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은 소중하다. 일주일 중 이틀이나 되는데도, 쏜살같이 지나간다. 그래서일까. 일요일 저녁이 되면 괜히 예민해진다. 아이 방을 두드리며 쓸데없는 잔소리를 하거나,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빨리 자라고 다그친다. 이런다고 내 마음이 편할까. 오히려 둘 사이에 긴장만 생길 텐데 말이다. 아이도 나처럼 일요일 저녁에 마음이 무거울 텐데, 엄마라는 내가 이러는 모습이 한심해 보인다. ‘그러지 말걸’ 하는 후회는 금세 찾아오지만, 이런 장면은 매주 반복되는 듯하다. 그만큼 주말은 아쉬운 시간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2024년, 그 한 해 동안은 주말이 오히려 지루하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월요일 출근이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이건 뭔가 어색한데…’
그 낯선 감정도 오래가지 않았다. 지금은 다시, 주말이 짧고 아쉽다. 그리고 주말에 대해서 평범한 감정으로 돌아온 것에 감사하다. 주말이 짧게 느껴진다는 건, 그만큼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편안하다는 뜻이니까.
이번 주말, 우리 가족은 별다른 일 없이 집에서 뒹굴뒹굴 시간을 보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
토요일엔 늘 그렇듯 큰아이의 수업이 광안리에서 있었다.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가기가 번거로운 위치라서, 내가 그곳까지 태워다 주기로 했다. 그런데 둘째가 엄마와 같이 다녀오겠다고 나선다. 우리는 아침 9시에 집을 나섰다. 강의는 10시 시작이었고,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였지만 일찍 도착하고 싶어서 서둘렀다. 도시고속도로를 10분쯤 달리다 오른쪽으로 빠지니, 2분도 채 안 되어 강의 장소에 도착했다. 큰아이를 강의가 있는 건물 앞에 내려주고 나서, 둘째와 나는 그 근처에서 강의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강의 건물 주변을 둘러보니, 꽤 유명한 베이커리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주말 아침이라 그런지, 주차장엔 차가 4대뿐이었다. 주차권을 받고 차를 세운 뒤, 카페에 들어갔다. 입구 양옆에는 빵 진열대가 두 줄로 놓여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빵을 골랐다. 유리 진열장 안에는 케이크와 디저트가, 쟁반 위엔 다양한 빵들이 놓여 있었다. 나와 둘째는 각자 마음에 드는 빵을 골라 계산대로 걸어갔다.
“아메리카노 한 잔, 초코라테 한 잔 주세요.”
“드시고 가실 건가요?”
“네, 먹고 갈게요.”
계산을 끝내고, 우리는 빵과 음료를 들고 2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은 화이트 톤으로 꾸며져 있었고, 둥근 테이블과 네모난 테이블이 섞여 있었다. 주차장과는 달리 매장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가족, 연인, 친구들… 그들의 모습 속에는 편안함이 느껴졌다.
우리는 창가 쪽 원형 테이블에 앉았다. 중학교 3학년인 둘째는 작년 사춘기를 거세게 겪었다. 그 동굴 속 같은 시간을 지나 풀어진 긴장감 덕분에, 이렇게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지난 일 년, 아이도 나도 상처 속에서 매일 버텼다. 아이가 잠이 들면 나는 눈물을 흘렸다. 그 긴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아 막막했지만, 지금은 그 시간을 지나왔다. 그만큼 아이와 내가 함께 성장한 듯하다. 이 또한 감사하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서로를 더 이해하고, 더 다정해진 마음으로 앉아 있다. 그때는 이렇게 포근한 시간이 올 거라 상상할 수 없었다. 그래서 사춘기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다 지나갑니다”라고 조언하고 싶다.
작년까지는 그저 이 전쟁의 끝이 있을까, 끝이 나기는 할까, 그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오리무중이었던 그 시간은 지나갔고, 지금은 ‘행복’이 우리 둘을 감싸고 있다.
“딸, 고마워.”
나는 이 말을 자주 한다. 아이의 투덜거림에도 괜찮다. 지금, 이 순간이 고마우니까.
강의가 끝나기까지는 3시간이 걸렸다. 긴 시간이지만 나는 이 시간 동안 둘째와 편안한 마음으로 카페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내 마음이 전달되었을까. 아이의 표정도 편안해 보였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나와의 대화도 깊어지고, 마음의 폭도 넓어졌다. 엉뚱하고 고집 센 엄마를 이해해 주는 아이들 덕에 나도 내 안의 여유를 회복한다. 갓난아기, 어린아이를 키울 때는 ‘이 아이가 언제 크지?’ 싶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그 시간은 그렇게 지난다. 그래서 조금 힘들어도, 그 시절을 꼭 즐기라고 말해주고 싶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고, 꼭 겪어내야 하는 날들이니까.
