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서툰 우리, 그래도 함께
“엄마, 영상통화 좀 해요.”
“어떡하지. 엄마 지금 화장실이라 영상통화가 어려운데. 무슨 일 있어?”
“엄마 얼굴은 안 보여도 돼요. 지금 무조건 영상 통화해야 해요.”
“그래, 그러면 잠시만 기다려봐.”
나는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나와 큰아이의 전화를 기다렸다.
영상통화는 부담스럽다. 한 집에 사는 식구는 괜찮은데, 다른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는 더욱 그렇다.
지금은 설명절 연휴 기간이다. 평소 같으면 온 가족이 함께 시댁으로 이동했을 텐데, 이번에는 다르다. 내가 몸이 안 좋아 이번 명절에는 이동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나 혼자 집에 머물러 있었다.
‘잘 가고 있을까.’
남편 혼자 긴 시간 운전하는 것이 힘들어 보였다. 그래서 평소라면 나도 함께 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같이 가지 못하는 마음도 편안하지는 않았다. 걱정되는 마음으로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던 중, 큰아이의 전화가 걸려왔다. 반갑기도 하고, 놀라기도 한 마음이 들었다.
부산 집에서 출발해 7시간 만에 친할머니댁에 도착한 큰딸. 평소에는 영상통화를 걸지 않는 아이인데, 무슨 일일까. 이유가 있었다. 나는 딸이 걸어온 영상전화에서 내 얼굴을 차단하고, 연결했다.
“와~ 이게 뭐야!”
전화기 속에는 눈에 익은 시어머님 댁 거실이 있었다. 커튼으로 베란다가 가려져 있고, 그 위에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플로터로 출력한 종이 위에 적힌 글씨를 바라보았다.
‘가문의 영광’
‘정유미 작가님 축하합니다.’
‘정유미를 사랑하는 정사모 가족 일동’
아직 유명 작가가 된 것도 아니고, 이제 첫 책을 출간한 초보였는데, ‘가문의 영광’이라는 표현은 조금 과한 듯했다.
플래카드 아래에는 어머님이 늘 사용하시던 갈색 상자가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생일 케이크 하나와 내 책 네 권이 올려져 있었다. 아마도 오늘을 위해 미리 준비하신 모양이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음은 뜨거웠다.
출간 후, 내 책을 구입해 주신 분이라면, 모르는 사람이라도 찾아가 꼭 안아드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 마음은 가족에게도 다르지 않다. 결혼이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만나, 함께 가정을 만들어가는 여정이다. 여기에는 배우자의 가족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일도 포함된다. 남편을 만나 가족이 된 우리. 처음에는 서로를 잘 몰라 티격태격 다투기도 했다. 서로의 마음을 알지 못해 오해와 언성이 오가기도 했고, 남편 역시 결혼이 처음이라 어려운 상황에서 누구 편을 들어야 할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했다. 나 또한 친정 식구와 있을 때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 피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지만, 25년이라는 시간은 우리에게 변화를 안겨주었다.
“멀리서 오느라 수고했으니, 얼른 들어가서 좀 쉬어.”
어머님의 말씀에 ‘피곤한데 그래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나는 쉬지 않고 거실을 지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것이 어머님의 ‘배려’와 ‘진심’이라는 것을. 지금은 시댁에 도착하면 먼저 방으로 들어가면서 “어머니, 저 좀 쉬어도 되죠?”라고 여쭤본다. 물론 조금 쉬고 나면 이내 거실로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부모라는 존재는 자식이 눈앞에 있는 것만으로도 기뻐한다. 그래서 가능하면 늘 함께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러고 보니, 나도 이제 어머님의 자식이 된 지 25년 차다. 서로의 눈빛만 봐도 감사함이 느껴지고, 마음이 편안하게 놓인다.
하지만 오늘의 이벤트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전화기 너머로 펼쳐진 그 장면에 눈물이 맺히고, 가슴이 울컥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내가 진정한 그들의 가족이 되었다는 것을.
“너무 감사합니다. 이렇게 꾸미기 어려웠을 텐데, 누가 이렇게 하신 거예요? 정말 감사합니다.”
“어머니, 형님, 그리고 00아, 고마워. 정말 고마워.”
전화기 너머 온 가족이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눈이 너무 뜨거워 손으로 문질렀다. 만약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면 펑펑 울었을지도 모른다.
결혼 초, 경상도 여자가 충청도 남자를 만나며 겪었던 밀고 당기는 순간들. 사소한 일로 서로 꼬투리를 잡고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괜한 상상으로 남편과 시댁 식구들의 마음을 오해하기도 했고, 물론 상대방도 그랬을 것이다. 지금 돌아보면 모두 부질없는 행동이었다. 가족이라면 작은 일은 이해하고 넘어가면 된다. 하지만 25년 전의 나는 그러지 못했다.
“00 엄마야, 정말 축하한다. 애썼다.”
“네, 어머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가, 나는 00 이보다 너를 더 믿는다.”
생전에 나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신 시아버님. 유독 나를 아껴주셨던 아버님께서 계셨다면, 누구보다 기뻐하며 나를 축하해 주셨을 것이다.
시간이 답을 알려준다. 한없이 이어질 것만 같던 괴로움은 사라지고, 한때는 더할 나위 없이 커 보였던 기쁨도 서서히 흐려진다. 그래서 다시 힘을 내고, 희망을 품고, 서로를 인정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사람을 이해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남녀가 다르고,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결혼생활을 이어가는 일은 뼈를 깎는 노력과 참을성을 요구한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씩 쌓이면, 비로소 우리는 가족이 된다.
30년 넘게 살아온 사람이 결혼한다고 해서, 혈육처럼 금세 가족이 될까. 이건 욕심이다. 누구나 가까워지고, 편안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며 손을 내밀었을 때, 비로소 상대는 내게 와서 내 사람이 된다. 이 모든 과정은 시간이라는 징검다리를 건너야 가능하다. 마치 벽돌을 쌓아 집을 지을 때, 적절한 비율로 배합된 시멘트가 필요한 것처럼, 사람의 관계에서도 ‘시간’이 연결고리가 된다.
물론 그 시간에도 ‘노력’을 더해야 한다. 가족은 나에게 이런 존재다. 어색함으로 시작했던 영상전화 속 가족들. 이제는 명절에 그분들에게 달려가는 걸음이 가볍다. 기다려지고, ‘어떻게 지내실까’ 궁금하다. 내 가슴을 채우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가족.
‘이번에는 꼭 가야 하는데.’
명절에 며느리가 이런 말을 한다면, 누군가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25년 동안의 결혼생활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지금 조금 어색해도 시간이 지나면 가족이 될 거예요.”
“조금만 믿고 기다려보세요.”
“이렇게 하루하루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거죠.”
결혼은 ‘가족’이라는 새로운 열차에 올라타는 일이다. 그 열차를 타면 삶의 풍경은 넓어지고, 마음의 깊이는 더해진다.
모든 변화는 시간이라는 손길이 건네는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