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서툰 우리, 그래도 함께
“엄마, 감사해요.”
등교한 둘째가 내게 톡을 남겼다.
‘무슨 일 있나?’
‘왜 이러는 거지?’
감정 표현이 서툰 둘째는,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메시지를 보내오는 일이 드물다. 큰아이와는 다른 점이기도 하다. 보통 첫째가 무뚝뚝한 경우가 많다고 하지만, 우리 집은 반대다. 게다가 요즘 둘째는 사춘기에 접어들어 까칠함까지 더해졌다. 그래서 엄마인 내가 오히려 아이의 눈치를 보게 된다.
그런데 이 문자 내용을 곱씹을 틈도 없이, 둘째의 두 번째 톡이 도착했다.
“어버이날이라고 학교에서 억지로 보내라고 해서 보낸 거예요. 정말이에요.”
굳이 이렇게까지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데. 나는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둘째는 평소에도 살가운 아이다. 엄마와 아빠의 볼에 뽀뽀를 하고, 길을 걸을 때는 손을 잡는다. 가끔은 안방 침대에 와 내 옆에 누워 장난을 치고, 내가 어딜 가자고 하면 망설임 없이 따라나선다. 그런데도 막상 이런 문자를 보내는 건 쑥스럽고 부끄러운 모양이다. 나는 둘째가 어떤 표정으로 메시지를 눌렀을지 상상하며 웃었다.
‘그래, 알았어. 엄마도 고마워.’
아이에게 보내지 않을 답장을 마음속으로 썼다. 그리고 문득, 내 어릴 적 모습을 떠올렸다. 엄마에게 “사랑해요” 한마디 전하지 못했던 나. 그때의 나는 부끄러움을 핑계로 마음을 감췄다.
세월이 흘러, 나는 엄마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이 메시지는, 엄마인 나에게 온 딸의 문자이자, 어릴 적 나에게서 온 편지 같았다.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매년 돌아오는 날이지만, 며칠 전부터 마음이 바쁘고 동동거렸다. 이 날이 되면 자식은 부모님을 챙긴다. 당일에는 부모님의 가슴에 꽃을 달아드리거나, 식사를 예약하기도 한다. 용돈을 입금해 드리고, 작은 선물도 준비한다.
“내가 고맙다고 문자 보낸 거 봤지?”
“아니요, 못 봤는데요. 언제 보내셨어요?”
“이상하네. 바로 보냈는데.”
엄마는 은행에서 온 입금 확인 문자를 보고, 그 반가움에 바로 답장을 보내셨다. 내 번호가 아닌 은행 번호였는데도 말이다. 그 말을 듣자, 온 가족의 웃음이 번졌다. 어버이날에 우리가 오히려 엄마에게서 웃음 선물을 받은 셈이었다.
예전 같으면 오늘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냈을 텐데, 올해는 용돈만 드리고 나머지는 생략했다. 굳이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서다. 요즘은 엄마의 전화벨 소리가 들리면, 가슴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아프다. 왜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효는 백 가지 행실의 근본이다.’ (「孝爲百行之本」)
명심보감의 ‘효행’ 편에 나오는 말이다. 효는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의 출발점이다. 부모에게 효를 다하는 일은 단순히 행동으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마음가짐과 태도, 그리고 인격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오늘 나는, 효도를 고민하는 딸이자 엄마로서, 그 의미를 새삼 되새기게 된다.
“오늘 어버이날인데, 두 딸은 뭐 준비했어?”
두 아이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어버이날인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궁금했다.
“케이크 하나 살까요?”
“좋지, 좋지.”
남편을 향해 눈을 찡긋했다. 큰아이는 내 말을 듣고 배달앱을 켜더니, 동생에게 “언니한테 2만 원 보내.”라고 말하며 주문을 끝냈다. 이런 모습을 보면 마음속에 엔도르핀이 돋는다.
두 아이에게 나는 엄마지만, 나 역시 누군가의 딸이다. 4남매 중 장녀인 나는 엄마 집과 가까워 일이 생기면 다른 형제보다 먼저 달려간다. 장녀로 태어나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 받아들였지만, 가족들에게 “수고했어. “고생했어., “고마워”라는 말을 듣고 싶은 마음은 늘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이런 상황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고, 때로는 그 당연함에 화가 날 때도 있다. 누구에게 좋은 말을 듣기 위해 효도를 하는 건 아니지만, 마음 한편이 서운한 건 사실이다.
