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진동과 중심축
요 며칠은 그렇게 의욕이 넘쳤다. 머릿속이 명확했고 마음이 단단했다.
오늘은 정반대다.
작은 일에도 집중이 되지 않고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해야 할 일들은 머릿속을 맴돌기만 하고 입도 까끌거려 차 한 잔도 마시기 꺼려진다.
이럴 때면 늘 같은 생각이 스친다.
"나는 왜 이렇게 한결같지 못할까"
"왜 매번 올라왔다가 이렇게 금세 가라앉을까?"
그럴수록 마음은 불안해진다.
중심을 잃은 팽이처럼 흔들리고,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듯한 공허함이 밀려온다.
중심이란, 멈추지 않는 진동이다.
예전에는 '중심을 잡는다'는 것을 흔들리지 않는 완벽한 상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중심은 멈춤이 아니라 진동 속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라는 것을.
마치 시계의 진자처럼 좌우로 움직이되, 중심점을 기준으로 되돌아오는 힘,
그게 우리 안의 원심이다.
감정이 출렁이는 날은, 그 원의 한쪽 끝까지 기운 상태다.
그것은 실패나 퇴보가 아니라 '다시 중심으로 돌아갈 여유'를 만드는 과정이다.
돌아올 수 있는 힘
우리가 바라는 '한결같음'은 사실 착각에 가깝다.
매일 같은 마음, 같은 에너지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만 어떤 감정의 파도 속에서도 '돌아올 중심'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나에게 그 중심은 '관찰'이다.
무기력한 나를 부정하지 않고, 그 감정이 나를 흔드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
오늘은 의욕이 없구나, 지금은 믿음이 흔들리는구나.
그걸 알아차리는 순간, 나는 이미 중심으로 돌아오는 중이다.
중심은 '감정을 없애는 힘'이 아니라,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감정 안에서 숨 쉴 수 있는 힘'이다.
남들은 왜 늘 똑같아 보일까
SNS 속 사람들은 늘 의욕적이고 일상이 깔끔하고 말은 단단해 보인다.
그들에겐 무기력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겉 궤도'일뿐이다.
보이지 않는 안쪽에서는 우리와 같은 진동이 일어나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균형은 내면의 진동 위에 세워진 허상일 때가 많다.
진짜 균형은 흔들림을 감추지 않는데서 만들어진다.
흔들려도 다시 중심으로 돌아오는 힘, 그게 지속 가능한 힘이다.
나를 믿는다는 것의 의미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에는
"나는 왜 이럴까?"라는 말보다
"이 안에서도 나는 살아있구나"라고 말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나를 믿는다는 것은 완벽을 믿는 것이 아니다.
내가 무너져도, 다시 나를 일으킬 수 있다는 '자기 회복력'을 믿는 것이다.
어쩌면 오늘의 무기력은 그 믿음을 다시 점검하라는 신호일지 모른다.
내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나는 어떤 리듬으로 돌아오는 사람인지,
그걸 다시 확인하라는 신호말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가 글을 쓰려고 마음먹었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수많은 흔들림 속에서도 나를 믿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했다.
그래서 더더욱, 이럴 때 글을 쓴다.
내 안에 진동을 글로 옮기면 마음의 소리가 형태를 갖춘다.
흐릿한 감정이 문장 속에서 선명해지고, 그 문장은 나를 중심으로 다시 돌려준다.
글쓰기는 그렇게 나의 감정의 소용돌이를 '의식의 원'으로 바꾸어준다.
이것이 나에게 글이 필요한 이유다.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중심축'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
중심을 잃은 날은 중심을 다시 그릴 날
무기력한 오늘의 나는 나의 중심을 다시 확인해 본다.
한결같은 삶은 없음을 인정하고 흔들리더라도 돌아올 길을 잃지 않기로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 단단한 사람일 테니.
내가 생각하는 세상은 직선이 아니다. 각자의 파이로 원을 그리며 사는 세상이다.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 같아도 그 원은 분명 조금씩 커지고 있다.
오늘의 무기력도, 내일의 확신도 모두 그 원의 한 지점일 뿐이다.
흔들림 속에서도 나의 궤도를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진짜 중심이다.