오애순(아이유). 이 드라마는 관식이의 애순을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 그리고 애순이라는 여인의 일생을 담고 있다. 그 줄거리 사이로 스며든 시대상은 동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나 또한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 중 하나다. 그래서 나에게 어린 시절의 기억을 불러일으키고,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드라마. 아이유는 ‘어린 애순’과 애순의 딸 ‘금영’ 역을 동시에 맡아 두 인물을 구분해 가며 보는 재미를 더했다.


관식은 언제, 왜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게 ‘애순 바라기’가 되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애순은 그의 마음과 행동의 기준이었다. 이렇게 한 사람을 전부로 사랑할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두 사람의 사랑은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도 순수하고 뜨거웠고, 어느새 나도 그들의 사랑에 빠져들었다.

이 모습을 보는 시청자들은 둘로 나뉠지도 모른다. 관식의 사랑을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 누군가는 이 내용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가 꼭 현실을 그대로 반영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인지 나는 관식을 보며 ‘사랑받는 애순이 되어보는 상상’을 했다. 그것만으로도 행복했으니 충분하다.


가난하고 팍팍했던 어린 시절의 모습은 눈물짓게 한다. 나 역시 그랬다. 엄마는 오빠에게만 계란말이를 해주셨고, 늦게 귀가하는 부모님을 기다리며 우리끼리 집에 있던 시간은 무섭기도 했다. 먹고 싶은 걸 참고, “바나나 먹으면 입이 돌아간다”라는 엄마의 뻔한 거짓말에도 속아주던 어린 날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부모님도 여유롭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어른이 되고 나니, 그런 엄마의 말과 행동이 이해가 된다. 이것이 시간의 힘이다.

드라마 속 두 주인공의 어린 시절도 그랬다. 팍팍한 삶이었지만, 서로의 사랑으로 버틸 수 있었다.

연애를 반대하는 양가 부모님의 눈을 피해 먼 도시로 도망친 두 사람은, 가진 돈과 폐물까지 잃고 결국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 시련도 그들을 꺾지 못했다. 어른들 눈에는 어이없고 한심해 보일지 몰라도, 둘은 누구보다 진지하다. 사랑을 해본 사람은 안다. 남의 시선이나 판단이 그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걸.

나도 그랬다. 어른들이 반대할수록 사랑은 더 깊어졌다. 결국 두 사람은 반대를 무릅쓰고 눈물바다 끝에서 결혼한다. 대부분의 드라마가 여기서 끝나지만, 만약 그랬다면 이 작품의 제목은 ‘폭싹 속았수다’가 아니었을 것이다.


결혼으로 끝날 줄 알았던 둘의 고난은 계속된다. ‘대물림’이라는 말, 바로 이런 상황에서 쓰이는 걸까. 두 사람은 상상할 수 없는 시련 속에서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한다. 드라마의 현실적인 전개가 특히 와닿았다. 여자가 결혼 후 이유 없는 억울함을 겪는 부분은 내 마음에 남았다. 진퇴양난에 빠진 두 사람에게 어떤 위로를 건넬 수 있을까. 매 순간 함께 아파하며 고민했다. 그래도 관식과 애순에게는 그들만의 사랑이 있었다. 그래서 또 안도했고, 희망을 품었다.

삶의 고통을 여과시켜 가며 살아도, 결국 두 사람을 갈라놓는 시간은 온다. 그러나 믿고 보는 두 사람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나지 않았다. 죽음을 넘어 이어질 가족에게 실낱같은 희망을 남긴 결말.


‘순수, 지고지순함, 사랑, 열정, 도전’

시련조차 해치지 못한 그들의 사랑. 유채꽃밭에서의 입맞춤, 서로를 아끼는 눈빛, 그 모든 장면이 다가왔다. 애순의 첫사랑을 담은 시에는 전율이 느껴졌고, 아이를 잃고 동동거리는 장면에서는 뼛속까지 아팠다. 가난한 집안에서 서울대에 진학한 애순이 대견했고, 그런 애순을 끝없이 사랑하며 자식에게까지 그 마음을 대물림 하는 관식의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임신한 애순의 등을 손바닥으로 밀어주는 관식, 죽음을 앞둔 관식을 향해 웃으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애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서일까, 눈물이 났다. 괜히 나에게 다가올 미래를 떠올리며 남편의 얼굴을 한 번 더 바라봤다. 후회하지 않을 오늘을 살고 싶어서.

이 드라마는 그렇다. 뜨겁지 않지만, 잔잔하게 슬프고 기쁘다. 천천히 스며든다. 평생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두 사람의 억척스러운 삶. 나 또한 이곳에서 그들과 조금은 닮은 시간을 채우며 살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드라마가 주는 치유’

드라마는 누군가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 웃음, 아픔, 슬픔을. 어떤 때는 저 사람이 바로 내가 아닐까 착각할 때도 있다. 깊은 수렁에 빠진 주인공이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 희망을 얻는다. 그래서 나는 삶에 지칠 때 드라마를 찾는다. 정규 방송이든 OTT든 상관없다.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작품을 찾거나, 지인이 추천하는 드라마를 본다. 그 안에서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며 위로받고, 생각 없이 웃고 울며 감정을 쏟아낸다. 그 과정에서 내 마음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마치 관찰자가 된 듯이. 그리고 드라마 속 인물의 말과 행동을 보며 나의 삶을 비춰본다.


‘복숭아 하나가 알려준 것’

어느 드라마에서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아버지가 계신 집에 결혼한 딸이 찾아와 복숭아를 내민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 복숭아를 버리려 한다.

“왜 멀쩡한 복숭아를 버리세요?”

딸이 묻자, 아버지가 말한다.

“여기 한쪽이 썩어서 못 먹을 것 같구나.”

“그럼 썩은 부분만 잘라내면 되죠. 왜 버리세요?”

“그래, 너는 복숭아는 그렇게 하면서 사람은 왜 버리려 하니?”

“네?”

“0 서방이 잘못하는 부분이 있지만, 다른 건 괜찮지 않니? 그런데 왜 이혼을 하려 하니?”

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말이 정곡을 찔렀기 때문이다. 나도 그 장면을 보며 반성했다. 남편과 맞지 않는 부분 때문에 힘들던 시절, 나 역시 남편 전체를 미워하고 부정했었다. 그래서 드라마 속 아버지의 말이 가슴 깊이 박혔다. 그 순간, 나는 남편을 향한 마음을 바꾸었다.


드라마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인물의 말과 행동을 통해 나를 비춰보고 수정하게 만드는 힘. 그로 인해 삶이 변한다. 이 점이 내가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다.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은 쉽지 않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쉽게 털어놓지 못한다. 하지만 드라마는 다르다. 작가가 풀어놓은 인물의 삶을 통해 우리는 자연스레 자신을 대면하게 된다. 그 안에서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언젠가 일어날지도 모를 일에 대한 지혜를 얻는다. 이렇게 내면이 단단해지고, 살아갈 힘을 얻는다.


자칫 잊기 쉬운 첫사랑의 시간과 애틋함, 그리고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힘.

나는 오늘 애순과 관식에게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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