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에 담긴 큰딸의 마음

3부. 서툰 우리, 그래도 함께

by 윰글

30분 후면 퇴근이다. 오후 4시쯤이면 어김없이 내 휴대전화 벨이 울린다. 굳이 화면을 확인하지 않아도 누군지 안다. 바로 큰딸이다. 내 마음의 든든한 버팀목. 지금은 방학 중인 아이가 여름방학을 맞아 워킹 맘인 엄마를 대신해 저녁밥상을 책임지겠다고 내게 말했다.

‘본인도 아직 어리면서.’

22살이니 요리를 못할 정도로 어린 나이는 아니다. 하지만 내 눈에는 여전히 여섯 살짜리 아기 같다.

‘왕눈이.’

이건 어릴 적 아이의 별명이다.

“그 눈 큰 애는 어디 있어요?”

주변 사람들이 이렇게 내게 물을 정도로, 눈이 크고 인상적인 아이였다. 지금은 살이 오르고 키도 커서 예전만큼의 귀여움은 줄었지만, 꾸중하다가도 어린 시절과 지금의 얼굴이 겹쳐지면 난 저절로 웃음을 터뜨린다.

그런 아이가 저녁밥을 짓겠다고 한다. 한 끼를 차린다는 게 쉬운 일인가. 주부이자 엄마로서 하루의 일과 중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일, 바로 밥 차리기다. 그만큼 손도 많이 간다.

요리를 하려면 먼저 주방을 정리해야 한다. 냉장고 속 재료를 확인하고, 거기에 맞는 메뉴를 고른다. 요리에 필요한 재료를 손질하고, 그중 빠진 것이 있으면 퇴근길에 장을 본다. 이런 과정이라면 대략 계산해도 한 끼를 준비하는 데에 세 시간 정도는 걸린다.

‘이 음식을 좋아할까?’

‘이렇게 만들면 될까?’

요리하는 내내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돈다. 그 와중에도 칼질과 설거지는 이어진다.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나는 파, 양파, 당근, 감자 등 요리에 자주 쓰이는 재료는 씻어 썰어 급속 냉동해 둔다. 이렇게 하면 조리 시간이 줄어든다.


“엄마, 저는 요리하는 게 재밌어요.”

25년째 밥을 차리지만, 요리는 쉽지 않다. 그런데 아이가 이렇게 말하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큰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쯤, 내가 주방에서 식사를 준비할 때 나를 도와주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문득 생각했다. 나는 언제부터 요리를 시작했지? 기억은 희미하지만, 아마도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TV 요리 프로그램을 보며 식재료를 다루는 법부터 익혔다. 특히 칼질은 쉽지 않았다. 깍둑썰기, 채썰기, 부채 썰기… 종류도 다양하고, 그 외에도 식기마다 쓰임이 다르니, 플레이팅에 참고해야 한다. 불 조절도 요리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이런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내 눈에 모든 것이 들어왔다.


여름 방학이 시작된 지 벌써 3주가 지났다. 큰아이는 여전히 그 약속을 성실히 지키고 있다.

일하는 엄마라면 누구나 퇴근길에 가장 먼저 떠올리는 걱정이 있다.

‘오늘 저녁 뭐 먹지?’

냉장고 속 재료를 떠올리며 메뉴를 고민하고, 마땅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요리 방송이나 레시피를 찾아보기도 한다. 그렇게 한 끼 식사 아이디어를 얻는 과정은 매일 반복된다.

그런데 큰딸이 저녁을 책임지겠다고 하니, 아이의 방학이 끝나는 8월 말까지는 이런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엄마, 오늘은 돼지고기랑 쌈장을 넣어서 김밥을 만들어 볼게요. 괜찮으세요?”

“물론이지. 엄마가 김밥 좋아하는 거 알지?”

주부라면 알 것이다. ‘내 손’을 거치지 않은 요리에는 늘 기대와 걱정이 섞여 있다는 걸. 솔직히 말하자면, 아이가 만든 요리가 항상 맛있는 것은 아니다. 가끔 고기에서 비린내가 나거나, 채소가 덜 씻긴 날도 있다. 재료 맛이 서로 어우러지지 않고 따로 놀거나, 불 조절이 미흡해 음식이 느끼할 때도 있다. 때로는 탄수화물이 과하거나, 차려놓은 상차림의 색감이 어색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아이의 정성이 이 모든 걸 덮고도 충분하다. 맛보다 중요한 건 요리하는 사람의 마음이다. 그러니 아이가 차려준 밥상을 마주하면, 평가나 판단보다 먼저 박수가 나온다. 이런 마음이야말로, 누군가가 차려준 밥상을 받는 사람의 예의가 아닐까.


“와, 이거 어떻게 만든 거야?”

“지난번 시장에서 봤던 거 눈대중으로 따라 해 봤어요. 괜찮아요?”

오늘의 메뉴는 김밥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김밥과는 조금 달랐다. 김 위에 밥을 얇게 펴고 속 재료를 넣는 평범한 방식 대신, 밥 위에 상추를 깔고, 그 안에 소금 간을 살짝 한 돼지고기를 올렸다. 그리고 그 위에 쌈장을 살짝 바른다. 바로 이 쌈장이 오늘 김밥의 하이라이트였다.

