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급차가 지나간 자리에서

3부. 서툰 우리, 그래도 함께

by 윰글

“삐용삐용.”

귀를 찢는 듯한 소리와 함께 구급차 한 대가 내 쪽으로 달려왔다. 나는 2차선에 서 있었고, 구급차는 갑자기 중앙선을 넘어 내 앞 1차선으로 파고들었다. 순간, 차가 내게로 돌진하는 줄 알고 가슴이 철렁했다.

혹시 내가 차선을 잘못 선 걸까. 하지만 아니었다. 구급차가 달리던 방향의 모든 차선이 꽉 막혀 있었고, 내가 서 있던 쪽 1차선만 유일하게 비어 있었다.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환자 이송이 얼마나 급했으면, 그 짧은 순간조차 기다릴 수 없었을까. 하지만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식은땀이 났다.


운전을 하다 보면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를 자주 듣는다. 멀리 있어도 귀를 찢을 듯 선명한 그 소리. 그럴 때면 나는 본능적으로 속도를 늦추고, 길을 비켜준다. 그 안에 누군가의 절박한 마음이 타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장면 때문이 아니다. 나 역시, 그 안에 있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7년 전이었다.

평소처럼 교실에서 아이들과 수업을 하던 중, 갑자기 세상이 빙글 도는 듯한 어지러움이 밀려왔다. 몸이 휘청거려 칠판을 짚었지만, 금세 힘이 빠졌다. 가까스로 복도를 걸어 보건실로 향했다.

“선생님, 무슨 일이세요? 얼굴이 너무 창백해요.”

보건 선생님이 다급히 혈압계를 꺼내더니, 이내 놀란 얼굴로 말했다.

“혈압이 왜 이렇게 높아요?”

계기판에 찍힌 숫자는 거의 200에 가까웠다.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나도 모르게 몸이 더 굳어버렸다. 선생님은 망설임 없이 구급차를 불렀다. 그날, 나는 생전 처음으로 구급차를 탔다. 사이렌 소리가 귀를 울렸고, 창밖으로 흘러가는 거리의 풍경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정신이 아득했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때의 나는, 모든 게 멈춘 듯한 두려움 속에 있었다. 구급대원의 부축을 받아 차에 오르며, 마치 드라마 속 한 장면처럼 현실감이 점점 멀어져 갔다.


차 안의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차가 흔들릴 때마다 내 몸도 함께 흔들렸다.

‘나 왜 이러지?’

‘지금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입을 열어 물어보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얼굴 근육이 굳은 듯, 입술 하나 움직이기조차 힘들었다. 그때 남편이 떠올랐다. 떨리는 손으로 휴대전화를 꺼내 전화를 걸었다.

“나… 지금 구급차 타고 병원 가고 있어.”

“어, 그래. 나도 일 정리하고 바로 갈게.”

놀란 기색을 감추려 애쓰던 남편의 목소리. 그 짧은 대답에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안도감이 스치고 지나가자, 다시 불안이 밀려왔다. 사이렌 소리는 여전히 요란했고, 그 속에서 나는 혼자였다.


‘혹시 나 이대로 죽는 건 아닐까. 아이들 얼굴은 한 번 더 봐야 하는데…’

그 생각이 스치는 순간,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유도 모른 채 몸은 굳어가고, 마음은 점점 멀어지는 듯했다. 그때 구급대원 한 분이 조심스레 내게 말을 건넸다.

“원래 혈압은 오르락내리락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짧은 한마디였다. 그러나 그 말이 내 마음을 단단히 붙잡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저 건넨 위로의 말 한 줄 같지만,

그 순간의 나는 그 말에 매달려 숨을 이어갔다. 그 한마디가 내 삶을 잠시 멈추지 않게 해 준 주문 같았다.


응급실 입구에서 직원이 내게 물었다.

“환자분, 어디가 불편하세요?”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간신히 모기만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지러워요.”

곧 침대가 움직였다. 바퀴 소리와 함께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다. 눈앞에는 하얀 불빛과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그리고 낯선 기계음이 얽혀 있었다. 각종 검사와 문진이 이어졌고, 나는 그저 몸을 맡긴 채 하늘을 바라봤다.

