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는 사랑인 모양이네"

3부. 서툰 우리, 그래도 함께

by 윰글

“라면 하나만 끓이도.”

('끓이도'는 '끓여줘'라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다.)


남편은 어제 당직이었다. 토요일에도 쉬지 못하고 일을 했으니, 오늘은 피곤이 몰려온 듯하다. 눈을 비비며 안방에서 나와 거실에 있는 내게 이 말을 던진다.

“아침부터 라면을 먹으면 느끼하지 않아?”

“아니. 괜찮아. 라면이 갑자기 먹고 싶어서.”

“그래,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봐. 금방 끓여줄게.”

남편이 라면을 찾는 건 보통 두 가지 이유 중 하나다. 전날 술을 마셨거나, 나를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아서.

뜨끈한 국물이 들어가면 몸이 풀리는 느낌이 든다. 속까지 따뜻해지는 이 감각은, 라면 국물이 체온을 올려주는 마법 같기도 하다.

“햄을 좀 썰어서 넣을까, 아니면 차라리 김치찌개는 어때?”

“응, 김치찌개 좋지. 그런데 자기가 귀찮지 않아?”

“아니, 괜찮아.”


남편은 쉬는 날 아침, 본인이 원하는 음식을 내가 준비하면 표정이 온화해진다. 순한 양이 된 듯 애교를 부리고, 순간, 갑자기 아들이 된 것 같은 모습에 나는 웃음이 터졌다. 밖에서는 상남자인 사람이, 내 앞에서는 이렇게 변하다니. 그 모습에 익숙하면서도 어색하다.

“내가 못 살아.”

“쉬는 날에는 나도 쉬고 싶은데. 자기도 나한테 아침밥 좀 차려주면 안 돼요?”

필요한 말만 하고 듣는 남편. 헤드셋을 쓰고는 “안 들려, 안 들려”라며 거짓말 같은 말을 반복한다. 알면서도 모른 척 들어주는 나. ‘어딜 가서 그렇게 보채겠어’라는 생각이 들어 그냥 웃는다. 이럴 때면 문득, ‘내가 지금 신혼부부인가’ 싶다. 남편은 내게 참 얄미운 귀요미다.


평일에도 근무 시간이 들쭉날쭉한 남편.

“나는 자기가 해주는 음식이 제일 맛있어.”

신혼 때부터 달고 살던 말이다. ‘일을 시키려고 그러는 건가’ 의심도 들지만, 요리가 맛있다는 칭찬이 고마워서 지금도 이렇게 산다. 게다가 남편은 “아내가 해주는 요리는 음식이 아니라, 사랑이야.”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을 때면 몸은 바빠도 마음은 가벼워진다. 이렇게 25년째 나는 밥을 짓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수발을 드는 일에는 부작용이 있었다. 남편은 점점 ‘요알못(요리를 알지 못하는 남자)’이 되어가고 있다. 신혼 때는 ‘김치볶음밥, 라면, 계란말이’ 정도는 해주던 남편이었는데, 지금은 요리를 한다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다. ‘요섹남(요리하는 섹시한 남자)’이 되면 좋겠는데 말이다.

“자기 손에 물 한 방울도 안 묻히게 해 줄게.”

연애 시절 남편이 내게 한 말이다. 그러나 그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그런데 나를 더 화나게 하는 사실이 있다.

‘이런 남편이 밉지 않다는 것’

25년을 함께 살아도, 내 눈에는 여전히 고운 남편이다. 누가 들으면 거짓말 같겠지만, 사실이다.

길을 가다가 노부부가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남편이 예전에 했던 말이 떠오른다.

“우리도 저렇게 나이 들어가자.”


가을이 와서 결혼식 소식이 늘었다. 우리 학교에도 2주 후에 결혼하는 분이 있다.

“제일 좋을 때인데 행복하게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돌아보면, 결혼식을 앞두고 지냈던 그 시간이 보물 같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게 된다는 사실에 하루하루가 설렜다. 물론 누가 “결혼생활은 매일 달콤해요?”라고 묻는다면, 솔직히 “그렇지 않다”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결혼을 하는 게 맞을까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그럼요. 당연히 해야죠”라고 답할 것이다.

무조건 나를 지지하고 응원해 주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것. 그것만으로도 행운이다. 일생을 함께할 사람을 만나 백년가약을 맺는 일. 그 사실이 얼마나 소중한가.


신혼여행 첫날밤 나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우리 안 헤어져도 되는 거지?”

결혼 전에는 항상 누군가의 눈치를 보면서 둘이 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결혼 후에는 그런 불편함이 사라졌다. 하루하루, 남편과 함께하는 시간이 감사로 채워지고, 그 시간을 사랑하게 되었다.