3년 전 아버지 제삿날이었다. 엄마 집에는 전국에서 온 가족이 모였다. 가족이 모이면 좋기만 할 거라는 내 기대는 가끔 비켜간다. 그날 경기도에서 내려온 막냇동생과 나 사이에 말다툼이 있었다. 나는 엄마가 우리 둘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해주길 바랐지만, 엄마는 그러지 못했다. 그런 점이 서운했다.
잘잘못을 따지자는 건 아니었다. 그저 이야기라도 나누면 좋았을 텐데, 그런 자리조차 마련되지 않았다. 동생이 나에게 대들었던 기억은 시간이 갈수록 또렷해졌다. 결국, 나는 엄마 집에서 열리는 가족 행사에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마음을 정리했다. 가족인데도 이런 일이 생기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언니가 이해를 해야지.”
엄마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나도 엄마지만, 자매 사이에 이런 일이 생기면 부모는 마음이 아프다. 둘 중 누구 편도 들지 못하고 동동거리는 것 자체가 이미 불효다. 나도 두 딸을 키우는 엄마지만, 아이들이 서로 다투면 마음이 찢어진다. 이건 아이가 커도, 나이가 들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나는 3년째 이 상황 속에 있다.
가족 간 사랑의 깊이와 형태는 참 다양하다. 누군가는 가족 때문에 고통에 빠지고, 오히려 가족이라서 더 큰 상처를 주고받기도 한다. 기대가 크기 때문일까. 적당한 거리감이 때로는 서로를 편안하게 한다. 예의를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상처가 된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엄마와 거리를 두며 마음을 정리했다. 물론 이런 나의 모습에 엄마는 속상해하실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안고 살아가야 한다. 딸로서의 삶도 중요하지만, 내 삶 또한 소중하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잠시 불효를 택했다. 엄마에게는 죄송한 일이지만, 내 마음을 지키는 일도 필요했다.
“엄마, 요즘은 왜 외할머니 댁에 안 가요?”
한동안 나는 엄마 집에 가지 않았고, 아이들에게는 그 이유를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들르던 할머니 댁을 갑자기 가지 않게 된 모습을 보고, 둘째가 물었다. 내가 봐도 어색한데, 아이들에게는 오죽했을까. 하지만 이렇게 계속 피할 수만은 없었다. 둘째의 질문이, 오히려 나에게 변화를 가져올 신호처럼 느껴졌다.
“할머니 댁에 갈까?”
그날, 둘째와 함께 바로 엄마 집으로 향했다. 아이가 지켜보는 내 모습이 어떨까 생각했다. 엄마를 대하는 나의 태도와 마음이 아이에게 전해질 것이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딸과 엄마는 서로 다른 존재지만, 서로에게 배우고 영향을 주는 존재이기도 하다는 것을. 엄마를 향한 내 마음과 행동을 통해, 내 딸이 사랑과 존중을 배우는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다시 엄마 집을 자주 찾게 되었다. 그렇게 마음을 조금 열자, 내 마음도 한결 편해졌다. 딸과 엄마, 서로 다른 역할 같지만 결국 함께 만들어가는 관계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케이크가 도착했다. 주방 식탁 위에 케이크를 놓고, 초에 불을 붙였다. 어버이날이니 오늘은 남편과 내가 우리 집에서 주인공이다.
“엄마, 소원을 빌어 보세요.”
생일도 아닌데 소원을 빌라니, 어색했지만 마음속으로 어떤 소망을 담을지 생각했다.
“가족들이 모두 건강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두 딸이 잘 자라줘서 고마워.”
그리고 마음으로 덧붙였다.
‘엄마, 죄송해요.’
감히 전하지 못했던 말을 떠올리고, 50년 동안 효를 실천하며 살아온 나의 반쪽 생애를 위로했다. 그리고 내게 보물 같은 두 딸에게도 감사를 전했다.
“너희들은 엄마, 아빠의 보물이야. 고마워. 사랑한다, 보물! 엄마가 더 잘할게.”
“사랑한다.”
친정 엄마와 딸에게서 배우는 사랑. 딸이 엄마가 되어 두 역할을 병행하는 일.
그리고 그 모든 사랑이, 어버이날의 케이크보다 훨씬 더 달콤하게 마음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