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일기를 대신하는 감격 일기
감사 일기가 뭐길래 어려운걸까
"감사 일기를 써보세요."
많은 책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권유다.
그렇게 하면 마음이 안정되고, 행복해진다고 한다.
긍정 심리학의 마틴 셀리그만은 실제로 실험을 통해
감사 일기를 쓴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삶의 만족도가 확연히 높았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나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해보려고 하니, 감사일기는 전혀 쉽지 않았다.
감사가 사치처럼 느껴질 때
아이를 키우며 한동안 남편이 유독 미웠던 시기가 있다.
그때 지인이 조심스럽게 감사일기를 권유했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불만을 눌러가며 몇 줄을 적었다.
하지만 매일 똑같은 문장을 반복하는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암진단을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생명의 위협하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암'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숨이 막힐 뿐이었다.
그럴 때 나에게 '감사하라'는 말은
'감사하지 않아 이런 일이 생기는 것 아닐까' 하는 죄책감이 되었다.
심리학자 브렌 브라운의 말이 있다.
"감사는 억지로 짜내는 감정이 아니라, 허락이 필요 없는 감정이다"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에게 감사는 너무 먼 이야기였다.
억지로 써 본 감사의 문장
감사를 찾아내는 것 자체가 어렵던 시절,
나에겐 더 작고 가벼운 방식이 필요했다.
그래서 '감사와 친해지기'부터 시작했다.
몸을 일으켜 샤워하는 것조차 버거웠지만
나는 샤워부스에 손가락으로 적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김이 서린 유리 위에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새겨 넣었다.
처음엔 누가 볼까 부끄럽고 어색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났을까,
어느 날 명상 중 싱잉볼 소리와 함께 그 문장을 듣게 되었을 때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눈물이 났다.
"고마운 줄도 모른 체 버티기만 했구나"
몸과 마음이 조용히 속삭였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감사는 '무엇을 받았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라
'만약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덕분이구나'를 떠올리는 겸손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감격'을 택했다
그래서 나는 감사 대신 나만의 감격 일기를 시작했다.
꾸준히 유지하지 못했지만 올해 초부터 매일 "오늘의 감격"을 쓰고 있다.
'오늘의 감격'은 잠자기 전, 감사하려 억지로 애쓰는 것이 아니라
하루 중 '이 장면 만은 놓치고 싶지 않다'는 순간을 하나 기록하는 것이다.
그 순간을 관찰하고, 이유를 붙이고, 내 마음에 새기는 과정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해 준 응원"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
"아이가 아픈 나에게 이불을 덮어준 따뜻함"
"곶감 하나에서 느끼던 시간의 무게"
"남편이 건넨 만 원짜리 피로회복제"
작고 사소한 것들이었다.
그 순간들 덕분에 나를 살아가고 있었다.
아무리 엉망인 하루에도 단 하나의 감격은 나를 위로했다.
"오늘도 덕분에 잘 살아냈다. 내일도 힘내자"
그렇게 나는 나 자신을 용서하고 응원할 수 있었다.
감격은 '구체화된 감사'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방식을 '감사 구체화(specific gratitude)'라고 한다.
막연히 '모든 게 감사하다"라고 할 때보다
'이 장면, 이 말, 이 느낌이 고맙다'라고 표현할 때
뇌는 훨씬 강하게 반응하고, 기억에 오래 남는다고 한다.
매일 '오늘의 감격'을 쓰기 시작하고 오늘이 263일째다.
여전히 쉽지 않지만 안 쓰던 시절과는 다르다.
어느새 하루에 '감사한 일'하나쯤은 찾게 되었다.
억지로 쓰던 감사가 아니라,
이미 있었지만 놓치고 살았던 것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생긴 것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
감격 일기는 결국 내가 가진 것을 알아차리는 연습이다.
누군가 보기엔 그냥 일기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안에는 "나는 내가 받은 것을 기억해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감사 일기, 아니 감격 일기는 나에게 감정을 되짚고 재구성하는 소중한 도구가 되었다.
만약, 감사가 어렵다면 딱 한 순간만을 떠올려보자.
"이 순간이 아니었다면 느낄 수 없었을 감정이 뭘까?"
오늘의 그 작은 감격적인 그 순간은 내일의 감사가 될지 모른다.
지금 내 삶에서 감사보다 필요한 것은 감격의 순간일지 모른다.
오늘도 나는 감격일기를 쓴다.
그리고 당신의 감격이 시작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