병원에 도착한 지 삼십 분쯤 지났을까. 혈압은 서서히 내려가고, 현기증도 가라앉았다. 그제야 마음속을 짓누르던 공포가 조금씩 풀렸다. 다행히 검사 결과 이상은 없었다. 살아 있다는 사실이 그날따라 유난히 또렷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날 이후, 내게 새로운 증상이 생겼다.

‘구급차 공포증.’

사이렌 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귀를 막고 싶었고, 출근길에도, 운전 중에도 그 소리가 들리면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아마 그건 트라우마였을 것이다. 그렇게 2년쯤 흐른 뒤에야, 두려움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기억도 어느새 흐릿해지고, 그날의 공포는 먼 풍경처럼 남았다.

그리고 오늘, 오랜만에 구급차 사이렌 소리에 놀랐다.

‘얼마나 급한 환자가 타고 있을까.’

‘무슨 일로 중앙선을 넘어 역행했을까.’

그 안의 환자는 지금 어떤 마음일까. 그 곁을 지키는 보호자는 또 얼마나 간절할까.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구급차는 이내 내 왼편을 스치며 정상 차로로 돌아갔다.

‘휴, 다행이다.’

그저 무사히 달려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 깊숙이 안도감이 밀려왔다.


몸이 아프다는 건, 상상 밖의 상황을 만든다. 집 밖으로 한 발자국 내딛는 일조차 버거워 울어본 적이 있는가. 계단을 내려가다 어지러워 걸음을 멈춘 적은. 카페 한편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머릿속을 어지럽힌 적은.

‘내가 이대로 잘 살 수 있을까.’

그 생각 하나로 하루하루를 버티던 날들이 있었다. 제대로 된 삶을 살고 싶은데, 그럴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감에 잠든 아이 몰래 눈물을 닦았다. 아픔은 그런 절망과 우울함을 동반한다. 그래도 마음을 부여잡고 난간에 기대어 숨을 고른다. 다시 걸어가야 하니까. 내가 없으면 홀로 살아가야 할 내 아이를 위해, 아무도 대신 걸어줄 수 없는 그 길을 걷는다. 울고 또 울다가, 억지로라도 웃어본다. 아픔을 이겨내길 바라면서.

그 끝이 어디인지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지만, 스스로에게 말한다.

‘나아질 거야. 여태까지 잘 버텼잖아.’

그리고 또 대답한다.

‘그래, 맞아. 이미 나아졌어. 넌 할 수 있어.’

그 몹시도 아프던 시간을 지나며 깨달았다.


“저 사람들은 어쩌면 저렇게 아프지 않고 잘 다닐까.”

어지러워 한 걸음 떼기조차 힘들던 나 자신과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을 비교하곤 했다. 그러자 엄마가 말했다.

“저 사람들 중에 멀쩡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 다 아파.”

하지만 그 말은 당시의 내게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내 아픔은 지금 이 순간의 현실이었고, 그 끝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시간이 흘러 알게 되었다.

‘아픔의 끝은 있었다.’

3년의 시간이 지나고, 나는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가고 있었다. 견디다 보면, 정말 좋은 날이 온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몇 차례 구급차를 타본 뒤로는, 도로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무리해서라도 길을 내어준다. 구급차 안의 1분은 밖의 100분처럼 길게 느껴진다.

한 번은, 구급차가 양보하지 않는 앞차와 접촉사고가 난 적이 있었다. 그 충격으로 머리가 침대에 부딪혔고, 놀랐을 나를 다독이듯 구급대원이 조심스레 머리를 쓸어주었다. 그 손길이 얼마나 따뜻하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응급실에서 내 어깨를 다독이며 “괜찮을 거예요”라고 말해주던 구급대원,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검사를 도와주던 간호사. 절박한 순간, 낯선 사람의 한마디가 이렇게 큰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래서 다짐했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해야겠다고.

지금 내 앞을 지나간 구급차, 그 안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달리고 있을 누군가에게, 이 마음을 전한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다 잘될 겁니다.”

차창 밖 바람에라도 이 말을 실어 보내고 싶었다.


그 한마디가, 누군가의 하루를 지켜주는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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