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서툰 우리, 그래도 함께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원고를 완성하고, 꼭 마감해야지.”
아침에 눈을 떴을 때만 해도 마음은 단단했다. 하지만 계획은 계획일 뿐, 현실은 다르다. 싱크대를 채운 그릇들, 청소기를 기다리는 집안의 먼지, 그리고 살펴야 하는 가족들까지. 이 모든 것들이 나를 붙잡는다. 매일의 일상 외에도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건, 그만큼 체력을 요구한다. 조금 더 젊었더라면 괜찮았을까. 어느덧 나는 50대 중반을 향해 가고 있다.
“엄마, 배고파요.”
“오늘 아침 메뉴는 뭐예요?”
글을 쓰려고 숨을 돌리는 순간에도 들리는 이 목소리들은 나를 집안일로 이끈다. 어제는 새벽 1시에 잠자리에 들었기에, 오늘 아침의 몸은 평소보다 더 무겁다. 거기에 나를 바라보는 또 한 명의 가족, 바로 우리 집 반려견이 있다.
‘놀아주세요, 간식 주세요.’라는 눈빛. 그 모습을 보면 나는 자연스레 냉장고 문을 열고, 사료를 그릇에 담고, 간식을 내민다. 반짝이는 눈빛으로 엉덩이를 땅에 붙이고 간절하게 나를 바라보는 녀석. 이렇게 나를 필요로 하는 가족들. 물론 이들이 주는 행복은 크다. 다만, 가끔은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잠시 미뤄두고 싶을 때도 있다.
“잠을 잘 자면 키가 쑥쑥 크는 거지.”
친구가 오후 1시가 넘어도 일어나지 않는 둘째 아이를 보며 “애가 왜 이렇게 안 일어나는지 모르겠어요.”라고 하소연하자, 남편이 웃으며 한 마디를 건넸다. 그 순간, 나는 “왜 이런 생각을 못 했을까?” 하고 스스로를 자책했다. 휴일이면 아이들이 일어나야 외출도 하고, 외식도 갈 텐데, 그저 방 앞에서 한숨만 내쉬고 있었으니.
아침을 차리려면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향해야 한다. 양손에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통에 담긴 그릇들을 하나씩 씻는다. 가끔 잔반이 남은 그릇이 있으면, 나는 긁어서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에 넣는다.
‘설거지통에 담글 때 물이라도 좀 뿌려주지…’
이런 생각이 올라오면 마음이 또 불편해진다. 하지만 곧 마음을 다잡는다.
‘음식을 잘 먹어주기만 해도, 그 자체로 충분히 좋은 일이야.’
사람의 고민은 다양하다. 어떤 엄마는 아이가 밥을 너무 많이 먹어 걱정하고, 또 어떤 엄마는 아이가 밥을 안 먹어 걱정한다. 그럼 해법은 뭘까. 아이를 타박할 이유는 얼마든지 있다 — 공부를 안 해서, 밥을 안 먹어서, 늦잠을 자서… 반대로 칭찬할 이유도 얼마든지 있다. 건강하게 자라고, 엄마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동생을 잘 돌보는 모습처럼. 컵에 물이 반쯤 있을 때 누군가는 “물이 반밖에 없네”라고 하고, 또 다른 사람은 “물이 반이나 남았네”라고 웃는다. 좋고 나쁨을 결정하는 것은 상황이 아니라,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이다.
‘일체유심조.’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다. 불교 경전 『화엄경』에 나오는 말처럼, 우리가 보고 느끼는 세상—행복과 괴로움, 사랑과 미움—모두 마음의 작용에서 비롯된다. 즉, 세상이 불행해서 내가 힘든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세상을 그렇게 보고 있기 때문에 힘든 것이다.
그걸 몰랐던 나는 자주 화를 냈다. 해결되지 않는 불행의 길을 달리고 있었던 셈이다.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의 말들이 문득 귓전을 스친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욕심을 내려놓으세요.”
“상대가 변하길 바라지 말고, 나부터 평화로워지세요.”
불교의 핵심은,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생기고 마음 따라 달라진다는 것. 남을 바꾸려 하지 말고, 나부터 변하는 것.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나조차 변하기 어렵고, 남을 바꾸겠다는 생각은 더더욱 불가능했다. 게다가 누군가가 나를 바꾸려 들면 나도 거부감을 느낀다. 그래서 가족에게도, 평화로운 소통은 ‘내가 먼저’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때 나는 남편을 바꾸려 애썼다. 이제는 그 어리석음을 조금씩 내려놓고 있다.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그 길을 가고 있다.
주중에는 일을 하느라 지치니, 주말만큼은 나도 좀 쉬고 싶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누군가가 준비한 밥을 먹고 싶은 마음. 하지만 이것도 결국 내 욕심이다. 오히려 피곤함을 호소하는 남편에게는 “푹 쉬어”라고 말한다. 그 말을 건네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청소기를 찾는다. 매일 8시간 넘게 일하는 그에게 주말만큼은 쉬는 시간을 주고 싶다. 누군가는 집안일을 부부가 함께 해야 한다고 하지만, 모든 가정이 똑같을 수는 없다. 나도 결혼 25년 차이니, 지금은 주중이든 주말이든 적절히 행동할 수 있는 테두리가 잡혀 있다.
‘그냥 하자.’
집안일을 대하는 내 마음가짐이다. ‘이게 누구 일이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화가 나고 마음이 무거워진다. 굳이 그런 생각으로 가족과 얼굴을 붉힐 필요는 없다.