물론, 결혼 후 늘 좋은 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밥 좀 조용히 먹으면 안 되나?”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남편이 미웠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연애 시절, 결혼 초반의 행복했던 순간들,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던 시간들. ‘사랑’으로 채워진 그 시간들이 우리 사이의 부정적인 감정을 녹여주었다. 그래서일까. 우리가 보기에는 지독하게 싸우던 부모님도,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유미야, 너는 꼭 연애결혼을 해.”

나는 그 말씀을 지켰다. 남부럽지 않은 연애와 사랑을 하고,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다. 그럼에도 가끔은 마음속에서 불평불만이 쌓여 이렇게 생각한 적도 있다.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돼?’

하루가 천 날처럼 길게 느껴지고, 미움으로 가슴이 터질 듯한 날도 있었다. 하지만 그 또한 지나갔다. 그렇게 부부는 서로를 이해하고 또 사랑하며 살아간다. 사랑으로 연결된 시간들이 결국 우리를 이어준다.


“부부가 의리로 산다는 것, 엄마와 아빠를 보면 맞는 말 같아요.”

큰아이가 우리 부부에게 한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25년째 부부로 산다는 것. 그것은 서로의 일상에 다채로운 색을 채워가는 일이다.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우리 부부에게 남은 시간은 같이 살아온 날보다 더 길지도 모른다. 다행인 것은, 여전히 서로를 향해 ‘사랑한다’는 마음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아침이면 서로의 약을 챙기고,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사진으로 보내며, 상대방이 힘들어하면 “어디 아파?”라고 묻는다. 가끔 미움이 솟아도, 우리는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그 감정을 버리려고 노력한다. 이런 순간조차 사랑이 아닐까, 문득 생각한다.




‘이 사람 잘못은 아니다.’

‘잘 해결하면 될 일이지.’

부부로 만나, 때로는 크고 작은 상황에 부딪혀도, 우리는 서로를 미워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행운’

세계 인구가 82억이라지만, 그 많은 사람 중에서 바로 이 사람을 만났다는 사실.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가. 그리고 다행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지다.


‘후광이 비친다.’

결혼을 하고 싶은 사람은 배경에서 빛이 난다고 중학교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이건 거짓말이다’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다. 남편을 처음 본 순간, 나는 ‘세상에 이런 남자가 있었구나’라고 생각했고, 자연스레 고개를 돌려 다시 쳐다보았다. 그렇게 우리는 만났고, 지금 한 집에서 25년을 함께 살아가고 있다.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 주는 이 남자. 나도 쉬고 싶은 휴일 아침에 라면을 끓여 달라며 보채고, 아프다고 같이 병원을 가달라고 말하는 남편. 남들에게는 듬직한 남자이지만, 내 앞에서는 애기가 되어버리는 사람. 그 모습을 싫어하지 않는 나. 이런 걸 천생연분이라고 하는 걸까.


냄비에 식용유를 두르고, 미리 썰어놓은 김치를 넣어 볶는다. 김치가 숨이 죽으면 햄을 넣고, 단맛을 내기 위해 양파를 송송 썰어 넣었다. 건강을 위해 설탕 대신 꿀 한 스푼도 추가한다. 남편이 좋아하는 엄마표 김치찌개를 흉내 내고 싶어서다. 시어머니께서는 김치찌개에 된장을 풀어 넣으셨는데, 남편 입맛에 맞추고 싶어 따라 해 본다.

물을 넣고 끓이다가 파를 송송 썰어 넣었다. 남편은 김치찌개를 오래 끓이는 걸 좋아한다. 기왕 만든 음식, 맛을 최상으로 맞춘다.

“자기야, 어때?”

“우와, 진짜 맛있다. 라면보다 훨씬 나아.”

“다행이네. 많이 먹어.”

“자기야, 고마워.”

남편의 표정이 달라졌다.

‘요리는 사랑인 모양이네.’

내가 해준 김치찌개를 먹고 엄지 척을 해주는 남편, 그 뒤로 운동을 나가며 기운을 되찾는 모습. 힘들어도, 먹는 사람의 이런 모습을 보면 다시 힘이 난다. 나도 에너지를 얻는다.

“그래, 나는 밥을 하고 당신은 맛있게 먹어주면 되지.”


일요일 아침, 거실에 부드러운 햇살이 내려앉는다. 여유로움이 주는 긍정의 힘일까. 나는 이 순간을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리고 감사하다.

내가 만든 요리가 늘 완벽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남편은 늘 맛있게 먹어준다. 부부에게는 각자의 역할이 있고, 그 역할에 충실할 때 가정은 편안함으로 화답한다. 오늘 아침이 그런 순간이었다.


“고맙고, 사랑합니다. 그리고 감사해요.”

“우리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요.”


서로의 일상 속 배려와 감사가 쌓여, 평범한 하루가 특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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