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곁에 두다

오늘을 만끽하는 방법

by 감격

언제든 찾아 올 죽음에 대해


친정엄마를 모셔다 드리던 길이었다.

나는 두통으로 아이들과 집에 남으려 했지만,

느낌이 좋지 않았고 따라간다는 아이들을 말렸다.

따라가고 싶어 눈물까지 보이는 아이를 마지못해 보내고 난 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사고가 접수되었습니다"라는 문자가 도착했다.


연락이 닿지 않던 남편과 엄마.

겨우 연결된 전화에서는 짧은 한마디가 전부였다.

"엠블런스 불렀어. 이따 연락할게"


그 후 한동안 소식이 닿지 않는 시간은 악몽 같았다.

아이들은 어떤지 엄마와 남편은 무사한지 알지 못한 채,

나는 처음으로 죽음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실감했다.


그 순간 가장 두려웠던 건 잃음보다 더 큰 후회였다.

"화내지 말걸, 보내지 말걸"


그때 어렴풋하게 깨달았다.

언제든 마지막이 올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피하고 싶은 단어


사고가 있고 몇 달 뒤쯤이었다.

암 수술을 앞두고 나는 죽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심각한 것도 아니고 지금은 생각하고 싶지 않아"


죽음이라는 단어는 늘 무거웠다.

마치 불길한 예언처럼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조차 두려웠다.


그때 나를 버티게 한 생각은 단 하나였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이만하길 감사하다"



명상 속에서 다시 만난 죽음


"이제는 장례식 장에서 더 자주 만나는 나이다."

나이가 들수록 지인들이 던지는 우스갯소리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런 내가 다시 명상을 시작하면서 비로소 죽음을 마주할 수 있었다.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단순한 리듬 속에서

죽음은 더 이상 두려움 만은 아니었다.


그 곁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삶이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물론 하루아침에 달라질 순 없었다.

그러나 죽음을 떠올릴 때마다 조금 더 이해하고,

조금 더 사랑하려 하게 되었다.



죽음을 곁에 둔다는 것


철학자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인간을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Sein-zum-Tode)"라 말했다.

심리학자 어니스트 베커 역시 [죽음의 부정]에서,

죽음을 직면하지 않고 회피하려 할수록 인간의 불안은 커진다고 지적했다.


죽음을 곁에 두는 연습은 삶을 무겁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볍고 투명하게 만든다.

행복을 쥐려 애쓸 때보다 마음이 고요해지고,

삶의 우선순위는 단순해진다.


오늘 하루, 눈앞의 소중한 사람, 지금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더 자주 떠올리게 된다.




오늘, 조금 더 다정하게


나는 매 순간 다정한 사람이 되겠다는 불가능한 약속은 하지 못한다.

다만, 오늘 하루 조금 더 다정하고 싶을 뿐이다.


내가 사는 오늘이라는 마지막에 후회가 없도록,

죽음을 곁에 두고

지금 여기에서 더 다정해지고 싶은 것이다.


" 죽음을 직시할 때, 비로소 삶은 시작된다."

- 소크라테스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이라는 기적의 선물을 마음껏 만끽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