‘행동에 감정을 싣지 말자.’
결혼생활 25년을 이어오며 생긴 나만의 철학이다. 감정을 달구면 달굴수록 해결까지 걸리는 시간은 늘어난다. 상대방의 마음을 긁으면, 내 마음도 더 깊이 긁힌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조금 비우고, 행동은 담담히, 그렇게 나와 가족을 살피기로 했다.
점심을 먹고 둘째와 함께 카페를 찾았다. 주말에는 글쓰기와 독서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다. 주중에는 시간이 늘 부족하니까. 나는 주말마다 이곳에 와서 글을 쓰곤 한다. 개인적으로는 너무 조용한 공간보다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분위기가 좋다. 그래서 아이와 함께 하루에 서너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며 글을 쓴다.
오늘은 주말에 완성하려고 마음먹은 원고 파일을 열었다. 하지만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아이가 조용히 묻는다.
“엄마, 우리 집에 가면 안 돼요?”
적어도 두 시간 이상은 이곳에서 글을 쓰고 싶었는데,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아이는 집에서 하고 싶은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한 시간만 더 있다가 가면 안 될까?”
“아니요. 지금 가고 싶어요.”
아이의 의지는 단호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비우고 ‘포기’를 선택했다. 아이가 원하는 대로 따라주기로 마음먹었다.
‘다음에 오면 되지!’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 서운해할 필요는 없다. 아이의 마음에 맞춰주면, 오히려 내 마음이 편안해진다. 물론 한 번 정도는 “30분 정도만 기다렸다가 가자. 엄마가 지금 해야 할 일이 있어.”라고 말할 때도 있다. 대부분 그럴 때는 아이가 내 말에 따라준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아이에게 꼭 지금 가고 싶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럴 때는 아이의 마음을 존중한다. ‘꼭 그러고 싶은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따라준다.
카페에서 쟁반을 정리했다. 먹다 남은 음료와 포장 용기를 가지런히 놓는다. 우리가 앉았던 자리에서 10걸음쯤 떨어진 잔반 처리대까지 걸어가 남은 음료를 버리고, 쓰레기도 정리했다. 그렇게 작은 일상을 마치고 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한 가지 소망을 속삭인다.
‘집은 깨끗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현실은 계획과 다르다. 신발장부터 시작해서 내 손길이 필요한 곳이 곳곳에 있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정리해야 할 상황이 나타났다.
‘엄마는 꼭 필요한 존재일까?’
집을 비운 사이 잠든 남편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나처럼 예민하지 않고 둥글둥글한 성격 덕분에 그는 잠을 깊이 잘 수 있다. 이 또한 참 다행이다. 휴일에 피로가 풀리지 않는다면, 다음 주를 버티기조차 힘들 것이다. 집이 엉망이라 서운해하지 않고, 잘 자는 그의 모습에 안도한다. 이제 이런 아이러니한 심리상태가 자연스럽다. 무슨 일이든 감사하기. 감사한 마음이 들어올 때, ‘내 마음의 평화’도 함께 찾아온다.
문이 열리자 남편이 눈을 떴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이산가족처럼 반갑게 나를 맞는다.
“언제 왔어요?”
“저녁은 뭐 먹을까요? 들어오면서 먹을 것 좀 사 왔어요?”
그 한마디에 나는 웃는다. 심부름까지 시킬 생각은 하지 않았다는 듯, 남편은 몸을 일으킨다. 어제 치과 수술을 받고 통증이 남았을 텐데도 말이다.
“오늘은 배달 음식으로 저녁을 먹을까요?”
역시, 25년을 함께 살아온 남편의 눈치는 백 단이다.
“네, 좋아요. 그렇게 합시다.”
그 한마디에 조금 전까지 쌓였던 불만이 사라진다. 내 표정이 밝아지자, 아이들과 남편도 자연스레 편안해졌다. 불편한 말을 던지면 내가 불편해진다. 듣는 사람은 오죽할까.
주말에는 배달음식이 익숙하다. 요리하는 시간과 노력을 내려놓고, 대신 가족과 오롯이 함께하는 시간을 갖는다. 음식이 도착하는 순간부터 집 안에는 따스한 웃음과 이야기들이 퍼진다. 평소 바쁘게 지나가던 하루가, 이렇게 작은 배려와 선택으로 느긋해진다.
‘식구’는 결국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멀리 있는 가족과 전화할 때도, 자연스레 “밥 먹었어?”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그만큼 가장 먼저 떠오르고, 챙기고 싶은 것은 ‘식사’다. 음식을 시키면, 그 앞에 모인 가족의 얼굴이 떠오른다. 맛있게 먹고, 먹은 흔적을 함께 정리하는 동안 우리는 시간을 함께한다. 이렇게 흘러간 하루하루가 모여 소중한 추억이 된다.
‘가족으로 산다는 것’은, 누군가를 위해 작은 일들을 해주고, 챙기며, 서로의 마음을 살피는 일이다. 감정을 조절하고, 서로가 원하는 걸 해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남편과 함께 가정을 꾸린 지 25년. 때로는 숨이 차오르지만, 깊은숨을 내쉴 때마다 삶의 지혜가 보인다.
이것이 가족이고, 가정의 힘이다. 나보다 더 나를 닮은 사람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가족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살피고, 행동한다.
그저 감사하기만 한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