사람은 저마다 다른 인생의 길을 걷는다. 그러기에 서로 다른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고, 반대로 상대에게 맞추기 위해 나 자신을 변화시킨다. 나는 이것을 ‘사랑’이라 부르고 싶다.
‘부모의 사랑, 아이의 사랑, 연인의 사랑’
사람마다 이 사랑의 색과 온도는 다르지만, 사랑이 없으면 세상은 유지될까. 오늘도,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이 평범한 하루에 감사하며 나의 삶을 들여다본다. 매일을 살다 보면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 걸까?’ ‘이게 맞는 선택일까?’ 끝없이 고민하게 된다. 이럴 때는 나를 사랑하고, 내가 믿을 만한 누군가를 찾아서 고민을 나누면 어떨까. 가족이어도 좋고, 지인이어도 좋다. 나는 고민이 생기면 주로 서점을 찾는다. 서점에는 내가 고민하는 내용과 관련된 책이 늘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나 고민의 마무리는 ‘시간’이 하는 것 같다. 아무리 애써도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고, 큰 기대를 하지 않아도 좋은 결과가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삶은 공평한 것인가.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아픔도, 잊지 못할 것 같던 사람도 언젠가는 흐릿해진다. 사랑했던 사람을 잃고 무너졌던 이도 다시 일어서서 그의 삶을 이어간다. 자식을 잃은 부모조차, 시간이 지나며 다른 이의 손을 잡고 다시 일어선다. 그것은 기적이고, 말할 수 없이 감사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어떤 사람이나 일에 대해서 큰 기대도, 실망도 하지 않는다. 근거 없는 예측을 피하고, 그저 오늘 하루를 살아본다. 살다 보면 답이 주어질 테니. 그렇게 매일이 쌓이면, 시간은 나에게 답을 준다.
오늘도 나는, 지나온 과거를 뒤로하고 새로운 시간을 만들어 간다. 새로움이 주는 설렘을 느끼며, 마음의 결을 다듬는다. 상처도, 아픔도, 후회도 결국은 시간 속에서 녹아내린다. 하지만 나는 이 시간을 무의미하게는 흘려보내지 않으려 한다.
‘매일의 일상에서 나를 놓치지 말자.’
어떤 날은 설렘으로, 어떤 날은 지루함으로, 또 어떤 날은 무력감으로 하루가 지나가더라도, 그 모든 날은 내 삶의 일부다. 내가 만든 시간, 내가 견디는 시간, 내가 사랑하는 시간. 그래서 오늘도, 아주 작은 숨을 고르며 지나간 시간 속 나에게 조용히 묻는다.
“지금 여기 있는 나, 오늘의 나는 괜찮냐고.”
조금 서툴고 어설퍼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그렇게 나는 매일의 나에게 이 말을 전하며 나를 토닥인다.
‘아직 배우는 중이니까,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거 맞지?’
배움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완벽하다고 여겼던 생각도 다음 날이면 흐려지고, 오늘의 실수가 내일의 만족이 되기도 한다. 25년간 엄마로서, 57년간 한 사람으로서 나는 여전히 배우고 있다. 때로는 실수하고, 후회도 하지만, 그 모든 경험은 내게 소중한 배움이고, 결국 나를 성장시키는 시간이었다.
어릴 적에는 완벽해지려 애썼다. 문제는 정답을 찾아야 하고, 흠 잡히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누군가의 기준에 닿아야만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미련의 손을 조금씩 놓아간다. 미완성이면 어떤가. 조금 부족하면 또 어떤가. 지금, 이 순간, 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믿는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아직도 나는 배우는 중이니까.
끝으로, 주변의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우선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내 편이 되어주고, 응원해 주는 남편에게 “고맙습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또, 늘 자기 몫을 다 하면서도 엄마, 아빠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두 딸에게는 “사랑해”라고 진심을 담아 건넨다.
쉰이 넘은 딸을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챙겨주는 엄마, 늘 건강해지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그리고 이제야 용기 내어 말해본다.
“엄마, 그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곁에서 나를 다독이고, 성장의 자극과 위로를 건네주는 친구들, 선후배들에게도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마음을 전한다.
끝으로, 힘든 시간을 견디며 단단한 마음을 잃지 않으려 애쓴 나 자신에게 이 말을 건넨다.
“수고 많았고, 정말 애썼어.”
그리고 속삭이듯 덧붙인다.
“아직 끝이 아니야. 너는 아직 퇴고 중이니까, 오늘의 너도 내일의 너도 조금씩 더 나아질 거야.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너는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