이런 걸 퓨전 요리라고 해야 할까. 상상하지 못한 조합 덕분에, 김밥이지만 마치 쌈밥을 먹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새로운 식재료의 조화를 맛보며, 그 덕분에 웃음을 터뜨렸다.

김밥 속에서 느껴지는 고기의 따뜻함과 상추의 시원함이 서로를 보완한다. 마치 온천에 온 것처럼,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기분이랄까.

“너무 맛있다.”

“아, 정말요?”

“엄마 입맛엔 딱 맞아.”

아이가 밥상을 차렸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칭찬’이다. 그 밥상에는 아이의 정성과 사랑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오늘 차려진 상차림을 평가할 다른 기준이 있을까.


큰아이를 22년 동안 키우면서, 참 다양한 순간이 있었다. 김밥으로 차린 오늘의 저녁상을 보면서, 예전 일이 떠올랐다. 후배 집에 큰아이를 데리고 놀러 간 적이 있었다. 거실에서 그 집 동생과 놀다가 아이가 갑자기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접시를 들고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났다.

“엄마, 제가 바나나를 준비했어요.”

빈손으로 가기 서운해서 나는 바나나를 사갔는데, 아이는 껍질을 1/4만 벗기고 3cm 길이로 가지런히 썰어 접시에 담아왔다. 그 순간 깨달았다.

‘그래, 나도 딸에게 이렇게 바나나를 대접했었지.’

우리 집에서는 이렇게 준비하는 일이 익숙했다. 어릴 적 요리 프로그램에서 본 기억대로 남편과 아이들에게 썰어주곤 했다.

“언니, 00 이가 바나나 예쁘게 차려왔어요.”

후배의 말에 큰아이는 얼굴이 밝아졌다.

이렇게 아이가 무언가를 스스로 했을 때, 나는 망설임 없이 칭찬을 한다.


아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모 마음속에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는다.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사랑스러운 존재이지만, 가끔 뜻밖의 이벤트를 보일 때 부모는 가슴 한편이 뭉클해진다. ‘언제 이렇게 컸지?’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 것이다.

이러던 아이가 이제 스물두 살이 되었다. 퇴근 후 지쳐 있을 엄마를 위해 저녁상을 차리는 아이. 그런 날이면 아이는 내 표정을 살핀다. 나와 눈을 맞추고, 음식을 먹느라 오물거리는 내 입을 유심히 바라본다.

사람마다 손맛이 다르듯, 같은 재료라도 누가 요리하느냐에 따라 맛은 천차만별이다. 엄마의 두부찌개를 내가 절대 따라 할 수 없는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만든 요리는 더 특별하다. 오늘 큰아이가 만들어 준 것은 단순한 김밥이 아니라, 바로 ‘사랑’이었다.

“정말 고마워. 엄마, 행복하다.”

“사실 가끔은 칭찬을 조금 덧붙여 말한 적도 있는데, 오늘은 진심이야. 정말 맛있었어. 고마워, 딸.”

아이가 차린 밥상 앞에서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아이가 내게 준 시간과 그 속에 쌓인 추억이, 일상에 지친 내 몸과 마음을 녹인다. 부모란 육아가 버거워도, 아이가 주는 이런 행복으로 그 무게를 조금 덜 수 있다.


한동안 어깨와 등이 굳어 고생했던 시절이 있었다. 마치 3년 가까이 무거운 돌덩이를 등에 지고 다닌 듯한 시간이었다. 나는 그 고통을 어떻게든 이기고 싶었다. 매일 물리치료를 받고, 병원을 다녔다.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마사지를 받기도 했다. 좋다는 건 다 해봤지만, 그 고통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등이 당기고, 허리가 아팠다. 의사 선생님은 긴장도가 높아서 그렇다고 하셨다. 선배 언니는 “갱년기 아니냐?” 하고 농담처럼 물었지만, 그 답은 지금도 모른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마음을 녹이면 몸도 풀어질까?’

전투적으로 살아온 나의 삶. 어린 시절에는 어린 대로, 20대에는 학교를 다니며 딸로서 부모님을 도왔고, 30대에는 결혼생활을 시작하며 또 다른 생을 살아야 했다. 매 순간마다 해야 할 숙제가 있었고, 하루하루를 고민하며 지냈다. 뭐든 잘 해내고 싶어서 에너지를 모았다. 칭찬을 받으면 기쁘고, 더 잘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이런 과정이 잘못은 아니었다. 스스로 잘해왔다고, 나를 칭찬할 줄 안다. 하지만 그렇게 노력하느라 마음은 지쳐 있었다. 힘들다는 말을 잘하지 못하는 나는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잘못이었다는 것도 알았다.

‘네가 우선이야.’

아픈 나에게 선배 언니가 건네준 말. 지금도 잊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것을 먼저 챙겨야 했다.

이런 생각을 마음에 새기고, 나는 모든 면에서 나의 속도를 조절하기로 했다. 마음을 쉬게 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 곁에 머무르기로 했다. 오늘은 내가 사랑하는 아이, 그 아이의 손에서 탄생한 음식으로 마음의 긴장을 풀었다. 이 모든 걸 가능하게 만든 단 하나, 아이의 나를 향한 ‘사랑’이다.

급하게 지나가면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 인생도 같지 않을까. 후다닥 지나치기보다는, 그 시간에 머무르며 나를 돌보고, 가족을 더 살피고 싶다.


“고마워.”

“사랑한다. 엄마는 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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